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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세상의 모든 금요일을 붙잡다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세상의 모든 금요일을 붙잡다 / 2015년 3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세월호 대참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기획 연재하고 있는 <숨쉬는 4.16>. 이 기획은 2017년 4월까지 이어지며 매달 16일마다 연재한다. 2015년 3월에는 인권활동가 유해정씨를 만났다. 그녀가 풀어낸 고 신승희 양 유가족의 이야기는 <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에 담겨있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작가들이 3월에 만난 유해정 씨는 오랫동안 인권운동을 해온 활동가이다. 현재는 ‘인권연구소 창’과 지난해부터 새롭게 시작한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직업으로의 인권운동이 아니라 삶으로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옥천에 새로이 터를 잡은 유해정 씨는 요즘 인권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결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2014년 펴낸 『밀양에 살다』는 밀양 할머니들의 삶과 싸움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담아낸 살아있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바로 세월호라는 비극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고민하다가 유가족의 마음을 기록하는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에 참여해 유가족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을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2015)은 이렇게 나왔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했다.

 

기획을 하고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아이를 잃은 상실감과 그 이후의 행보를 기록하려는 생각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다 비슷한 마음이었어요.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11명이 모였어요. 그것이 세월호를 기록하는 작가기록단이에요. 지난 6월 첫모임을 가졌고 유가족과는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 8개월 여 동안 만난 기록을 출간한 것이죠. 다른 이유는 없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그만 애도하자, 이런 분위기가 있어요. 그래서 다듬어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전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고통과 슬픔, 분노를 넘어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은 우리 몫이잖아요? 희생자가 아니라 세월호 이후의 안전한 사회를 만들었던 훌륭한 아이로 기록되어야죠. 보이지 않는 진실들, 언론의 행태, 정부의 무능, 촘촘히 작동하는 은폐의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를 바꾸는 작은 일이라고 느꼈어요. 유가족들도 정부의 무능함을 깨닫고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죽음에서 시작했지만 진실을 대면한 시민의 자각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이제 책을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목소리를 나누고 자신의 경험 안에서 어떻게 세월호를 만났는지 고백하는 과정으로 북콘서트를 열면서 열심히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죠.

 

 

유가족들을 처음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6월에 모임을 만들고 7월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그때에는 유가족들에게 인터뷰나 기록이 중요한 일이 아니었죠. 특별법이나 조사기구 등을 만들기 위해 싸워야하는 시간이었잖아요. 곁에 있는 우리에게 호의적이지도, 또 중요한 일도 아니었죠. 유가족을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우리를 흔쾌히 받아들여주지 않았죠. 또 인터뷰를 하고나면 선정적이고 왜곡된 보도를 하는 언론에 대한 거부감도 심했어요. 처음에는 인터뷰를 한다기보다는 그냥 유가족이 있는 곳마다 따라다녔어요. 말 한마디 붙이면 성공한 날이었죠. 그저 법은 먹었냐고 서로 묻고 얼굴 맞추고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 어렵고 오래 걸렸어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하기 시작한 것은 9월~10월이에요. 천막농성장에서 철수하고 나서 절박함과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우리에게 원칙도 없었죠. 그저 한 반에서 1명씩은 꼭 인터뷰하자는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기획 자체가 없었고 원고를 모아 풀어헤치고 나서 최소한의 기획이 나온거죠. 책에 나온 13명을 선정한 것이 아니라 만나는 관계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분들이에요. 유가족 가운데에는 그 때에는 인터뷰해서 뭐하나, 이런 마음이었지만  책이 나오니까 내 아이의 목소리도 남겨놨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아쉬운 일도 많았을텐데....

 

또 하나의 큰 고민은 단원고가 아닌 희생자들의 이야기에요.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전부터 아는 사이었고 반을 기준으로 끈끈한 유대를 가지고 있어요. 평생 같이 가야할 존재라는 인식과 연대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단원고 희생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별입니다. 지역도, 연령도, 형편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만나거나 뭉칠 수 없는 상황이죠. 정부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막으려했고 협상의 주체가 모두 단원고 유가족을 중심으로 움직였죠. 일반 희생자들 중에는 가장이 죽은 경우도 많기 때문에는 당장 생계가 곤란해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많았죠. 그리고 뭉치지 못해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지만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했어요. 일부에서는 해봤자 뭐 하나, 이런 생각을 가졌던 분들도 많았구요.

