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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하늘로 보내는 편지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하늘로 보내는 편지 / 2014년 12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세월호 대참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기획 연재하고 있는 <숨쉬는 4.16>, 2014년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는 숨진 학생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하늘로 보내는 편지’로 구성했다. 2014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준 세월호 대참사는 분노와 슬픔과 절망과 탄식의 연속이었다. 많은 이들이 반성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바뀐 것은 많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재앙은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월호는 오랫동안 우리의 가슴에 각인해야 할 상처다. 시인이자 교사인 최은숙님, 아동문학하는 유하정님, 아이를 키우는 안계순님이 편지글을 보내왔다.

                                                

 

 

고통의 땅, 아름다운 영혼들의 슬픔을 잊지 마세요

 

최은숙 (시인,교사)

그들을 맞이해주신 천사들과 하느님, 감사합니다. 눈물에 젖은 그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안아주셨겠지요. 오느라 수고했다, 애썼다, 위로해주셨겠지요. 괜찮다, 이제 괜찮다, 쓰다듬어주셨겠지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겠습니다. 두고 떠나온 식구들 생각에 모두 경황이 없을 것입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새로운 삶을 계획하며 이사 가던, 동창들과 여행을 가던 자기들에게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아시겠지요. 그들에게 사실대로 설명해주십시오. 그들이 분노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고 땅의 근황을 전해주십시오. 이 일이 땅에서도 반드시 밝혀질 거라고 이야기해주십시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천만인 서명과 동조 단식이 이어지고 있다고, 촛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고, 여기 사는 사람들 모두가 그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표식인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다고, 그대들이 두고 온 가족은 모두의 가족이 되어 손을 꼭 잡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전하지 말아주십시오. 사실을 밝혀달라고 한겨울 광화문에서 떨고 있는 유가족들 앞에 대통령이 나와 보지도 않았다는 것, 국회의원들이 단식하는 유가족에게 '단식을 제대로 했으면 실려 갔어야 맞다'고 막말한 것, 단식 장소 옆에서 고기 구워 먹고 짜장면 먹던 일베, 세월호가 침몰하고 243일이 지난 지금까지 세월호 특별법에서 약속한 진상조사특위 구성에 정부 여당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 이런 따위의 이야기는 감춰주십시오. 사실이 밝혀지고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끝없는 위로 속에서 훗날, 먼 훗날 상처가 어루만져진 뒤에, 옛말하며 웃게 될 때, 그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새로운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십시오.

아름다운 천사들과 하느님, 그들은 포근한 옷으로 갈아입었겠지요? 놀란 가슴도 좀 진정이 되었겠지요? 거기서 아프지 않고 마음고생 하지 않고 잘 있기만 한다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살아있달 게 없는 가족들은 힘을 내어 싸울 수 있습니다. 어루만져주십시오. 잘 있다고 이야기해주십시오. 괜찮다고, 다시 만날 때까지 내가 부모 노릇 하겠다고 걱정하지 말고 밥 먹으라고, 편안히 자라고 말씀해주십시오.

거기 간 아이들에겐 꿈이 있었답니다. 말하던가요? 가수, 간호사, 건축가, 국어 선생님, 소설가, 요리사, 카메라 감독, 패션디자이너……. 녀석들은 스무 살도 되어 보지 못하고, 그 꿈 펼쳐보지도 못하고 갔습니다. 가난한 부모에게 부담을 줄까 봐 꿈을 밝히지 못한 아이도 있고 어려운 형편에 학원을 다니는 것이 미안하여 버스비 아끼려고 30분씩 걸어 다니던 아이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두가 똑같이 풍요롭다고 하셨지요. 들풀도 먹이고 입히신다 했지요. 가난하여 펼치지 못했던 꿈들을 이루어주십시오. 마음껏 노래하고 천사의 옷을 디자인하고 행복한 영화를 찍고 맛있는 천상의 음식을 요리하게 해주십시오.

보셨지요? 눈앞에서 내 식구가 탄 배가 가라앉는 것을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던 사람들을요. 아침마다 신문에 떠난 아이들에게 보내는 가족들의 편지가 실립니다. 밥에 갈비를 얹어 먹는 것을 좋아했던 딸이 떠난 뒤, 오랜만에 간 갈빗집에서 딸이, 여동생이 눈에 밟혀 아무도 공깃밥을 시키지 못했다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엄마 어쩌면 나 집에 못 갈지도 몰라. 근데 엄마, 내가 엄마 사랑하는 거 알지?”

세월호가 침몰하던 4월 16일 오전 9시 46분, 배에 타고 있던 딸이 보낸 문자를 마지막으로 받은 어머니의 편지도 있었습니다.

