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오독 2013.11.21 15:29

블란서 영화를 보러갔다 - 대전 프랑스문화원 대흥동 분원


프랑스 문화원이 있는 대흥동 풍경

 가을은 이 세상 어딜 가나 다 아름답다고 하지만, 대전 대흥동의 가을은 언제 봐도 특별한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특히 대전고등학교 맞은편 골목길부터 선화동을 지나며 역전통을 가로지르는 은행 나무길은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풍경 좋은 길이다. 그 은행 나무들이 10월말부터 11월 초순 혹은 중순까지 노랗게 물들어 노란 카펫을 만들어 놓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길을 걸으며 자연이 빚어놓은 빛깔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했던가?

 가을마다 길가에 떨어지는 은행잎보다 더 많은 사연들이 그 길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대전이라는 도시가 아무리 많이 변했어도 해마다 가을을 노랗게 물들이는 노란 그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바로 그 은행나무 길가 한 쪽에 대전 프랑스문화원 대흥동 분원이 자리 잡았다. 길의 풍경과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가.

 80년대 외국 문화를 접하기 쉽지 않을 때 몇 몇 친구들은 불란서 영화를 보러 프랑스 문화원에 가기도 했었다. <쉘부르의 우산> <금지된 장난> 장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이브 몽땅의 그 유명한 “고엽”이 처음 소개된 영화 <밤의 문> 그리고 배우 장 뽈 벨몽도가 나온 것 같은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영화 등등을 보았다고 했다.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수월하지 않던 시절이라 프랑스까지는 못 가더라도 프랑스 문화와 예술을 기웃거리며 어떤 동경 같은 마음을 품고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바로 그곳이 지금도 대흥동에 자리를 하고 있다. 지금의 대전 프랑스 문화원 대흥동 분원은 80년대에 시민회관 근처에있었고, 대학 안에 자리한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의 대흥동 은행나무길로 이사 온 지는 4년 되었다.

 대전 프랑스 문화원 본원은 용문동에 있고 대흥동에 있는 것은 분원인데, 프랑스 문화원이 주로 하는 사업은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프랑스 문화를 알리며 여러 가지 행사를 열기도 한다.  대흥동 분원 2층은 갤러리, 1층은 카페인데 카페공간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자주 연다. 뒤쪽에 마당도 넓게 있어, 여름철엔 야외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시끄럽다는 주민이 있어 지금은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4년 동안 100여개의 행사를 했는데 프랑스를 알리는 일, 국내 작가 전시, 대전 와인 페스티벌 기간에 프랑스 와인을 알리는 일 등, 꽤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는 곳이다. 전국의 프랑스 문화원 중에서도 대전은 꽤 역동적인 곳으로 성장했다.


전창곤 대전 프랑스 문화원장 

[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


 대전 프랑스문화원 대흥동 분원은 1층의 카페 이름은 “레모볼랑”이다.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을 레모볼랑에서 만났다. 빠리지엥 같은 모습은 아니고 그냥 수더분한 이웃 아저씨 같은 모습이 친근했다. 우선 “레모볼랑”의 뜻을 물었다

 “레모볼랑은 말(言)이 날아다닌다는 뜻이예요. ‘날아다니는 말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즐겁게 얘기 나누면, 이 공간이 날아다니는 말로 가득한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지었죠“

그날은 음악도 날아다니고 커피향과 햇살도 날아다녔다. 레모볼랑에는 길가에 써 있는대로 블렌드, 에티오피아, 모카, 콜롬비아, 과테말라, 에스프레소...이런 커피도 있고, 다즐링, 얼그레이, 이런 홍차와 녹차, 밀크티, 라떼 등등...다른 찻집에 있는 음료와 차 대부분이 있다.  들어서면 레모볼랑이 꽤 넓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들어서서 오른쪽엔 프랑스문화원에서 하는 여러 가지 행사가 소개된 팜플릿이 놓여 있었다.

