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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밥 기획 특집

[대전 원도심 기획특집] 목척시장, 따스한 시선들의 향연


 목척시장은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자생적으로 생겨 난 시장이다. 목척교 대우당약국으로부터 선화초등학교 앞까지의 동네를 아우른 도심 한복판. 시장을 찾아가는 길엔 명랑한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그러나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200여 개의 점포가 성황을 이뤘다는 시장은 여기가 시장이 맞나 할 정도로 한적하다. 맨 처음 눈에 띈 것은 공교롭게도 오늘 폐업했다는 슈퍼 아주머니가 텅 빈 점포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늦은 점심인지 새참인지를 드시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간판은 이미 내려져 있고 물건들도 다 빠졌지만 누구에게 인수하는 것도 아니라서 진열장을 뜯어내고 냉장고 등을 씻느라 하루 종일 걸리고 있다는 말씀이시다. 시장 입구, 목 좋은 사거리 슈퍼도 문을 닫고 있는 형편이니 더 오래 머물러 있기가 민망했다. 맞은편 슈퍼, 태성상회 아주머니도 심란하신 모양인지 어떤 여자분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계시다. 배추를 절이고 있는 빨간 함지와  겹겹 쌓인 박스더미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아주머니의 얼굴과 겹쳐지고 있다. 
 셔터문이 굳게 내려진 점포들이 많다. 닫힌 점포 앞에는 합판과 나무토막들이 함부로 쌓여 있고, 점포 처마의 천막이 찢겨져 있는 걸 보면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다는 흔적들이다. 그 사이 고소한 향내를 풍기는 ‘목척 기름집’이 있다. 기름병에 기름이 찰랑거리는 모습이 그려진 미니간판이 쓸쓸한 풍경 속에서 가을 햇살처럼 맑게 다가온다. 오늘은 손님이 보이지 않지만 들깨와 참깨를 들고 사람들이 오고간 흔적은 향기로 남아 시장 골목에 번지고 있다.
 
 “구경할 것도 없어요. 사람들이 없는 걸 뭐. 여기가 등록도 안 된 시장이래요. 재개발 소문이 돌자 원주민들이 떠나고 투자자들 손에 땅이 넘어가고……장사를 하는 집도 지금은 몇  안 돼요. 옛날엔 여기가 중앙시장 다음으로 큰 시장이었고, 역전시장보다 먼저 생겼대요.”

 가게 앞에 앉아 파를 다듬고 있던 ‘시민닭집’ 아주머니는 여기서 장사를 시작한 지 17년 년 밖에 안 되어 잘 모른다고, 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아저씨를 가리키며 따라가 보라고 한다. 아주머니의 손짓에 아저씨도 낯선 여자가 잘 따라오는지 돌아보며 자전거를 밀고 나가신다. “어휴, 김 사장 능력 좋아!” 골목에 앉아 있던 아저씨들이 농담을 날리신다. 나도 갑자기 ‘어여쁜 여자’가 된 기분이다. 자전거 아저씨는 ‘한밭 칼국수’ 김수길 사장님이시다. 시장 본통에서 살짝 옆 골목에 위치한 한밭 칼국수는 제법 큰 점포에 종업원도 여럿,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칼국수와 두부탕 등이 주 메뉴이다. 가게 앞 시멘트 담벼락 우듬지에는 예술인들이 만들어 놓은 나무새 조각들이 ‘훨훨’ 날고 있다.

 “10여 년 전 재개발 소문이 직격탄이었어요. 땅값이 오르자 팔고 나가고 이사 가고 시장상인이 없어지고 인구가 줄면서 여기가 점점 텅 비어 간 거죠. 평당 250만 원이었던 것이 재개발 소문이 돌자 평당 1,500만 원으로 껑충 뛰었는데, 지금은 평당 7,800만 원에도 매매가 이루어지 않습니다.”
 
재개발사업은 낙후된 지역의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이윤의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당시 재개발사업추진협의회 사무실도 갖추고 있었지만 천정부지로 땅값이 오르자 민영사업체나 공적기관 어느 누구도 덤비려 하지 않아 재개발사업이 무산되었다는 것. 그러나 도심 한복판 상업지역이라 오른 땅값은 쉬이 내려가질 않고, 언제 어느 때 다시 재개발 바람이 불지도 모를 일이어서 가게를 얻으러 오는 발걸음도 뚝 끊기고, 개발과 변화의 바람을 쫓아가지 못한 목척시장 일대는 급속히 쇠퇴의 길을 걷는다.

