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4.07.15 14:54

[숨쉬는 4.16]스무살 청년,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노래하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시리즈 <숨쉬는 4.16> 1회 / 스토리밥 책임작가 공동집필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눈물이지만 그들에게는 온몸이 찢어지는 피눈물이다. 우리의 눈시울은 말라도 그들의 눈은 항상 붉게 젖어 있다. 2014416일을 지나간 과거로 묻을 수 없는 것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분노가 현재 진행형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우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는 사실이 또렷해지고 있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세월호 대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기획시리즈 <숨쉬는 4.16>을 마련한다. 스토리밥이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기획 글을 준비한 배경으로 작가의 사회참여와 사명감을 운운하고 싶지 않다. 그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은 심정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밝힌다. 저마다 기억하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우리는 작가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의 성격에 걸맞게 글쓰기를 통해 잊지 않으려 한다. 이 기획시리즈는 2017416, 3년 상이 끝날 때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한 달에 한 번, 매달 16일마다 다양한 형태의 글과 여러 장르의 콘텐츠를 게재할 것이다. 물론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월호 대참사는 대한민국의 참혹한 문신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세월호는 지워지지 않는 삶의 일부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연재를 기획한 이유다.

 

스무살 청년,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노래하다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거리에서 노래 불러

 

 

 

 세상은 참 아픈데 노래하는 건 너무 쉬워
 세상은 또 이렇다 저렇다 하는데 말은 쉬워
 위로하는 내가 부끄러울 때 같이 가자 못하면서
 나 살길만 찾아가면서

 

 

그가 만든 <노래하는 건>의 가사처럼 노래를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를 평생 품고 살아가야 하는 유가족과 살아남은 학생들의 고통을 위로하기에 노래는 무척 쉽다. 세상의 아픔에 비하면 말이다.

스무 살 청년 송인효가 대전 대흥동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이유는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물었다. 그래서 지난 5월부터 기타를 메고 거리 공연에 참여했다. 그때 처음 부른 노래가 자작곡 <노래하는 건>이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협조적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끝난 거 아니냐고 묻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얘기 들으면 화나고 속상해요. 진상규명된 것도 없는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모든 사건과 사고를 기억의 서랍에 넣고 지낼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한국 전쟁이 남긴 상처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으며, 폭압의 유신시대가 가져온 피폐함의 흔적은 도처에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지 시대의 잔혹했던 위안부 문제는 지금도 살아있는 쟁점으로 논란 중이다. 하물며 사고 발생 100일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월호가 잊혀지는 사건으로 분류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여전히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는 바다에 남아있다. 세상을 떠난 열여뎗 푸른 청춘들의 온갖 사연은 적어도 칠십년 이상의 희로애락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고발생의 원인과 구조과정, 또한 대응책에서 나타난 문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시스템의 붕괴이자 정부기능의 실종을 여실히 보여준 대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사실이 더 밝혀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어떤 사실을 덮으려 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 않는 행동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송인효는 우리 사회에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저만 살겠다고 도망 나온 선장을 욕해요. 세상이라는 세월호에서 저 살기 바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이웃을 돌보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데 우리가 선장을 욕할 만큼 스스로에게 떳떳한지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 높은 사람들 몇 명이 바뀐다고 해도 사람들 하나하나가 변하지 않으면 똑같은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세상을 세월호에 비유했다. 사실 세월호는 도면과 다른 구조변경을 비롯해 증축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안전규정과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총체적 부실을 안고 있었다. 송인효는 왜곡된 세상의 단면이 세월호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도망 나온 선장을 욕하는 만큼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자문을 했다.

 

"세월호 대참사 소식을 크든 적든 간에 매일매일 접하는 순간에도 너무 쉽게 대하지 않나 싶어요. 우리사회에 참으로 많은 문제가 있는데 관심들이 없어요. 저 살길 찾아가는 게 문제이지 않나 싶어요

 

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새 백일이 가까워 온다. 아직까지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다.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반응과 태도는 지지부진하다. 국정조사는 사고의 면죄부를 주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유족들은 전국을 돌며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고 있고 일부 유가족은 도보순례를 하며 눈물을 뿌리고 있다.

 

 

<자작곡 - 노래하는 건>

 

 

중학교 때부터 노래 만들어

 

송인효가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 부터이다. 중학교 3학년, 열 여섯의 나이에 처음으로 만든 곡이 <부침개>이. 이 곡은 공주에서 전남 고흥으로 이사가 만든 노래다. 공주에 살 때, 비오는 날이면 가족이 마루에 앉아 부침개를 부쳐 먹곤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호남고속철도 건설로 인해 마루에 앉아 부침개를 부쳐먹던 충남 공주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가 오는 오늘 같은 날에는
  엄마의 부침개가 생각이 나요

  부침개
  부침개
  부침개가 먹고 싶어
  엄마
  부침개
  부침개가 먹고 싶어 부침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부침개가 구워 지는 소리 같아