팜플릿을 하나 하나 펼쳐보면 이곳에서 종종 전시회가 열리고 파티도 열고, 음악회가 열린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해외 여행도 많이 다니고, 인터넷이니 영화며 TV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프랑스를 많이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렇지 않아요.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 프랑스 문화는 많이 모르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피상적인거죠.우리 문화의 다양화를 위해서도 프랑스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가까운 일본에 대해서도 반감만 가질 게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이예요“

전창곤 문화원장은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유학했는데, 고생하며 외국 문물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돌아와서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그러다 보니 한국의 대학은 대학이 아니고 유치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열을 가지고 배우려는 초롱초롱한 눈이 없고, 그냥 부모가 4년 동안 다른 데로 가지 않게 놓아두고 스펙이나 쌓게 하는 곳인 것 같애요. 게다가 대학가에 이렇게 술집 많은 나라가 어딨을까요?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왔구요?”

이렇게 얘기한다. 아마 20년간의 유학 기간 동안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어렵게 살아온 만큼, 우리의 대학생들이 너무 연약하게 보여서였으리라. 그리고 이 말에는 그의 가치관이 묻어 나는 것 같았다.


버려진 것들에 대한 시선

 지난 여름 대전시 대흥동의 대전 프랑스 문화원에서는 <버려진 그리고 되살아난 작품들>이란 제목의 좀 색다른 전시회가 열렸다. 제목만 봐도 전시 내용을 알 것 같지 않은가. 거칠게 말하면 주워온 물건들이고, 좋게 말하면 버려져서 쓰레기 더미로 갈 뻔 했지만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의 높은 안목으로 귀한 보물들이 된, 진품명품을 모셔 와 새생명을 부여해 전시를 한 것이다. 거기엔 조각상도 있고 그림이 든 액자도 있고, 생활 용품도 있었다. 한때는 휘황한 조명 아래 뭇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전시작품들을 보면서 대체 누가 만들었고 어떤 경로로 손에 넣었으며 왜 버려졌을까? 하는 생각들을 했을 텐데...작품 아래엔 작가 이름은 없고, 어디서 가져 왔는가만 적혀 있다.
 
 이 전시회는 전창곤 원장의 가치관과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버려진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처음엔 유학생이라 돈이 없어 버려진 생활 용품들을 가져다 생활 할 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프고 필연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버러진 물건들을 살피다 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은 물건을 금세 사들였다가 조금 쓰고 버린다는 데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고, 아깝기도 했다고 한다.
 
 한 번 눈이 맞아 사들인 가구나 조각품, 미술작품, 혹은 악기 책장 이런 것들과 한 평생은 살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가치를 지닌 것이 평가 절하 받은 채 버려지는 걸 보면 너무나 아까워 거둬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안아 들이다보니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갖고 있는 존재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수집 습관을 갖게 했다

 
 그래서 남들은 지나치는 고물상, 재활용품점, 벼룩시장, 그리고 분리수거날에 매의 눈을 하고 지켜보다가 가져올 수 있는 건 가져오고 사 올수 있는 건 사온다.

“버려진 물건을 볼 때 가장 가치 있게 보는 기준은 물론 미학적인 주관적 관점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 세월의 힘을 이겨낼 수 있는 견고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영원까지는 감히 바랄 수 없다 해도 강산이 수십 번 쯤은 변해도 가치가 더 빛을 발하는 물건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입양을 결심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도 쓰레기 더미로 갈뻔한 물건들에서 귀한 보물을 발견하는 안목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수집은 할 수 있을 텐데요, 아무래도 옛날 물건들이 더 오래 쓸 수 있는 게 많아요. 요즘엔 처음부터 잠깐밖에 쓸 수 없도록 만들어지는 게 많죠.”

그렇다면 그 많은 물건들은 어디다 둘까요? 둘 곳이 있나요?