 “지금으로서는 희망이 안 보여요. 우리 집은 30년 전통의 맛과 노하우로 방송 3사의 맛집으로 소개되면서 그나마 흑자에 가까운 쪽이지만 시장통 대부분은 적자인데도 할 수 없이 붙들고 있는 것이죠. 그래도 저기 안도르 찻집에서 프리마켓을 열고 있어 사람들이 오고 우리 식당에 밥 먹으러 오기도 하니 도움이 됩니다.”

 목척시장에서 2012년 12월 29일부터 2013년 1월 20일까지 진행된 전시, <마주하는 인사>는 대전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원도심 활성화 프로그램으로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참여자들이 만드는 문화, 예술에너지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당시의 전시로 목척시장 일대 골목에 벽화가 그려졌고, 한밭 칼국수 앞 담벼락의 나무새 조각도 그때의 작품이다. 목척시장이 활기를 되찾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안도르 찻집엔 마지막에 들르기로 하고 다시 시장통으로 접어들자 ‘시민닭집’ 아주머니가 반갑게 손짓하신다.

 “보잘것 없는 곳 둘러보느라 고생이 많네. 한 잔 하셔야지.”
 “이거 내가 직접 주워온 도토리로 쑨 묵이야. 진짜배기여. 드셔 봐.”
 “어이 쭈꾸미 떨어졌어. 참외도 더 깎아 봐요.”
 좁은 시장통을 울리는 따뜻한 목소리들 속에 끼여 나도 소주 한 잔을 받는다. 아까 농담을 날리셨던 아저씨들과 시장 아주머니들 대여섯 분이 둘러서서 웃음꽃이 피었다. 도토리묵은 첫맛은 쌉쌀한 듯하다가 끝맛은 달큰하게 넘어간다.
 “재개발사업도 그렇지만 시청과 법원이 둔산동으로 이주하고 색시촌이 유천동으로 이주하면서 인구가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시장도 죽은 거예요. 아무리 좋은 물건을 펼쳐 놓으면 뭘해요. 사람들이 오가야 시장이 되지.”
 “대형마트가 판치는 세상에 재래시장이 버틸 수 있간유?”
 “개발이 되는 데가 있으면 저물어가는 지역도 있는 거유. 새삼 울 일도 아녀.”
 “재미난 일? 이게 재미지 뭐. 시장 사람들이랑 어울려 이렇게 음식도 나눠 먹고 술도 나눠 먹는 재미로 버티는 거지.” 
 “옛날 시장이 번창할 때는 누구네 자식 결혼식날이나 김장 담그는 날엔 시장 골목에 상 펴 놓고 즐비하게 앉아 먹고 놀았어요. 보름날엔 윷놀이도 걸판지게 하고.”

 현재 남아 있는 시장 상인들은 재개발사업을 원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 그나마 이어가던 장사를 접거나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재개발바람이 불 때도 다른 곳엘 가 새로운 가게를 얻을 수 있는 자본이 없어 떠나지 못했던 그들이다. 올해 연세가 칠십일 세인 ‘한밭 칼국수’ 김수길 씨도 ‘연산상회’ 아저씨도 사는 날까지 장사를 계속하시겠다고 한다. ‘연산상회’ 아저씨는 누군가 이 시장통에서 제일 부자라고 하자 너털웃음을 짓는다. 가게 쪽방에서 새우잠 자는 형편인데 무슨 소리냐는 거다. 점포가 비니까 여기저기를 창고로 쓰는 것이고, 가게를 열고 있는 한 손님이 찾는 물건이 없으면 피차 불편하니 물건을 채워놓는 것뿐이지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말씀이시다. 한 블록만 나가도 갤러리아백화점 동백점이 있는 도심 복판. 원도심 중에서도 으능정이와 중앙로는 최근 활기를 찾아가고 있지만, 이곳은 땅값만 비싼 애물단지로 전락하여 상업지역의 역할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런데 땅의 소유자들은 대부분 외지 투자자들이라고 한다. 목척시장의 몇 개 안 남은 점포의 상인들은 세입자로 이곳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방값이 싸고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와 살다 보니 밤에는 우범지역이 되어 함부로 나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파트로 치면 40평대인데 사글세 20만 원이예요. 대전 어디서 이런 방을 구할 수 있겠어요.”
 박성대 씨도 방값이 싼 이유로 십 년 전 이곳에 들어왔다. ‘시민닭집’ 과 ‘목척 떡 방앗간’ 건물 이층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박성대 씨를 따라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지붕이 뾰족한 일본식 건물들은 슬레이트와 목재기둥들이 낡아 부서져내리고 있었다. 무너진 채 보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건물들. 옥상에 올라 시장을 둘러보자 쓸쓸한 풍경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장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목욕탕 굴뚝에는 수리 중인지 허물려는 것인지 철근 구조물이 쳐 있다. 들고양이들이 지붕과 지붕을 넘나들고 있다. 몇 집 옥상에 가꾸어져 있는 텃밭이 반짝 푸르렀는데, 박성대 씨의 넓은 옥상에도 고구마, 열무, 부추, 파, 고추, 가지, 깨 등 갖가지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어느 텃밭 부럽지 않겠어요?”
 “그렇죠. 옥상에 텃밭 일구고 동네 분들과 어울려 가족처럼 단란하게 지내는 재미로 이 동네를 떠날 수 없어요.”
 
