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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오독

대흥동 소극장의 메카 ‘HotDog’를 찾아서


 대전의 소극장들은 대부분 대흥동 주변의 원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 영상 예술에 밀리고 상업주의의 그늘에 가린 연극이 숨 쉬는 거리. 젊은이들의 거리로 활기를 되찾고 있는 원도심은 소극장과 함께 호흡하고 있어 그나마 문화예술의 명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나로서도 연극을 보기 위해 찾는 거리가 된 중앙로. 삼성생명 건너편 골목으로 50여 미터 들어간 곳에 위치한 소극장 핫도그의 행정주소는 대전시 중구 중앙로 122번길 15번지이다. 번화한 으능정이보다는 화방과 표구사들이 들어서 있어 좀 더 한적한 골목. 때마침 내리는 가을비의 운치에 젖어 천천히 2층 계단을 오르니 대표 최창우 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지난해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재미있게 본 연극 <인형의 집>의 주연배우이시고 핫도그에 연극을 보러 올 때마다 뵌 분인데 대표인 줄은 몰랐다. 연극배우와 관객의 만남이 구체화되니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핫도그의 역사

 “2009년 대전시 소극장 지원사업의 대상지역이 이곳 대흥동 주변에 한정되어 있었어요.”

 소극장 핫도그를 비롯하여 드림아트홀, 마당, 고도, 상상아트홀 등의 소극장들이 대흥동에 개관하게 된 데는 당시 대전시 지원사업의 영향이 컸다는 얘기이다. 최창우 씨는 가난한 연극배우들이 공연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값진 선물이었노라고 지금껏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듯 감회에 젖는다.  

 

[극장 핫도그 최창우 대표]

“연극다운 연극을 보려면 핫도그에 와라,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말없이 매우 느린 연극, 내면을 보여주는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배우는 드러내놓고 갈등을 표출하지 않지만 관객은 연극의 흐름 속에서 갈등을 읽어내는 거죠. 표시내지 않고 들키지 않는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2009년에 개관하여 올해 5년차로 접어든 소극장 핫도그는 극단 놀자가 만든 연극전용 소극장으로 연극 고유의 무게와 감동, 흥행보다는 작품성 위주의 공연활동을 추구하고 있다.  이 장소는 극단 놀자 대표이기도 한 최창우 씨가 천정이 높아 소극장을 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평소 유심히 보아 두었던 건물이다. 무엇이든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을 쏟으면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대학 연극동아리 활동으로 연극에 입문하게 된 최창우 대표는 졸업 후 4년간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하지만 연극에의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극단 놀자를 창단하고 연극다운 연극을 하기 위해 소극장 문을 열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연극의 세계는 배고픔의 대명사로 불린다.

 “처음엔 관객이 없어 연극을 못 올린 적도 있어요.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작품 만드는 데 신경쓰다 보면 한해가 흘러가곤 했지요. 핫도그는 ‘뜨거운 개’라는 의미예요. 고등학교 시절 제 별명이 ‘미친 개’였는데 그걸 좀 더 순화시켜 붙인 이름이죠.”

 2009년 개관공연 <이름을 찾습니다>를 시작으로 극단 놀자의 자체제작으로 올린 연극은 <You don't understand!>(송선호 연출), 2010년에는 <춘천, 거기>(연출 최창우), <귀신이 곡할 노릇>(연출 송선호), <들에 핀 백합>(연출 최창우), 극단 유랑선과 극단 놀자의 레퍼토리 개발 w.s 공연으로 <몰리 스위니>, 2011년에는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김윤희 연출), 2012년에는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연출 이동규), 2013년에는 <진정한 진실>(연출 홍재웅), 서늘한 반전의 서스펜스 호러 연극으로 각광을 받았던 <두 여자>(공연예술집단 노는이) 등이다. 그밖에 대관작으로 2009년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인 <청춘의 등짝을 때려라>(연출 송선호, 극단 유랑선), 2010년에는 <황소, 지붕 위로 올리기>(연출 임은희, 극단 금강), <장군슈퍼>(연출 김태섭, 극단 금강), <날개>(연출 임은희, 극단 금강), 2011년에는 <일등급 인간>(연출 서재화, 극단 손수), 2012년에는 <미남선발대회>(극단 감탄사), 2013년에는 <고래>(연출 유창선, 극단 홍시) 등의 작품들을 들 수 있다.