 

음악과 관련해 특별히 사사를 받지 않았다. 기타 하나로 코드를 쳤고 흥얼거리며 노랫말을 만들었다. 고등학교는 홍성에 있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진학했다. 풀무학교는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기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학교생활은 폭넓은 세계를 접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10대의 피끓는 청춘이 단체로 지내는 공동체 생활을 견디기에는 다소 힘겨운 부분이 있었다. 스스로 답답함을 풀고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 만든 노래가 < 달빛>이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오 저 달
 오 날고파
 오 달빛에 실려

 어둠 속에 고요하게 은은하게
 차갑고도 숙연하게 빛을 내고
 회색 빛은 쪽빛으로 변해 가다가
 고요한 이 밤을 나와 같이 거닐었네

 어제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아주 작은 나에게로 찾아와서
 아프도록 내 심장을 주무르며
 날 둘러싼 이 세상을 부정하네

 

 

그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풀무학교 강당에서 처음으로 불렀다. 학교에는 <저녁모임>이라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전교생 앞에서 자기 얘기를 풀어놓는 자리였다. 그때 많은 친구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지난해 10월말, 송인효는 수학능력시험을 일주일 가량 남겨두고 당진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노래를 불렀다. 당시 집회는 국정원의 댓글 파문으로 정국이 어수선하던 시기였다. 또래의 친구들 대부분은 수능시험의 긴장감을 가지고 교실에 앉아 있을 시간에 송인효는 당진의 버스터미널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다. 노래를 부른 이유를 물었다.

 

저는 사실 노래를 잘하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문제죠. 사는 데에서 노래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대로라면 열심히 잘 살면 노래 또한 잘되고 좋은 곡을 만들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만든 곡이 지금까지 열 댓곡. 지난 봄에는 <사랑니>라는 타이틀로 첫음반을 발매했다. 음반을 세상에 선보이기 전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심정의 일부를 옮겨본다.

 

사랑니가 날 때를 기억해 보세요. 혓바닥이 닿기도 어려운 잇몸 구석에서 느껴지는 아릿함과 따끔함.

아린 그 곳을 혓바닥 끝으로 쓸어보면 덜렁거리는 살갗아래 숨은 단단하고 까끌까끌한. 중학교 2학년 때 기타를 잡았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곡들을 모아 여기 사랑니에 담았습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 앨범을 내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사랑니에 담긴 이야기는 솔직한 '나의 이야기' 입니다.

어리지만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것을 바라보는 저의 이야기가 꼭 저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또, 감히 위로가 된다면 큰 보람을 느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아픈 세상 앞에, 음악에. 여러모로 덜 부끄럽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이유, 세상에서 배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송인효가 대학에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지난해 봄, 고등학교 3학년 때 였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대학이 저한테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나중에 필요하면 갈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필요하지 않아요

 

그래도 아쉽지 않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지식한 중년의 아저씨같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물음을 닫고 말았다. 대학이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을 던지는 목소리가 많다. 대학도서관에 가면 1학년 학생이든 4학년 학생이든, 인문대에 다니든 공대에 다니든, 많은 학생들이 똑같은 수험서에 고개를 박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교수신문이 전국 4년제 대학 전임교수 6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지식인의 죽음, 대학은 죽었다고 비판하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 58%가 수긍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이 지적탐구의 장이자 지성인을 양성하는 곳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대기업에 취업을 자랑하기 위해 현수막을 걸고, 사법고시 합격을 학교의 위상으로 여기는 곳이 지금의 대학이다. 상당수의 교수들은 표절을 관행으로 알고, 외국의 학문을 아무런 비판없이 들여오는 지식 중개상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형편없는 대학에 기대지 않겠다는 것은 어찌보면 놀라울 일도 아니다. 그에게 배움은 대학이 아니라 현장에 있었다.

 

저는 음악적 기술은 배우지 않는 편이에요. 공연 다니면서 배우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은 어떤 축제에 가서 공연하는데 팔이 한쪽 없는 아저씨가 노래 부르는데 상당한 충격을 받았어요. 한쪽 팔이 없는 분이 함께 가자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 게 배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송인효의 친구들 대부분은 대학에 갔다. 몇몇 친구들은 그와 같이 대학을 포기하고 자기 일을 찾아나가고 있다. 대학에 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부는 필요한 법. 하지만 아직까지 공부와 관련해 정확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대학에 간 친구들을 만나 보면은요. 얘들은 대학에서 크게 배우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하구요. 저처럼 대학에 가지 않은 친구들은 제도권 밖에 있다 보니까 활동하는 공간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아요. 서로 어려운건 마찬가지 같아요

 

그는 세월호 사고 이후 지금까지 거리 공연에 네 번 참여해 노래를 불렀다. 물론 주말마다 열리는 집회에는 자주 참석해 현장의 분위기를 직접 느끼곤 했다. 그런 와중에 지난 6월에는 친구 셋과 함께 밀양에 2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밀양은 지난 겨울에도 한 차례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그가 밀양 용회마을에 가서 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일손을 거들어 준 일이었다. 일종의 농활인 셈이다.