“물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같이 깔끔한 아파트에 오래된 물건들을 둘 곳은 없겠죠. 저는 다행히 금산에 허름한 집을 사서 거기 물건도 두고 주말에 가서 자연과 지내다 와요, 지저분한 물건을 싫어하는 배우자도 없으니 오래된 물건 수집이 가능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카페 “레모볼랑”에도 오래된 등이나 용도를 잘 알 수 없는 저울 같은 게 있다. 용도를 물으니

“저런 저울은 원자력 연구소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아름다워서 샀어요...가격? 가격은 고물이니까 그냥 무게로 달아왔죠. 하하...”

고물이 되는가 작품이 되는가는...아름다움을 보는 훈련이 결정하는 게 아닐까 한다.

“프랑스 유학하면서, 합리적인 사고를 배운 것 같애요. 창피함 때문에 자기한테 이로울 수 있는 걸 포기하지 않는 걸 배웠다고 할까요?”

그래서 재활용품 더미에서 뒤꼭지의 따가움을 무릅쓰고 귀한 것들을 과감히 모셔올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 게다. 가전제품이건 가구건 대개의 생활용품이 금세 버려지는 인스턴트화된 세상에서 저 물건이 얼마나 오래 지속적인 가치를 갖는가 하는데 관심을 갖는 것은 속전 속결의 시대에 부적응하는 걸까?

그건 어쩌면 원도심을 지키려는 마음일 것이다. 낡은 것, 낡은 건물, 오래된 거리, 그걸 지키는 조금 느린 사람들...그곳에 전창곤 프랑스 문화원장의 마음이 있다. 오래 되면 오래 될수록 더 가치 있어지는 와인 같고 된장 같고 진품명품 같은 마음! 그건 오랜 거리와 건물들로 가득한 프랑스의 도시 같기도 하고, 또 원도심을 지키려는 마음 같기도 한 것이다.

 

 


원도심을 살리려면?

 카페 레모볼랑 바깥 풍경은 원래 낡은 기와집과 한옥들이 즐비했던 곳인데, 지금은 계속 원룸같은 신축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예전에 서 있던 건물도 몇 개 사라졌다. 전원장은 한국은 몇 년만 떠나있다 와 봐도 거리며 건물이 싹 바뀌어 있는데, 프랑스는 몇 십년 동안 건물이고 거리고 그대로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다보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우리는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는...” 곳에서 살게 된다. 추억도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원도심은 아직은 그래도, 옛날에 걸으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던, 중구청 주변 골목들, 그리고, 소주와 두부 두루치기를 먹으며 뭔가에 웃고 울며 취하던 “진로집”, 커피를 마시며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했던 “뮤즈”, “산에 언덕에” “브라암스” “전람회” “맥” 등등의 카페들의 흔적이나 장소가 남아 있다. 옛날 풍경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건, 이곳을 지키는 지킴이들 덕분인데, 그리운 곳을 그냥 남아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은

“원도심을 살리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말하고 싶어요“. 살리려고 이것저것 신경 쓰고 투자해서 살려놓으면 상업성이 끼어들어 땅값 건물세를 올려놓아 가난해도 지킬 수 있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지키려는 노력이 오히려 망칠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더 안타까운 건, 대전의 가을을 그 어떤 존재보다 눈부시게 펼쳐 놓곤 하는 은행나무 거리! 대전 프랑스 문화원 대흥분원 창에서 바라보며 가을마다 황홀함에 넋을 놓게 하는 그 은행나무들이 잘릴 위기에 있다고 한다. 수 십년 걸려 자란 은행나무는 시대의 풍경이자 역사다. 풍경은 세월의 덧칠 속에서 변해가고 익숙해진다. 그런 풍경은 건물을 짓듯이 만들어 낼 수 없는 법. 프랑스문화원에 어울리는 은행나무가 베어질 수 있다는 말이 있어 걱정이다. 전기톱 앞에서 “차라리 나를 대신 자르시오” 라고 시위라도 해야할까?  더 이상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대흥동의 오랜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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