핫도그 연극의 주제와 예술적 가치들

 2011년 공연작인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2011년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4일간 개최된 ‘제20회 대전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최우수연기상, 신인상 등 4개 부분을 석권한다. 소극장 핫도그가 지향하는 연극과 많이 닮아 있는 작품으로 최창우 대표 개인으로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한다. 2011년도는 2009년부터 받아 온 대전시 연극전용 소극장 지원사업이 종료되는 해였는데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것. 대전시 연극전용 소극장 지원사업은 극장의 개관뿐 아니라 양질의 공연작품을 생산하는데도 한몫을 한다. 이렇듯 우수한 연극의 대부분이 공적기금을 받아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열악한 연극계의 사정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 공적기금의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 사례이다.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기준은, 아마도 가장 보편적인, 다수의 손에 놓여진 가치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치들만으로 이 세상을 나눈다면 보편적이지 못한, 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한, 그 가치들은 과연 버려져야만 하는 것들일까. 내 기준으로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틀렸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해 받을 수 없는 사랑을 주제로 그 고민에 답을 내려 보고자 했다. 감히 ‘운명’을 내세워 그것을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삶’ 전부로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우리의, 물음과 고민을 보편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더 많은 수의 사람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_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김윤희 연출가의 말에서

 “사랑은 모든 예술의 최고의 소재입니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존재합니다. 처음부터 아픔과 상처를 각오한 사랑, 미친 집착 같은 사랑, 이제 막 시작한 핑크빛 사랑, 가슴에 품은 채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사랑…어쩌면 유치하고, 또는 찌질하고, 한없이 절박하고 가슴이 시리지만 먼 훗날엔 배시시 웃음 짓게 하는 것 역시 젊음 시절의 사랑이기에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사랑이란 모습 그대로를 현실감 있게, 고유한 감성 그대로를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_ <춘천 거기>, 최창우 연출가의 말에서

 “80년대는 용광로와 같은 불길 속에서 모든 것들이 뒤섞여 꿈틀거리는 시기였다고 생각됩니다. 억압과 해방감, 사상적 신념과 좌절, 풍요와 빈곤, 그밖에 온갖 집단적, 개인적 욕망이 공존했던 시대. 지금은 정의로움과 희생, 쟁취 등을 떠올리게 되는 향수 어린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발견하고 싶었던 인간 본성과 진실은 아직까지 뿌연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역사로서의 80년대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근거로 시대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근거 위에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연극 행위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_ <You don't understand>, 송선호 연출가의 말에서

 2011년 당시 20대 연출가로 주목을 받은 김윤희 씨의 말을 보면 ‘보편적이지 못한 가치’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감지된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진실’과 그 시대상황과 맞닿아 있는 ‘인간 본성’, ‘갈등과 욕망’ ‘절망보다 징그러운 희망’ 그리고 ‘사랑’과 ‘성장통’ 등이 핫도그 연극의 중요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마구 웃고, 떠들고, 울어대는 연극이 아니라 배우의 표정과 몸짓으로 인간내면이 보이고 갈등이 표출되는 그런 연극. ‘희곡 언어의 육화’, ‘감성을 성찰하는 무대’, 즉 예술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핫도그 연극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소극장 핫도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송선호 상임연출가이다. 극단 유랑선 대표이기도 한 그는 <바다와 양산>(동아연극상작품상수상), <루나자의 춤>(대전예술의전당 우수작선정), <청춘의 등짝을 때려라>(‘09 서울국제공연예술제초청작) 등 섬세하면서도 언어를 정교하게 다뤄 공간에 각인시키는 연출형식으로, 그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구체성을 확장하는 무대로 연극성을 회복한다’는 그의 연출론은 최창우 대표가 추구하는 연극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초창기 최창우 대표가 막연히 꿈꾸던 연극 스타일의 현실화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 구체성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희망을 갖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천상 연극쟁이들인 최창우 대표와 송선호 상임연출가의 연대와 소통이 지금의 핫도그를 지켜내고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당연히 연극의 예술성과 완성도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핫도그의 변화와 계획

 “대전의 연극공연이 자체 제작을 하기 보다는 인지도 있는 서울공연을 데려와 5:5 공연이 빈번해지는 것은 대전연극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지방 공연 첫날에는 A급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점점 B팀, C팀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관객들에게도 오히려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어요.”

 서울 제작 작품을 지방으로 유치하는 데는 상업적인 이유가 크다. 투자금 회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웃고 즐기는 상업연극이 범람하면서 정극이라 표현되는 인간내면 심리를 고찰하는 연극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서울 대학로 연극이 저물어가는 이유도 지나치게 코미디적으로 흘러간 풍토에서 비롯하고 있다. 제작여건이나 경제적인 사정에 의해서라면 서울에서 제작은 맡되 배우는 대전연극의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게 최창우 대표의 소신이다. 그래서 소극장 핫도그는 자체 예술성 가치 창출에 노력하면서 좋은 작품을 올리는 것과 대전연극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에 최우선의 중점을 둔다.

