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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오독

역사와 함께 숨 쉬는 인쇄거리


대전 인쇄의 시작
 인쇄는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오래된 매체이다. 구전에만 의지하던 정보의 전달은 인쇄가 출현함으로 오랜 시간을 건너 정확하게 그 내용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쇄가 가진 특징 중 하나인 대량 생산의 가능성 때문에 소수가 독점하였던 정보가 점차 많은 사람에게 풀리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해야하는 점이다. 이렇듯 인쇄는 바로 정보였기 때문에 왕조를 이끌어가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정보를 가짐으로 권력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인쇄가 가진 힘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 인쇄의 태동은 1883년 7월 고종에 의해 설치된 근대식 관영인쇄소인 박문국이다. 이렇게 서울에서 첫발을 딛고 발전하기 시작한 인쇄문화가 대전에 들어오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지리적, 행정적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전은 도시기반이 형성되지 않은 일반적인 농촌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1904년, 대전역사가 설립된 시기의 인구가 2,487명에 불과했고 1931년, 대전읍으로 개칭하던 때의 거주인구가 23,284명이었다. 다음해인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읍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고 충청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급부상한다.

 대전의 인쇄산업도 도시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대전이 도시로 성장하던 1930년대에 인쇄업체들이 처음 설립되기 시작해 1950년대에는 규모를 갖춘 인쇄업체 80여 개가 대전과 충남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대한인쇄협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1945년, 해방직후에는 31개의 인쇄업체가 있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 직후에는 37개 업체로 늘었다. 그 후 전쟁이 끝난 1953년에는 19개 업체로 줄었다가 1958년에는 62개로 늘어나면서 현재 인쇄업의 초석이 되었다.

인쇄의 이름들
 대전시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인쇄소의 기록이 있다. 유신당인쇄사는 1910년에 류석종 씨가 만든 인쇄소로 현재 은행동 목척교 부근에 사무실이 있었다. 현재는 법인화되어 경기도 일산과 신탄진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경남인쇄사는 1932년, 현 시민회관 건너편에서 이인구 씨가 창업하였다. 목판인쇄를 했던 마지막 업체로 기록되어 있으며 후에 이문사로 상호가 바뀌고 지금 대흥동에 그 후신이 있지만 인쇄업은 폐문하였다. 문창당은 1944년 이광신 씨에 의해 강경역 앞에서 도장포로 출발하였다. 1948년 옛 원동초등학교 앞으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대흥동으로 옮겼으며 1960년, 영창당인쇄사로 상호를 변경하여 현재도 삼성동에서 성업 중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에서 1954년 사이 대전에는 많은 인쇄소들이 만들어진다. 한국제책사, 삼우인쇄소, 창도사, 창원사, 신성인쇄사, 삼성인쇄사, 회상사, 정신인쇄사 등 많은 인쇄업체들이 이 시기에 출발하였다. 그 중 회상사는 주목할 만하다.
 1954년, 박홍구 씨는 중동에서 활판기 1대, 수동반절 재단기 1대, 종업원 5명과 함께 회상사의 문을 열면서 족보출판문화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 당시에 전쟁 때 소실된 수많은 족보들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전통을 중시하는 우리의 문화와 사회적 요구가 맞아떨어진 곳에서 족보를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회상사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때 종업원의 수가 150명에 이르렀으며 족보의 교정을 보러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식당과 여관을 따로 운영하기도 했다. 일설에 의하면 지금의 위치에 인쇄거리가 형성된 배경으로 회상사 주변에 사람이 워낙 많아 그 여세에 힘입어 차츰 주변에 인쇄소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회상사는 단순한 인쇄소가 아니었다. 기획과 편집, 인쇄, 제본까지 모두 한곳에서 이루어지는 종합 출판사였다. 이런 역량에 힘입어 족보 외에도 문집, 향교지, 고서 등 다방면으로 인쇄 출판의 결과물들을 만들었다. 또한 이 역사적인 결과물들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인쇄거리가 만들어지다
 1930년대 이후, 원도심의 모습도 역시 대전역에서 도청까지, 그러니까 현재의 중앙로가 번화가였다. 관공서가 있었고 그 주변에 상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되었던 천변길에도 사람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전역에서 나와 좌측으로 형성된 시장통 길이다. 지금의 중앙시장을 따라 천변으로, 옛 원동초등학교 주변 또한 큰 번화가였다. 원동에서 쌀가게가 많았던 인동으로 이어지는 신작로 주변으로 상인들도 많았지만 그곳에 인쇄소와 그 모태가 되는 도장포들이 들어섰다. 유신당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곳도 옛 동구청 맡은 편, 인동의 경찰서 앞이라고 한다. 원동에 옛 대전역 수화물센터가 있어서 역으로 도착한 종이를 손수레로 쉽게 나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 옛 도청과 시청, 법원 등 관공서 앞에는 대서방이라고 불리는 집들이 있었다. 관공서에서 쓰는 서류를 대신 작성해주고 서류에 쓰이는 도장을 파는 집들이다. 오래된 인쇄소의 이름에 ‘당’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은 주로 도장을 파는 집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장이 인쇄로 발전한 것이다.
 관공서에서 쓰는 서류양식을 납으로 만든 활판으로 조합해서 종이를 한 장씩 넣고 먹을 발라서 때려 찍어낸다. 이것이 활판인쇄로 인쇄소로 성장하는 중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신문도 그렇게 찍었다. 이 활판인쇄와 함께 기름종이에 글씨를 써서 한 장씩 밀어내는 등사기 인쇄도 주된 인쇄 방법이었다. 활판인쇄는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어 10여 년 전까지 만해도 인쇄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현재 대전시 중구 정동, 중동, 삼성동 일대에 형성되어 있는 인쇄거리는 서울, 대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인쇄거리로 꼽히고 있다.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는 서울, 그리고 공단이 발달한 경상북도의 대구에 비해 대전은 인쇄가 발달할만한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대전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인쇄거리가 형성되어 왔다.
 물론 인쇄 물량으로 따지자면 서울이나 상업인쇄가 발달된 대구에 비해 떨어지지만 관공서와 부설 연구기관에서 나오는 물량을 소화하며 나름의 성격을 가진 인쇄거리로 성장해 온 것이다.

