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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세월호 참사 1주년, 적어도 100년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년, 적어도 100년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14416,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무능과 부재 그리고 비리와 부패였다. 사고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그것은 사고가 아니라 사건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1, 세월호는 아직도 어둠의 바다에 갇혀있고 진실은 암흑으로 남아있다. 세월호 대참사가 가져온 슬픔과 고통은 개인의 몫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공유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참사의 가능성이 도처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마련하고 있는 기획시리즈 숨쉬는 4.16’. 대참사 1주기에는 그동안의 연재과정, 기억, 인양, 미래라는 내용으로 엮는다.

 

 

상처가 문신이 되어 글을 쓰기 시작하다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눈물이지만 그들에게는 온몸이 찢어지는 피눈물이다. 우리의 눈시울은 말라도 그들의 눈은 항상 붉게 젖어 있다. 2014416일을 지나간 과거로 묻을 수 없는 것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분노가 현재 진행형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우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는 사실이 또렷해지고 있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월호 대참사는 대한민국의 참혹한 문신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세월호는 지워지지 않는 삶의 일부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숨쉬는 4.16"이라는 연재를 기획하며 밝힌 서문이다. 이 기획시리즈는 2017416, 3년 상이 끝날 때까지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매달 16일마다 글을 올렸다.

20147월 첫 번째 원고는 노래 부르는 송인효씨와의 인터뷰 기사였다. 스무 살 청년가수 송인효씨가 대전 대흥동 거리에서 세월호를 기억하자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이유는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물었다. 그는 졸업할 때 풀무학교 선생님이 들려주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생활의 지표처럼 삼고 있는 말인데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픈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곳도 아픈 곳이다. 이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8월에는 조합 작가인 함순례 시인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를 실었다.

"갓난아기가 고개를 가누고 /소리를 구분하고 / 낮과 밤을 구별할 줄 알게 되는 / 백일/ 100일의 기적을 노래해요 / 014416일 이후/ 우리는 향기로운 봄을 잃었으나/ 묵묵부답의 폭염과 마른장마에 시달리며/ 무참히 서러웠으나 /이제는 백일의 기적을 노래하고 싶어요 /

그리고 안산 단원고에서 진도 팽목항으로, 다시 대전 월드컵 경기장까지 2천리 길을 걸어온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를 만난 인터뷰 기사를 함께 실었다.

9월에는 재난 전문가 김겸훈 교수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세월호 참사에서 사고에 대응하는 국가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로 사고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고, 어떤 문제로 정보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어떻게 시스템이 멈췄는지 알아야 실효적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10월에는 세월호와 함께 언론이 침몰했다기 보다는 언론은 이미 침몰해 있었다고 비판한 언론학자 이승선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우리가 언론에 대해 기본적으로 걸고 있는 기대, 즉 정책을 감시하거나 비판하는 기능을 비롯해 재난을 막으려는 예방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세월호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며 통탄했다. 더불어 언론 침몰의 중요한 원인은 베껴쓰기 언론과 받아쓰기 언론의 행태에서 왔다고 지적했다. 비판과 감시의 저널리즘의 기본이 사장되면서 한국 언론은 이미 세월호 침몰 이전에 저널리즘 기능을 크게 잃었다고 진단했다.

11월에는 물고기를 좋아하던 화가 빈하용군 전시회 탐방기를 실었다. 단원고 2학년 418번 빈하용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는 서촌 갤러리를 찾았다. 전시회장을 꿋꿋히 지키는 작가의 자화상들. 굳게 다문 입술과 유독 강한 눈빛을 보면서 꽃을 피우지 못한 고등학생 작가의 작품을 눈물로 보아야 했다.

한 해를 보내는 12월에는 하늘에 있는 단원고 학생들에게 편지를 썼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최은숙 선생은 이렇게 아이들의 안부를 물었다 "아름다운 천사들과 하느님, 그들은 포근한 옷으로 갈아입었겠지요? 놀란 가슴도 좀 진정이 되었겠지요? 거기서 아프지 않고 마음고생 하지 않고 잘 있기만 한다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살아있달 게 없는 가족들은 힘을 내어 싸울 수 있습니다. 어루만져주십시오"

20151, 새로운 해를 맞았지만 여전히 세월호는 진행중이었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기억이라는 무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생명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우주 안에서 생명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 다른 생명과의 연결이다. 그 연결이 그렇게 처참한 방법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일은 숨 쉬는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붕괴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2월에는 팽목항으로 행진하던 김웅기군의 형 인기씨의 인터뷰 글을 실었다.