 옥상에서 마을을 굽어보자 사람들이 사는 골목이 궁금해진다. 가을 초입인데 감나무 잎 몇 개가 노랗게 물들어 떨어져 있다. 주택가는 시장통에 비해 한결 깨끗하고 고즈넉하다. 두서넛 걸어갈 수 있는 골목과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이 교차하면서 담벼락과 담벼락이 잇대어 있다. 그 담벼락에 언뜻언뜻 꽃그림, 새그림, 나무그림 벽화들이 알록달록 그려져 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행복하세요.” 어느 골목에선 벽화를 그린 대학생들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한다. 벽화가 좀 더 많았으면 아쉬움이 고개를 든다
 대문 앞에 앉아 채소를 다듬으며 담소를 나누시는 아주머니들. 서로의 대문 앞에 앉으면 그대로 마주보는 시선이 되는 골목이다. 한 골목에선 팬티를 내린 여자아이가 “할머니 응가 했어요.” 걸어 나오고, 친구분들과 평상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아이구 지지배야, 볼썽사납게시리…….” 휴지를 말아쥐고 마주 뛰어나오는 풍경은 얼마나 따스한가. 도심 복판에서 만나기 어려운,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진정한 커뮤니티가 살아 숨 쉬는, 골목의 향연은 사람들에게 있었다. 목척시장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우러지는 모습들이 이곳에서 가장 빛나는 풍경이다.

 “예전엔 의자 3개에 아가씨도 있고 직원도 있었어요. 지금은 의자 두 개에 혼자서 꾸려가고 있지만요. 그래도 이발소 하면서 오남매 다 키우고 대전시 봉사상도 받았으니 보람이라면 보람이죠.” 
 대전시에서 13번째로 허가된 집. ‘조은이발소’ 정동진 사장님은 50년째 이 동네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계시는 터줏대감이시다. 올해 연세가 일흔일곱이라 하시는데, 정정하실 뿐만 아니라 꽤 미남이시다. ‘一心’이라는 한자가 수놓아져 있는 액자와 소독장. 가지런히 걸려 있는 이발용품들. 현대식 이발소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돌로 만든 명품 세면대. 손님의 머리를 감길 때 쓸 물을 받아 놓는 작은 타일박스. 이발비용이 가지런히 적힌 액자.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한 실내 모습이다. 1980년대에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셨는데, 틈틈이 서민아파트 노인분들에게 이발봉사를 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셨단다. 뜻밖에 대전시 표창장도 받으셨지만 상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니 지금도 이발봉사는 계속하고 계시다. 담백한 옛 정취가 흐르는 이발소에 잠깐 앉아 있는 사이 고향에 돌아온 듯 포근한 감회에 젖는다. 정동진 씨도 쓰러지기 전까지는 이발소를 계속 하시겠다고 한다. 이발소 앞 골목에는 꽃과 나무들을 심어 놓은 제법 큰 화분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어 작은 정원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이 마을이 저 나무들처럼 다시 푸르러질 때가 올까.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여든이 다 된 노역에도 삶의 터전을 놓지 않는 분들이 계시지 않은가.