하느님, 이곳은 가장 용감한 영혼이 선택하여 태어난다는 고통의 땅입니다. 이 슬픔을 기록하여 주십시오.

 

                                                  

                                                                                                             

 

너희들이 있는 곳, 따뜻했으면 좋겠다

 

유하정 (아동문학가)

보이니?

눈이 내린다. 아직 햇것인 눈이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펄럭이듯 거세게도 날린다.

이제 막 눈구름을 벗어나 땅으로 떨어지는 저 눈들이 왜 난 너희들 같은 건지 모르겠다.

한 곳에 모여 있었지만 각각의 개성이 저 눈송이들처럼 달랐을 너희들,

내릴까 말까 두려워하다가 무서워 고함을 지르기도 했을 테지.

서로 괜찮다 다독이며 한숨 섞인 체념 들어주기도 했을 테지. 빨간 구명조끼마저 입지 못하고 웃고 떠들던 영상은 이미 꺼진지 오랜데 내 머릿속에서 자꾸 재생이 된다.

물에 잠기는 순간 제 이름이 적힌 명찰들을 목에 감아 걸면서도 괜찮을 거라고 엄마아빠를 안심시켰던 대견한 아이들이 뭍으로 떠오를 때마다 숨이 멎을 듯 꺼이꺼이 목놓아 울던 부모들,

그렇게라도 돌아와 다행이라며 위로해 주었던 사람들의 통곡이 전국을 누비며 다니고 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아픔의 크기를 감히 짐작이나 하겠냐마는 함께 있기에 또 힘이 난다는 그들의 말에 우리도 힘이 난다. 살아있는 것이 이리 죄스러울 때가 있었을까? 매일이 또렷하게 그날 같을 줄 알았는데 점점 잊혀져 가는 현실이 서글프다. 절대 잊지 않으마.

그러니 아이들아,

하늘에도 숲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라. 우거진 숲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어라. 답답하고 울렁였을 바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낙원으로 가거라. 너희들이 만든 낙원에서 맘껏 누려라. 꿈으로만 끝났던 수많은 꿈들을 숲길 가득 펼쳐 놓고 실컷 즐겨라. 그곳에선 살아 있어라. 부리 그러길 바란다.

아직 눈이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눈길을 치우는구나.

눈이 왔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모퉁이 박힌 눈까지 비로 쓸어 담는다. 마치 부조리와 온갖 비리가 구린 냄새 풍기며 딱딱한 플라스틱 빗자루가 된 것처럼 급히도 움직인다. 가수, 디자이너, 일러스트, 치기공사, 효자,미용사, 의사,훌륭한 가장이 되겠다던 그 아이들이 눈에서 아른거리는데 모질게 비질을 해댄다.

나는 내리는 눈들이 건너편 구름층에 쌓였던 다른 눈도 만나보고 소나기도 맞아보고 걷어 차여도 봤으면 좋겠다. 쌓인 눈을 토실한 아기들이 오밀조밀 만져서 눈사람으로도 굴려 볼 때까지 그냥 두련다. 햇볕에 자연스레 눈이 녹아갈 때쯤 쭈삣 나와서 같이 해를 쬐이고 싶다.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살아 보지 못했던 맘이 눈 녹듯 녹아주길 바라면서.

그때쯤이면 맘 편히 물어 보련다.

너희들 있는 그곳은 따스하냐고

춥다. 오늘 이 눈이 그치고 나면 진도 팽목항 파도는 더 거세지겠지.

 

 

 

 

                                                    미안하다, 잊지 않을게

                                                                                                            

 

안 계 순 (주부, 세종시 어진동)

너희들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의 마음은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 찼었어.

너희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을 때,

태연히 돈을 말리고 있던 선장이 미웠고

그 따위 선장 놈에게까지 빛을 나누어주고 있는 신이 죽도록 원망스러웠어.

하지만 곧 알게 되었어.

가슴에 품고 있는 미움과 원망의 크기 만큼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피해자는 너희들 뿐이야. 나머지는 모두 가해자야.

마음이 아팠다는 핑계로 마치 난 내가 피해자인양,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미안해. 아이들아!

이 사회를, 어른들을 원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피해자인 너희들 뿐 이야.

이 미친 사회를 만든 건 바로 정치인도, 재벌도, 그 누구도 아닌 나 였어.

이 사회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온통 나쁜 사람들로만 가득 차 있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거라면,

그건 그 나쁜 사람들이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둔

제정신을 가진 자들 우리 어른들의 잘못일 뿐이야.

미안해. 시간이 흘렀어도 너희들이 스쳐 지나간 이 세상이 그대로인 것 같아,

정말 미안하다.

잊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