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독오독

오늘의 글

  송인효에게 박수를

  정 덕 재 (시인 ·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책임작가)
 
 대학 수능시험이 끝났다. 시험을 치른 다음날 나는 인터넷을 뒤져 국어영역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이형기의 시 <낙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청준의 <소문의 벽 > 등이 문학 관련 문제의 지문으로 출제되었다. 비문학 지문은 과학  ·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되었다. 이번 국어영역에 나온 지문 가운데 눈에 들어온 내용의 일부를 옮겨보겠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를 펴내며 역사 연구의 기본 단위를 국가가 아닌 문명으로 설정했다. 그는 예를 들어 영국이 대륙과 떨어져 있을지라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 왔으므로, 영국의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서유럽 문명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이 지문을 인용한 것은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의 처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거대한 유럽문명을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고딩들이 처한 상황도 거대한 경쟁체제의 잘못된 교육환경과 깊은 상관성을 갖는다. 오직 대학만을 향해 달려가는 고달픈 인생, 반에서 1등을 해도 흔히 말하는 유명대학에 들어가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그들은 경쟁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동안 10대의 풋풋함은 지쳐가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 순응해갔다. 그 중에는 원하는 대학에 가는 고딩도 있겠지만 생각하지 않았던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또는 대학을 포기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고딩도 있다.

 

[송인효, 인상 형제, 왼쪽 기타치는 녀석이 인효다]

 


 내가 잘 아는 한 선배의 아들이 이번에 수능시험을 보았다. 그 녀석 이름은 송인효다. 인효는 홍성에 있는 풀무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여느 학생과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녀석이 수능을 치른 것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을 옥죄는 수능이 뭔지 궁금해서 치른 것이다. 녀석은 몇 개월 전에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에 1년 동안 친구들과 농사일을 하면서 노래를 열심히 만들다가 군대에 가겠다는 계획을 말했다. 시험을 치르기 1주일 전인 시월의 마지막 날 밤. 그 녀석은 촛불문화제의 초대가수로 노래를 불렀다. 여느 수험생이라면 시험을 코앞에 두고 이렇게 간 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선배는 녀석이 대학을 가든 안가든 등록금에 해당하는 돈을 주겠다고 한다. 그 돈으로 떡을 사먹든 밥을 사먹든 알아서 쓰라고 말이다. 내가 짐작하기에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녀석 답게 악기점을 기웃거리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홀가분하게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떠날지도 모른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대학에 갈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녀석의 진지한 고민 속에서 나온 선택일 터.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고딩의 의지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다시 국어영역의 지문을 조금 더 인용해 보겠다. “성공적인 응전을 통해 나타난 문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문제, 즉 새로운 도전들을 해결해야만 한다. 토인비에 따르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창조적인 인물들이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다수의 대중까지 힘을 결집해야 한다”

[인효 아버지, 송성영 작가] 

  
 앞서 소개한 송인효같은 고딩을 나는 토인비가 말한 창조적인 인물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이 많아질 때 경쟁으로 치닫는 교육환경도 조금은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녀석의 선택이 후회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어쩌면 세상을 익숙한 대로 이해하려는 어른들의 습관화된 인식일지 모른다.


 수능시험이 끝난 날, 2학년 고딩을 둔 아빠가 “넌 이제 1년 남았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지는 않았는지, 1학년 고딩을 둔 부모가 “넌 이제 2년 남았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 들어가는 건 고딩 스스로가 아니라, 등을 떠미는 어른들이다. 경쟁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동인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 경쟁이 공정하지 않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불공정한 경쟁에서 배우는 건 남을 생각하는 배려와 나눔이 아니라 배제하고 독식하려는 태도이다. 

  수능 국어영역 문학 지문으로 출제된 이형기의 시 <낙화>의 한 구절을 적는 것으로 나는 송인효라는 한 고딩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