대전의 인쇄거리만이 가진 색깔
 대전 인쇄업의 변천은 대전시가 발전해온 흐름과 같이하고 있다. 대전이 읍에서 시,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커져온 것과 같이, 이렇다 할 기반이 없었던 인쇄업으로 전국 3대 인쇄거리가 된 일은 주목할 만하다.
 대전은 내륙도시이고 행정의 중심, 교통의 중심이지만 과거부터 주변에 이렇다 할 기업이나 생산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행정 기관의 인쇄물을 위주로 하여 성장해온 것이다. 여기에 정부청사가 내려오고 연구단지가 형성되면서 인쇄물의 인프라가 갖춰졌다. 다른 인쇄거리에 비해 상업인쇄는 열악하지만 물론 지금은 관공서 수의계약이 없어졌지만 한때 관공서 수의계약으로만 따지면 서울 다음으로 컸다고 한다.
 그러나 행정기관의 인쇄물들은 여러모로 한정되어있고 큰 설비가 필요하지 않다는 특ㅂ징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형업체보다는 많은 작은 업체들이 비슷한 규모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작지만 분화되고 유기적인 형태로 대전 인쇄거리가 형성된 배경은 이렇다.

 현재의 인쇄거리로 업체들이 모이기 전에는 업체 수도 적었지만 집중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전시청이 선화동에 있을 무렵, 부근에 인쇄소들이 산발적으로 모여 있어 도청과 법원 등, 관공서에서 나오는 인쇄물들을 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시의 규모가 커지고 점점 사람들이 모여 그 부근이 번화가로 성장한다. 그러나 그에 따라 임대료가 상승하기 시작해 인쇄소들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그 대안으로 관공서와 멀지 않은 곳이면서 더 세가 싼 곳을 찾다가 모여들기 시작한 곳이 현재의 인쇄거리가 있는 중동, 정동, 삼성동 일대이다. 서울의 을지로와 충무로, 인현동, 필동이 인쇄거리로 형성된 배경도 이와 유사하다. 행정기관이 모여 있는 종로와 가까우면서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전의 인쇄거리 일대가 완전히 새롭게 형성된 것은 아니다. 이미 그 자리에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오래전부터 인쇄업을 하는 업체들이 있었다. 이들을 중심에 두고 본격적으로 인쇄와 관련된 업체들이 모여든 것은 1980년 전후로 보고 있다. 이때는 우리나라 경제가 급성장하는 시기였기도 했지만 이렇게 한곳으로 모인 원인에는 인쇄업이 가지는 특징이 작용한 바도 크다.

유기적인 협력 공동체
 인쇄업은 특성상 여러 단계로 분업화되어 있지만 이 과정들이 다시 유기적인 협동 체제를 이루어야 한다. 디자인과 편집, 인쇄, 제본 모두 책을 만드는 과정이지만 한 업체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각자의 전문 작업으로 긴밀하게 함께 움직여야 하는 과정이이다.
 여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인쇄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로 분화되고 있으며 이런 인쇄물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인쇄기술과 생산기계가 필요하다. 이런 다양한 설비를 한 업체가 모든 가지고 인쇄물을 생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업체별 전문분야가 있고 그 전문 영역들 간에 유기적인 협업체제를 이루어져야 한다.
 인쇄와 관련된 일도 더욱 전문화되고 공정은 복잡해졌다. 업체들이 인쇄거리로 모여든 것은 같은 곳에서 움직이면서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필요에 의해 선택한 길이지만 당시 시대의 흐름이기도 했다. 이렇게 집단화되면서 일이 집중되고 서로 시너지를 발생할 수 있었다.