" 마지막으로 한 번 만져보고 미안하다는 소리를 처음 했어요. 제일 미안한 건 물 속에서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형이 끝까지 잘 보내줄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했죠. 그 다음부터는 임시 염할 때부터 함께 했죠. 고대병원에 도착해 영안실 들어가지 전까지 입관식 준비 할 때까지 다 들어갔어요. 관계자들이 못 들어오게 해도 억지로 들어갔어요. 왜냐하면 이 모습이나 저 모습이나 제 동생이고 마지막 기억은 제가 안고 가는 거니까요. 혼자가면 얼마나 불쌍하고 쓸쓸해요.”

3월에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란 책을 펴내는 데 참여했던 유해정씨와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고통과 슬픔, 분노를 넘어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은 우리 몫이잖아요? 희생자가 아니라 세월호 이후의 안전한 사회를 만들었던 훌륭한 아이로 기록되어야죠. 보이지 않는 진실들, 언론의 행태, 정부의 무능, 촘촘히 작동하는 은폐의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를 바꾸는 작은 일이라고 느꼈어요. 이제 책을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목소리를 나누고 자신의 경험 안에서 어떻게 세월호를 만났는지 고백하는 과정으로 북콘서트를 열면서 열심히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죠".

이렇게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지난해 7월부터 20153월 까지 모두 아홉 번에 걸쳐 세월호를 생각했다. 앞으로 이 기획은 2년간 더 이어진다. 기억과 저항, 과거의 미래를 붙잡고 한 줄 한 줄 써 내려갈 것이다. 우리는 3년상을 그렇게 치를 것이다.

 

 

 

기억하는 것은 인간존엄의 예의다

 

며칠 전 사진 한 장을 전송받았다. 초록색 풀숲에 하얗고 노랗게 핀 꽃. 함초롬 수선화다. 두툼한 초록 줄기 끝, 대여섯 개의 흰 꽃잎 가운데 노란 꽃관이 길게 나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말하고 싶은 듯한 모습, 누군가의 귀에 대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쭉 내민 입 같다. 사진을 물끄러미 보면서 꽃잎이 지고 난 수선화를 생각한다. 다시 들풀에 섞일 그 꽃을 수선화라고 부르는 일은 많지 않겠다 싶다. 그때 수선화의 꽃말이 왜 나를 잊지 말아요인가 그 애절한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잊혀지는 게 꽃도 두려운 거다.

수선화의 선명한 노란색 꽃관은 노란 리본으로 겹쳐온다. 일 년 전 그때도 지금처럼 벚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4월 그날 벚꽃은 무심하게 피었을지도 모른다. 자연은 때를 알아 다시 돌아왔지만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생명들이 있다. 쓰다듬고 싶은 그리운 얼굴들. 전에 더 잘해줄 걸, 여행도 갔어야 하는데, 아침에 안아주지 못해서 안타까운 후회와 미련의 감정이 마르지 않는다. 목 놓아 간절하게 이름만을 부를 뿐 따듯한 체온을 나누며 안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야 할 때만큼 간절할 때가 있을까. 멈춰버린 시간을 한순간도 잊을 수 있을까. 그 잊을 수 없는 막막함이 명치를 찌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 특히 슬픔이나 비통한 일을 망각 없이 지니고 간다면 온전하게 살아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 망각은 우리 삶을 지속시키는 치유제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 속 망각의 신 레테는 인간에게 망각의 선물을 주었다.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으로 갈 때 레테의 강물을 마신 망자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깨끗이 지우고 전생의 번뇌를 잊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때로는 망각할 수도, 망각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 있다. 2014416일에 멈춰버린 사람들은 잊히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한다. 레테의 강물을 마신다 해도 지울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죽는 것, 그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남은 사람들, 그리고 어느 것도 해명되지 않는 진실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트라우마로 드리워졌다. 이것은 우리가 슬픔과 고통에 대해 진심어린 애도가 부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사건의 진실을 대면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치유는 불가능하다.