또 하나는 이제 잊고 살고 싶다는 것이에요. 매일 얘기하고 싸웠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고 이제 세상이 나를 잊어줬으면 좋겠다고들 하시고 나도 잊었으면 좋겠다고 해요. 다시 상기하고 기억해 가라앉는 고통을 들추고 싶지 않으신 거죠.

마지막으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지만, 그러나 이 이야기는 어렵고 조심스러워서 말도 붙이지 못한 상태이죠. 내가 아이도 찾지 못했고 형제를 찾지 못했는데 무슨 자격으로 내가 인터뷰를 하느냐는 거죠. 죄책감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분들이죠.

 

 

유가족이 가장 많이 했던 얘기들은....

물론 자기 자식에 대한 이야기죠.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거기에서 보았다고 하시죠. 그렇기 때문에 진상규명이야말로 죽은 자식에게 부모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이라고들 해요. 그래서 내가 거리로 나온다고. 세 번째로는 세월호를 겪으면서 일어난 공통적인 변화에요. 모두들 자기 가족만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던 보통 사람이었죠. 그런데 이 일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야기이에요. 팽목항과 전국의 농성장을 지켜주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었는지, 진도에서 만난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이 어떤 위로와 희망을 주었는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길거리를 전전할 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밀양, 강정 해군기지, 대구 지하철 참사, 인하대 학생들의 참사 등을 겪고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뜨겁게 다가왔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힘들게 버텼던 사람들을 모르고 살았지만 이 사람들이 다 모여 아낌없이 도움과 위로를 주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우리에게 국가는 대한민국 정부와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세월호를 관통하면서 이제 국가는 나와 함께했던 시민이었구나, 라는 깨달음을 많은 얻었다는 것이죠.

 

 

희생자인 승희의 언니 승아는 ....

아주 조심스러운 부분이에요. 부모님들은 자신의 고통에 관해 많이 이야기한 편입니다. 많이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공감했으니까요. 그러나 희생자 형제자매, 그러니까 생존학생들은 자기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어요.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인데 가장 친했던 가족과 또래를 잃었죠. 이런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했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워요. 한국사회에서 청소년은 자기 말을 할 수 없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존재이죠. 부모가 문을 터줘야 접근할 수 있는 존재이자 마음으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죠. 승아 얘기를 들을 수 있냐고 부모님께 물었어요. 승아가 고3인데다 팽목항에서는 화환을 집어던지고 학교에서도 수업 중에 뛰쳐나가고, 학교에 나가지 않고, 죽고 싶다고만 말하는 등 심각한 상태였죠. 부모님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가져오는 치유를 기대했고, 저는 승아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책에 실을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죠. 어머니도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고 하시고 승아는 자기도 견딜 수 없는데 엄마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죠. 승희네 집에 가면 승희와 승아의 책상이 붙어있어요. 아무것도 치우지 않아 금방이라도 돌아와 앉을 것 같죠. 승아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공부해요. 다만 시선을 돌리지 않죠. 다행히 지금 승아는 대학에 갔어요.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개인적으로도 힘들었을텐데....

 

모두가 힘들지 않았나요? 그래도 작가기록단은 많이 위로받았어요. 모두가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무언가 해야 하는데, 내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실현해야하는데, 어쨌건 우리는 무언가 계속 하고 있다는 위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다른 분에 비해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은 있어요. 내 아이가 지금 6살인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집에 갔는데 내 아이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요. 유가족들 모두가 이런 불행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돌아올 시간이 되어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은 거죠. 건우 어머님의 딸이 일찍 결혼했는데, 건우 누나죠. 그분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가 유치원에서 놀러가는 것도 보내지 못하고 꼭 따라 다닌대요. 이런 불안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거에요.

인터뷰 갔다 온 날은 아무것도 못했어요. 보통 두 시간 분량의 녹취이면 하루에 다 풀고 정리도 하는데, 오 분 듣고 막 울고 이런 가정을 반복하다보니까 다른 작가들도 녹취 푸는데 한 달씩 걸리고 그랬어요. 감정적으로 많이 전이되죠.