 대전시 전체에 인쇄출판으로 등록된 업체의 수는 1500여 개 내외이다.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인쇄출판 대신 서비스업으로 등록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대전시에 존재하는 사업체가 대략 2000개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중 현재 인쇄거리에서 영업하고 있는 업체는 750개 정도이다. 대전이 가지고 있는 인쇄출판 인프라의 절반 가까이가 한 곳에 모여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인쇄라고 하면 종이 인쇄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대상이든 그 위에 뭔가 정보가 새겨지는 모든 일 모두가 인쇄이다. 인쇄거리에서는 이런 온갖 가지 인쇄가 이루어지고 있다. 상품용 라벨용지, 패키지 인쇄라 불리는 박스 포장인쇄, 컵이나 판축물 위에 새기는 인쇄, 실크스크린 같은 특수 인쇄 등 그 재질이나 모양에 따라 수많은 기술이 적용되고 있고 이에 따른 수많은 장비들이 제몫의 인쇄를 담당하고 있다. 

문화산업의 첨병
 이렇게 인쇄업체가 모여 집단화된 곳은 주로 생산자 위주의 구조라고 한다. 기획사에서 영업을 해 인쇄물을 주문하면 움직이는 원청과 하청의 구조라는 것이다. 즉 인쇄거리에 모여 있는 업체들은 주로 하청이자 생산 위주의 업체들이다.
 이런 구조적인 특징과 더불어 인쇄거리의 효과는 여러모로 드러난다. 분야별, 공정별로 유기적인 분업화가 이루어져 있어 수요에 따라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장점과 함께 고용효율도 높다. 인쇄업의 특성상 아무리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생산 공정이 복잡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현재 인쇄거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5000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런 고용효과는 주변의 상권과 지역 경제를 받치고 있는 든든한 기반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개별업체의 규모가 작아 산업의 측면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인쇄업은 특성상 경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상업인쇄와 홍보물 같은 경우가 그 예이다. 이런 인쇄물은 경기가 좋지 않을 경우 그 수요가 급감한다고 한다. 또 예전과 같은 선거특수가 사라졌다. 선거철마다 이루어졌던 대중연설과 선거용 홍보물이 사라지면서 시장이 많이 위축되었다고 한다. 관에서도 예산절감을 위해 가장 먼저 삭감하는 부분이 바로 인쇄물이라는 것이다.

 인쇄업은 문화산업이다. 지속적으로 지식정보를 다루고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반똑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지불식간에 많은 정보를 접하고 나누면서 문화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인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찾을 수 있으며 인쇄업이 제조업이지만 문화사업과에 속해있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인쇄거리의 현재
 그러나 지금 인쇄거리는 예전 같지 않다. 24시간 일하는 곳이 많아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골목이 많았지만 지금은 종사자들이 퇴근한 밤이면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처럼 깜깜한 어둠만 남는다. 일이 그만큼 줄어다는 얘기다.
 가장 큰 원인은 기술의 발전과 문화 환경의 변화이다. 급변하는 문화의 패턴과 통신사무자동화기기의 발달로 인쇄물은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많은 부분 인쇄물들이 전자문서로 대체되었으며 웬만한 인쇄물은 사무실 안에서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갖추어진 것이다.

 인쇄업 종사자들은 인쇄물의 양이 앞으로도 계속 줄 것이고 예측하고 있다. 이 추세는 선진국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반면 전체적인 인쇄물의 양은 줄지만 가짓수는 늘고 있다. 줄여 말하면 소물량 다품종화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쇄업에 큰 부담이다. 양이 줄어드는 대신 소량으로 종류는 늘어나면서 점점 고급 인쇄를 원하고 있는 상황은 먼저 인쇄업의 마진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고가의 고급 장비를 가질 수 없는 작은 업체들에게는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인쇄 장비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고가이다. 더욱이 현대화된 디지털 장비는 더욱 그렇다.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장비를 가지고 운영하는 상황에서 물량이 줄다보니 서로 덤핑이 심해지고 있다. 결국 마진이 줄면서 장비에 재투자 할 수 있는 여력이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물가 대비 인쇄비가 가장 싼 곳이 우리나라라는 사실은 이런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문제는 더 있다. 인쇄거리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로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인쇄거리의 전통을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산업의 인프라 측면에서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젊은 인력들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량 다품종의 트렌드와 치열해지는 경쟁의 와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으로 원스톱시스템을 제시하고 있다. 기획에서부터 완성품까지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이런 추세 때문에 인쇄업이 크게 기업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토털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쇄거리가 가진 특징은 오히려 이런 토털시스템을 더욱 빠르게 구현할 수 있는 배경이 될 수도 있다. 바로 작은 업체끼리 연대해 빠른 토털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
 인쇄골목도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대전 인쇄업의 생존을 위해서 전체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에 세종시라는 큰 변수가 움직이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세종시에 정부기관과 부처별 국책연구기관들이 들어와 생성되는 인쇄시장은 연간 7천억 원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이 상황에서 대덕에 있는 산업단지에 인쇄출판단지를 만들어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현재의 인쇄거리를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변화를 수용하자는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지금의 인쇄거리가 이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변해갈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전된 정부기관에서 나오는 물량을 지역화하는 일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정부청사가 대전으로 내려와 지역의 업체와 정상적으로 교류하기까지 걸렸던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쇄거리는 대전의 큰 문화적 자산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꾸리는 삶의 터전이다. 오랜 전통을 이어나감과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잘 준비해 도약해 나갈 것이다.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변화할지라도 인쇄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