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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백년된 집 같은 극단을 만들고 싶어요 - 나무시어터 연극협동조합

나무같은 극단, 풀잎같은 배우

나무시어터는 2010년 5월1일 대전에서 창단한 극단이다. 텔레비전과 영화, 그리고 게임 등 영상문화가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가운데, 당시 극단 창단 소식은 하나의 신선한 도전이었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회귀였지만 연극이 인생의 본질을 탐구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빛나는 아날로그의 부활이었다. 

 


 
지역에서 15년 이상 활발한 공연작업과  다양한 사회문화예술 활동을 해온 문화예술인 10명이 뜻을 모아 모였다. 그들은 연극예술을 토대로 예술의 자양분과 무대의 호흡,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기 위해 뜻을 함께 했다. 나누는 연극, 함께하는 연극,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연극, 그래서 모두가 공유하는 연극공동체를 만들기로 결의를 다졌다.

(儺) 푸닥거리
  (舞) 춤출
    (詩) 시
      (語) 말
         (攄) 펼치다

나무는 삼국시대의 무극을 가리키는 말이고 시어터(Theatre)는 연극,극장, 관객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무시어터는 이런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나무는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나무가 되기도 하고, 이육사의 시 <교목>이 되기도 한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 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지역 연극판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선후배들이 모여 극단을 만든 만큼 바람도 흔들지 못하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싶었던 연극쟁이들. 그들은 연극공동체의 뜻을 모아 극단을 창단하였고 더불어 함께하는 작업을 극단 운영의 중요한 방향으로 삼았다.
 대전에는 극단이 열다섯개 가량 된다. 이 가운데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극단은 여덟 게 남짓. 그 가운데 나무시어터는 다른 극단과 달리 막내 단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어서 젊은 열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젊은 단원이 많다는 것은 열정과 도전의식을 가진 식구들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젊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에너지이자 동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여기 저기 가리지 않고 찾아가는 공연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다른 극단과 차별화되는 점이 무대 밖 예술작업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나눔 공연에도 자주 참여하는 편이다. 지역의 음악 미술 전문가들이 극작업에 참여를 하듯이 이들 또한 지역축제와 소규모 행사에 무료로 참여하는 품앗이 작업을 자주하고 있다. 극단 창단시 꿈꾸었던 연극공동체를 현장 작업을 통해 구현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이들의 지향인 것이다.


대전연극, 도약의 중심에 서다

 현재 대전의 극단들은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 .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봐도 연극판이 풍성해졌다는 게 지역 연극계의 중론이다. 각 극단마다 내부역량을 강화한 것이 주요했지만 대전시에서 소극장 지원사업을 펼친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극단들이 소극장을 마련하면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횟수가 늘어났고, 한달간의 장기공연을 시도하는 극단들도 늘어나고 있는 점도 도약의 발판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무시어터가 창단 작품으로 올린 < 뱃놀이 가잔다>의 장기공연은 지역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뱃놀이 가잔다>를 무대에 올린 시간만해도 석달 남짓, 장기공연은 극단의 힘이기도 하지만 극단운영의 역량을 키워가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대흥동에는 소극장들이 모여 있다. 시에서 원도심 활성화 사업을 하는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대전 문화예술의 근거지가 대흥동과 은행동이라는 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사실 둔산 지역이 들어서기 전만해도 대흥동 은행동 선화동에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의 작업공간이 있었고 문화예술 담론을 가지고 열정어린 토론을 벌이기도 한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에 대한 지난날의 향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대전의 원도심을 찾아 예술의 향기에 젖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연극인과 문화예술인들이 중심으로 펼친 <대흥동립만세>같은 문화예술이벤트도 원도심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예술인들을 결집시킨 동력이 되었고 시민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원도심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산호여인숙같은 게스트하우스나 공감만세같은 여행사가 원도심기행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도 문화예술의 뿌리를 강하게 만든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무엇보다 원도심내에서 소규모 행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그것이 단순히 보여지는 모습에 끝나지 않고 시민들이 참여하고 즐기게 됐다는 점이 원도심 문화예술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고 그 중심에 나무시어터가 있었다.

 

누구나 즐겁고 싶지 않나요, 펀(fun)짓거리
그런 점에서 지난 6월에 나무시어터가 펼친 <펀짓거리>는 극단 운영의 방향과도 상당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단원들끼리 뭐 재미있는 거 없을까, 흔히 말하는 뻘짓거리 한번 해볼까 하다가 펀(fun)짓거리를 펼치게 된 것이다. 골목이나 작은 공원에서 한바탕 난장을 펼친다는 생각으로 즐겼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펀짓거리 공연은 모든 장소가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조명을 받아가면서 조용한 무대위에서 연극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작은 골목에서도 얼마든지 연극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무시어터의 정체성을 확인시키는 좋은 작업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자치단체에서 하는 교육 연극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우도 극단의 활동영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면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하는 유성구에 가서 주민들이 이 제도를 잘 알 수 있도록 주민참여예산제를 주제로 연극행위를 한 것은 연극을 통해 얼마든지 소통하고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를 꿈꾸며 오늘도 대전연극의 한 중심에 서 있는 극단 나무시어터. 그들은 무대 위와 무대 밖의 연극을 고민하면서 오늘도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단원들이 예술강사로 참여하고 문화예술행사를 기획하고 다른 예술작업에 왕성하게 참여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연극인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무시어터도 넘어서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문제, 아마도 연극인생 마지막까지 숙제일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극장이 없다보니까 공연을 준비하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또한 젊은 예술인들의 수급이 원만하게 이뤄내는 것도 극단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줄탁동기의 정신, 연극협동조합, 마을기업으로 변신