 

직접 가본거와 가지 않은 것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우선 고민의 밀도가 달라지는 걸 느끼는데요 밀양 송전탑 문제를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마을 어르신들이 들려준 얘기 가운데 기억 나는 게 있는데요. 행정대집행 때 헬기가 날아다녀 소들이 유산을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마을 주민들끼리 서로 싸우는 일도 벌어지는 걸 보면서 국가라는 게 힘없는 사람들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세월호 문제도 그렇지 않나 싶어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픈 곳, 세상도 마찬가지죠

 

그에게 사회적 갈등과 문제가 나타나는 모든 곳이 배움의 교실이다. 그는 현장에서 익히고 어울리면서 배운다. 한 달에 열흘 남짓 머무르고 있는 곳이 금산에 있는 별에별꼴이다. 충남 금산의 시골마을 폐교에 입주한 청년자립공동체 '별에별꼴'은 협동조합이다. 이곳에는 이십대 청년들이 모여있다. 송인효는 여기에서 공동 노동을 하고 오후에는 함께 활동하는 밴드에서 기타를 맡고 있다. 밴드 이름은 듣기도 어렵고 받아쓰기도 어려운 시수까스게리야라이녠’. 핀란드 말로 깡쎈 서민이라는 뜻이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견디며 살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밴드 이름이다. 이 밴드 역시 세월호사고 거리공연에 수시로 참여를 하고 있다. 송인효는 시수까스게이야라이넨활동 이외에도 대전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룰루랄라 음악협동조합에서 가수 겸 연주자로 참여하고 있다.

 

룰루랄라 활동을 하면서 음악을 지도해주는 김유신 쌤이 그런 얘기를 해준 게 생각이 나요.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대해 고민하고 푸는 게 음악이다. 이런 말씀을 자주 하는데 결국 살아가는 고민을 해야 음악도 좋아지지 않나 싶어요

 

 

그는 어쩌면 전생에 유목민 이었는지 모른다. 뜬금없이 이사 간 고흥집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충남 금산에서 또 며칠을 살다가 대전의 룰루랄라 음악협동조합활동을 하다가 또 한 달에 두 번은 순천에 있는 대안학교인 ‘사랑어린학교에서 학생들의 음악선생을 맡고 있다.

그가 여기 저기를 떠도는 것은 제 자리를 찾는 길찾기일 수 있다. 이제 스무 살이다. 삶 자체가 푸른 나이다. 도전하고 모색하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다. 그 특권의 중심에 세상의 고민을 놓아 두겠다는 게 송인효의 마음이다.

그는 대학에 가지 않았지만 수능시험은 보았다. 도대체 친구들이 어떤 시험을 보고 대학에 가는지 궁금해서였다. 그 때 본 수능의 언어영역 문제에 이형기의 시 <낙화>가 지문으로 나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가 이 지문을 보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추슬렀을까 궁금해졌다. 그는 졸업할 때 풀무학교 선생님이 들려주었다는 말로 그 심정을 대신했다.

 

지금도 생활의 지표처럼 삼고 있는 말인데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픈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곳도 아픈 곳이다. 이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사람들이 무감한 게 무서워요.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는 일들이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는데도 무감하고, 세월호도 그렇게 무감해지는 게 아닌가. 그게 무서워요

 

그는 세월호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기회가 되는대로 버스킹에 계속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오랫동안 박수와 환호성을 받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의 노래는 잠들어 있던 무감함을 깨울 것이고 분노의 감정에 기름을 부을지 모른다.

 

그와 인터뷰를 마무리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폰 바탕화면에 떠있는 사진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밥 말리요

 

밥 말리는 음악을 외침으로 믿었다. 그의 음악에는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가 녹아있다. 송인효가 휴대폰 화면에 밥 말리 사진을 올려 놓은 것은 위대함에 대한 동경일 것이다. 그가 밥 말리의 노래를 들으며 음악의 힘을 어떻게 만들어갈 지 기대된다.

 

스무 살 아름다운 청년을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즐겁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은 세월호 참사가 짓누르는 엄청난 무게 때문이 아닐까.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청년 음악인 송인효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형기의 시 '낙화'를 떠올리면서.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20133월 협동조합기본법에 근거해 설립했으며 시인 방송작가 과학저술가 독서논술강사 출판기획자 대학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주로 기획 취재 연구 집필 등 텍스트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으며 인문학 강좌와 문화예술이벤트 등을 기획하고 있다.

대전 충남이 중심 활동지역이다.

 

# <숨쉬는 4.16> 2회는 2014년 8월 16일 올라간다.

 아래 사진은 대전시청 1층에 마련된  분향소 모습이다 (2014년 7월15일 오후 촬영)

망     각     은     죄     악     입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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