 시장 골목 ‘대발이식당’으로 들어선다.
 “점심이여, 저녁이여? 집집 찾아다니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지.”
 오후 내내 시장골목을 돌고 도는 나와 몇 번이나 마주친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구청에서 나온 직원쯤으로 알고 계시나보다. 국밥과 막걸리를 팔고 있는 대발이식당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는 식탁 4개, 신발을 신고 앉을 수 있는 탁자 3개가 놓여 있다. 한 켠, 연탄창고가 있는데도 비교적 깔끔한 모습이다. 남자 손님 두 분이 식사를 하며 막걸리를 들고 계셨는데, 나 말고도 손님이 있다는 게 괜시리 반가웠다. “손님이 없어 굶어 죽겠어요.” 처음 만났을 때 골목에 물을 찌끄리면서 중얼거리시던 아주머니 말씀이 생각나서이다. 아주머니는 선지국밥을 내려놓으면서도, 다 먹는 동안에도, 밥 더 주랴, 반찬 더 주랴, 몇 차례나 물어오신다. 손님을 챙기는 정성이 따듯했다.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어둠이 꽉 차게 내려앉았다. 불빛이 켜진 시장통은 낮보다 환히 가게 안이 보이면서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대발이식당과 옛날손칼국수 사이 골목에 있는 현대식 공중화장실에도 불이 들어와 있다. 하루 매상을 셈해 보는 ‘연산상회’ 아저씨와 아주머니. 혹, 오늘의 첫 매상은 아닌지, 닭 한 마리를 손질해 팔고 있는 ‘시민닭집’ 아주머니. 낮엔 문이 열려 있는지 가늠이 안 되었던 ‘붐비나 의류수선집’ 아주머니도 부지런히 미싱을 돌리고 있고, 손님은 출입문에 비스듬히 기대어 기다리고 있다. 오늘 폐업한 슈퍼 아주머니는 지금까지 정리를 못 끝내셨는지 허리를 못 펴고 계시다. 가게 문은 닫았어도 어둠이 내리자 불을 켜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언뜻 비추인다. 빈 가게 안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시장 골목을 뎁히고 있다.

 시장골목 끝에서 일직선상으로 위치한,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안도르 찻집’. 옛 대전부윤의 관사였던 곳. 한때 귀신이 나오는 폐가로 불리며 수십 년 간 방치되어 있던 이 건물은 한 사업가와 지역예술인들의 손에 의해 카페로 재탄생한다. 입구에는 150년이 넘은 향나무가 운치를 더하고 있고, 불빛 환한 마당엔 키 작은 꽃들이 소담하게 피어 있다. 교실 마룻바닥, 담백한 실내디자인으로 서정적인 찻집 안에서는 김윤희의 ‘그림일기전’이 전시 중이었다. “그날 그날의 나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즉흥적인 표현방식을 이용한다. 성숙하고 현명해 보이기 위한 외면적인 나의 모습을 위해 억누르고 감추어야 하는 그림자와 같은 나의 이면을 나의 그림으로 드러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음악이 흐르고 낯선 손님의 발걸음에도 경계 없이 걸어다니는 마당 고양이들의 움직임을 쫓다가, 정원 흰 의자에 앉는다. 거기에서 안도로 찻집 주인의 명령(?)하에 ‘목척시장은 살아있다’는 주제로 기획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젊은 사진작가 두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목척시장이 살아 있다는 이미지를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 고민 중입니다. 어쩌면 살아있다, 라는 표현보다 이어가고 있다, 라는 표현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프리마켓요? 매월 첫째주, 셋째주 토요일 1시에서 6시까지 열리는데 많게는 70-80개, 적게는 50개 정도의 좌판이 열립니다. 구제품, 악세사리 같은 창작품, 즉석 케리커쳐 등이 인기 좌판들이죠. 주로 20대 대학생들이 와서 팔고 가는 형식인데 홍보가 덜 되어 정착되었다라고 하기엔 아직 멀어요.”

 목척시장 일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있다. 안도를 찻집을 중심으로 민예총 사람들이 작업하고 있는 ‘이응이야기’가 있다. 이들의 관심이 좀 더 확대되어 마을 전체에 벽화들이 더 많이 그려지면 골목 풍경이 한결 풍요로워질 듯하다. 통영 동피랑 마을이 문화예술인들에 의해 사람들의 발길을 얻었듯이 점점 개인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옛 골목이 지닌 따듯한 소통의 관계를 보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현대식 건물로 교체하는 개발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개발과 시간의 흐름에 의해 일종의 사회적 외톨이가 되어 버린 주민들과 시장 사람들은 서로를 보듬는 따스한 시선을 공유하며 삶의 터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늘 내가 만난 시장 사람들은 한결같이 재개발이 되어 그만두게 되기 전에는, 사는 날까지는 여길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젊은 사진작가의 말처럼, 이들이 있어서 목척시장은 이어지고 있고, 이어갈 것이다. 
 
 안도르 찻집에 머문 잠깐 사이 시장 골목은 다시 캄캄해졌다. 어둠이 내리고 한 시간여 따듯한 불빛이 감돌던 시장 골목은 일곱 시 삼십 분 조금 넘은 시간, 모두 문을 닫았다. 가장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는 곳은 ‘통일세탁’집이다. 20년 전, 세탁소를 개업하려던 해에 북한 핵문제로 떠들썩했던 터라, ‘통일세탁’이라 간판을 달았다는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저녁이 되자 서늘한 기온이 감도는데도 정말 덥다고 손부채질을 하신다. 세탁소 일이 대부분 열기와 씨름하는 일 아닌가. 처마 아래 줄줄이 걸려 있는 세탁물을 거두어 내리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나도 반나절 시장여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