 

“관심이 없어서 연극을 보지 않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이 극장에 와서 연극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돈이 없어서 연극을 볼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만은 참을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극을 하고 있지만 현재 웬만한 극단이라면 공적 기금, 즉 지원금을 받아 제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면 관람료가 내려가야 하는데 올라갑니다. 상업구조에 편입됨과 동시에 포장비가 비싸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 속에는 개런티와 비연극인에게 지불되는 인건비, 그리고 홍보비도 포함됩니다. 예술성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제작 여건입니다. 앞으로 더 가속화되겠지요. 여기서 말하는 관람료는 상업연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업연극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원금과 상관없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은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저희극단은 연극 문화가 공적인 구조를 가진 제도로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핫도그 공식홈페이지(cafe.daum.net/TheatreHotDog)에서 발견한 상임연출가 송선호 씨의 말은 좀 더 근원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 연극의 공적 구조와 평등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외부의 여건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연극을 지켜나가며 관객과 만나는 예술문화, 예술정신을 추구하는 엄결성이 극진하다. 연극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좌석을 마련하는 것이 극단이 해야 할 일이며, 그분들이 부담 없이 극장을 찾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나갈 생각이라는 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도 타 소극장에 비해 대관이 많이 되는 편이고 해가 갈수록 대표 부담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니 다행이죠. 뭐 거창한 계획이 있겠어요. 지금껏 얘기한 것에 대하여 약속을 지키는 게 계획이 아닐까 합니다. 올해부턴 대중이 좋아하는 연극도 올리면서 동시에 좀 더 수준 높은 연극을 준비하는 방향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호흡하는 것이죠.”

 최창우 대표의 관심도 시종일관 순수 정극에 대한 애정과 관객과의 뜨거운 만남에 집중되어 있다. 연극다운 연극을 하기 위해 소극장 운영이 도움이 되는지도 단언하기 힘든 상황에서 아마추어 대학 연극반에는 가능한 대여를 안하고 버티고 있지만 대략적인 한 달 운영비가 이백오십만 원. 작지도 크지도 않은 금액이지만 연극과 관객의 만남은 늘 만만치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원도심에 바라는 것들

 “술집이 너무 많아요. 화방이나 글 쓰는 사람들, 문화예술인들의 사무실이나 작업실 혹은 작지만 이쁜 찻집 등으로 채워진다면 문화적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지 않겠어요?”

 최근 원도심 활성화 사업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어 순차적으로 개선될 여지는 있지만 현장의 예술인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아직은 멀다는 얘기이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극장과 연계되어 무료공연을 올려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 있다. 술집과 유흥업소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가게 세도 올라가고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은 좀 더 월세가 싼 변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낳는다. 최창우 대표가 가장 걱정하는 사안이다. 소극장이 생기면서 주변골목이 살아나는 상생의 효과도 있다고 보여지는데 그 기여도가 나중엔 월세 인상으로 연결된다면 이보다 큰 손실이 어디 있겠는가.

 “대전시에서 연극공연을 알릴 수 있는 광고판이나 홍보판을 더 많이 설치해주면 좋겠어요. 우리들공원이나 으능정이 쪽에는 몇 개 있는데 위쪽으론 거의 없어 아쉽습니다. 대전 시민들에게는 웃고 즐기는 연극을 선호하기보다 이삼일 동안 한 권의 책을 읽듯이 느긋한 마음으로 연극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최창우 대표의 바람은 소박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지난 2년간 연극의 감상을 성숙시키기 위한 관객교육을 진행했던 이유도 그러한 절실함 때문이다. 소극장 핫도그는 이름에 걸맞게 연극판에서 뜨겁게 살아내고 있다. 그 사이 소극장의 객석도 밤색 앉은뱅이 의자에서 쿠션 좋은 주황빛 의자로 바뀌어 있다. 연정국악문화원이 사라지면서 거기 의자를 개당 만 원씩 구입하여 교체했다고 한다. 한결 편안하고 환해 보이는 객석에 앉아 책을 읽듯이, 한편의 연극을 보고 듣고 읽는 관객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대전 시민들이 연극의 언어를 통해 사색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성숙해진다면 소극장 핫도그의 문턱이 반질반질 윤이 나겠다. 그것이 진정 즐거운 놀이 아니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