지난 6월, 나무시어터는 또 다시 의미있는 조직운영의 실험을 단행했다. 협동조합으로 변신을 위해 창립총회를 가진 것이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의 중요한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연극협동조합으로 조직구성을 변화시킨 나무시어터는 지난 9월  마을기업으로 지정됐다. 협동조합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김기섭씨 같은 전문가는 ‘안팎에서의 줄탁동기없이 협동조합은 시대적 소명을 다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줄탁동기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새끼와 어미닭이 서로 안팎에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극단이 연극협동조합으로 변신한것은 서로 의지하고 힘을 합치는 공동체 문화를 향한 실천적 움직임이라고 보기에 충분했다.

 

 전문극단이 협동조합으로 성격을 달리한 것도 눈에 띠었지만, 마을기업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은 또 다른 화제였다. 마을기업은 지역 사람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경제적인 관점이 녹아있다. 나무시어터가 빠른 속도로 극단의 성격과 위상을 새롭게 다져나갈 수 있는 것은,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이자 예술 경쟁력을 갖기 위한 진지한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성용수 사무국장이 들려주는 연극이야기

취재를 위해 찾아간 극단 사무실 건물의 1층에는 “ 수상한 부엌”이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배고픈 이들이 배우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밥은 먹고 사나,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일행을 반갑게 맞아준 이는 성용수씨다. 극단의 살림을 맡고 있는 사무국장 성용수씨에게 연극을 언제 시작했는지 물었다.

“고교 졸업하고 95년 때부터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 삶을 살아보고 싶더라구요
 노숙자 과학자 사장 모든 꿈들 이룰 수 있는 게 연극배우 아닌가요 ?”

성용수씨는 배우의 삶을 통해 세상 전체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게 좋아 연극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15년 남짓, 다양한 배역을 통해 타인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 배우는 공유하는 삶이라는 점에서 언제나 매력만점이다

“연극을 할 때마다 매번 나름의 만족도가 높아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다른 삶에 대해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된다는 점이 좋구요. 배우가 카멜레온적인 점에서 흥미가 배가 됩니다. 결국 그게 삶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의 깨우침을 무대 위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먼저 인생을 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내 작업을 보면서 깨우치는 관객도 있기 때문에 나와 관객은 다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한 몸인지도 모른다.

“올해 아이가 태어나는데 고민이 많아지네요. 그것 또한 변화하는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작업을 하는 건 연극이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고생이 시작될지 모른다. 아이가 태어난 뒤의 인생이란 또 다른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로서의 삶도 빛나지만 극단을 더욱 알차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시선을 가져야 할 필요성도 느꼈다는 성용수씨.
 
“축제 기획이나 문화예술기획 등에 애착이 있어요 공연은 당연히 해야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이외에 페스티벌이나 다양한 장르의 문화가 접목된 부분에 재미가 있어요. 사실 연극이 종합예술인데 다양한 체험 만나고 그런 일 하고 싶네요”

원도심 활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한 <뻔짓거리>를 기획하고 참여한 것도 결국은 기획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장르의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때 극단도 발전하고 지역 연극판도 커진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 연극에서 배우는 꽃이고 무대공연이 시작되면 연출이나 스탭은 의미가 반감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모든 스탭이 중요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배우가 만들어가기 때문에 극에 어울리게 잘 놀면 되지 않을까싶어요. 어릴 적에는 어떻게 하면 멋있을까 ? 이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무대에서의 역할의 삶을 얼마나 살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대흥동에 소극장이 많이 들어서는 건 고무적인 일이지만 이런 소극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더욱 치밀해져야 한다. 참신하고 탁월한 기획, 그러면서 대중성을 얻는 공연, 언제 어떻게 그런 연극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 극장을 열어두면 많은 아이디어가 솟아날 것을 믿는다.

 

 

“공연이 계속 펼쳐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체 기획력이 중요해요. 왜냐면 극단이 6개월 이상 돌아가는 극단이 없는게 현실입니다. 그것은 자체 기획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봅니다 소극장이 연극을 위한 공간이지만 다양하게 열어둘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나무시어터의 전망을 물었다. 그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로 해석했다.

“ 뱃놀이가잔다를 석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극단이 허름하지만 백년간 극단이야. 이런 소릴 듣고 싶어요. 나무시어터가 살아갈 수 있는 자생력은 끈끈한 결합, 융통성. 창작열의인데 그 어느 것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또 나무시어터에 남아있는 사람이든  거쳐 간 사람들이든 극단이 영원한 집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무시어터가 연극협동조합으로, 마을기업으로 변신한 새로운 실험이 백년 역사로 이어질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은 세익스피어의 연극이 지금도 재해석되고 새롭게 무대에 올려지는 것처럼, 좋은 연극을 만드는 매순간이 모여 백년 역사를 만든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배우와 관객은 줄탁동기의 관계다. 안팎에서 알을 깨는 동안 대전연극은 더욱 풍성해질테고 연극인들은 무대에서 다양한 인생의 드라마를 보여줄 것이다. 연극을 인생에 비유하는 건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과 조연이 우리 스스로이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