 

 

4월이면 1년이다. 지금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제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촘촘히 얽혀있다는 사실은 알죠. 그들을 지탱하는 구조 말이에요. 이 책이 혼자 읽기에 너무 힘들어서 같이 읽어보자는 모임을 가졌어요. 그 중 중년의 여자 분이 있었는데 해운업계에서 사무를 보신다고 했어요. 모두가 세월호 참사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분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했죠. 업계의 관행으로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너무 잘 안다고 했죠. 죄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내가 바른 말을 했어야하지 않을까, 내가 문제를 제기해야하지 않을까, 후회된다고 그래서 본인이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어요. 그런데 새로운 사실은 이렇게 힘없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모두 고통의 당사자가 되어버렸죠. 그러나 죄 없는 사람들이 반성과 성찰을 하는데 반해 정말 부정의 큰 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의 사건으로만 보고 있어요. 굴욕적이에요. 정작 바뀌어야 할 사람들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제가 용산참사나 인혁당 유가족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큰일을 겪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에 피해자들은 다들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누구도 진실을 말하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설마 정부가, 설마 경찰이, 이런 말로 사람들의 진실을 받아주지 않는 다는 거죠. 그러면 고립됩니다. 또 하나는 슬픔을 이야기하면 대게 이제 그만 하자는 반응이 온답니다. 어떻게 맨날 그 얘기만 하느냐는 거죠. 큰일을 겪은 분들에게는 충분한 애도가 필요합니다. 사람에 관해 이해가 필요한 거죠.

진실을 말하고 감정을 호소할 사람이 없으니까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된 존재가 되는 거에요. 이런 느낌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물론 참사 이후 새로운 공동체나 관계가 생기지만 그것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상실감이 너무 커요. 우리 사회는 애도를 너무 빨리 끝냅니다. 충분히 사람들에 귀기울여주는 것, 그리고 잘 보이지 않는 진실의 조각들을 같이 찾으려고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것, 작게 마음을 나누는 정도만 하여도 충분합니다.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얼마 전에 옥천의 한 성당에서 북콘서트를 했어요. 다 끝나고 누가 봐도 많이 울었던 눈으로 21세의 청년이 승희 어머니에게 다가왔어요. 그리고는 “어머니, 제 이름이 승희에요.” 이렇게만 딱 한마디만 하고는 서있었죠. 그리고 울음을 꼭 참고 있던 승희 어머니와 끌어안고 한참 울었어요.

 

또 한분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어요. 이제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야할지 모르겠다고,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어떤 곳이고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할 수 없는 미안함을 눈물로 호소하고 발길을 돌렸죠.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고백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로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지만, 이렇게 나는 세월호를 어떻게 만났는지 고백하는 일로 누군가 공명하고 있다고, 말로 다하지 못하지만 그냥 옆에 있는 사람, 그래서 우리가 끈끈한 공동의 운명체라는 사실을 전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진실의 규명은 몇 십 년이 지나도 안 될 수 있지만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것이 내안에 어떻게 있는지 공감한다면 더 나은 사회로 가는 징검다리 하나를 놓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형식적으로 인간성 파괴나 신자유주의 등에서 찾을 일이 아니라 애도, 슬픔, 고백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하는 일이 우리 시대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아직도 알려야 할 일이 많은데....

진실을 규명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어떤 진실을 규명해야할지 촘촘히 따져야 한다고 봐요. 이 일은 유가족이 할 일이 아니죠. 그냥 간단하게 책 한권을 추천할게요. 우리 작가기록단 중에 한분이 쓴 책인데 제목이 『세월호를 기록하다』입니다. 이분은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재판 과정을 모니터하고, 4월 16일, 그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간 순서로, 학생의 관점에서, 현장의 관점에서, 해경의 관점에서 이렇게 입체적으로 조명했습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유가족의 마음 상태에 관한 이야기라면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진실에 관한 객관적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안전인권선언」을 준비하고 있어요. 노동자에게 노동하고 파업할 권리가 있듯이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모두는 안전해야하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위험은 권리의 침해이고 위해라는 거죠. 세월호 유가족과 여러 재난, 참사에 희생된 가족협의회, 그리고 인권단체, 시민단체가 모여 안전으로 보장되어야 될 사안과 상황들을 정리하고 규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유해정 씨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일들은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라는 말을 다 맺지 못하고 또 다른 북콘서트장으로 서둘러 떠났다. 여행을 떠났지만 금요일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듯한 발걸음이었다.

 

* 금요일엔 돌아오렴』북콘서트가 4월 3일 저녁 7시 대전에 있는 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서 열린다.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