잊지 않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어떤 대상을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같다. 기억하는 것이 초시간적인 힘을 갖는다면, 잊지 않는 것은 지금 이곳에 대한 간절함이라는 점에서 더욱 현재성을 지닌다. 지금은 잊지 않는 것, 더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기억하는 것, 이것이 4월의 봄이 우리에게 준 가슴 아픈 선물이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이며 시대의 화두다. 미래의 안전을 생명과 맞바꾼 영혼들과 그 가족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신의 고통을 가슴 깊이 이해하며 진실을 대면하는 것, 그래서 고통 받는 사람을 외롭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기억의 윤리이며 인간 존엄에 대한 예의다.

 

 

 

인양은 후대를 위한 안전한 나라의 약속이다

 

진실을 위해 20일 동안 광야를 걷고, 40일간 단식을 하고, 머리를 깎고, 차가운 길바닥에서 숙식을 했던 사람이 있다. 언뜻 보면 예수님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석가모니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바로, 자식을 바다에 묻은 세월호 유가족의 1년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고행은 세월호 인양과 진실규명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1년째 인양을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일각에선 세월호 인양에 천문학적인 돈이 드니 그만 두고 공원을 만들자고도 했다. 세월호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써야 하냐는 것이다

지난 8,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인양에 1200억 원의 비용이 들것으로 발표했다.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1200억이라는 돈이 바다에 그대로 버리는 돈이라며 세월호 인양을 반대하고 나섰다. 돈이 문제라면 따져보자. 이 환산은 모든 변수를 제외한 아주 단편적인 값이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 국민계정 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은 약 2968만원 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는 총 304, 그 중 17세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은 246명이다. 단원고 학생들이 201441610시의 뉴스 보도처럼, “전원 구조된 것으로 가정해보자. 단편적으로 경제 활동이 가능한 나이를 30~60세로 가정 했을때, 이들이 평균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년 수는 30년으로 제한한다.

 

전원구조30년 간 순수 국민총소득액 (2014년 기준)

246() × 2968(만원) × 30() = 21903840 (만원)

 

결국 이 아이들이 모두 살았다면, 우리나라는 30년간 총 2190여 억원 국민소득을 벌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물가상승률, 출산으로 인한 인구 증가, 한류스타의 탄생이나 유명인이 되어 벌어들일 수 있는 부가가치, 여타의 경제 유발효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최소한의 단편적인 금액이다. 아이들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인양의 비용을 훌쩍 뛰어 넘는다. 물가상승률과 30년 후의 가치를 따져본다면, 이들이 살면서 벌어들일 돈은 인양을 수 십 번 하고도 남을 만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천억이 아니라 20, 200조 이상의 경제창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들이다. 진도 앞바다에 묻힌 것이 수명 20년이 넘는 것을 수입해, 쉬쉬하며 수리해 가며 썼던 일본산 늙은 배가 아니라 이었더라도 인양을 하지 말자는 말이 나왔을까. 아마 바다에 2천 억 원이 넘는 돈이 묻혀 있다고 한다면, 모두가 달려들어 인디아나 존스를 자처했을 지도 모른다, 인양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향한 사람됨의 태도이다. 무한대의 가능성을 가진 청춘의 죽음에 인양비용이란 말을 섞는 것은 인간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인양은 고인의 삶을 복원시키고, 앞으로 후대들이 살아가야 할 안전한 나라에 대한 약속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의 고통 위로 미래가 온다

 

물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사회의 공기를 같이 나누고 사는 한 사람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있다. 우리 앞에 당연하게 다가올 일들이다. 이 정도가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슬픔이며 운명이다.

먼저 세월호 희생자들의 시간이다. 그들에게 이미 다가올 시간은 없다. 누구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신 옆에 서있는 희생자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은 사실 스스로를 위로하는 선에서 조금도 넘어서지 못한다. 언론이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할 때 다른 이의 행복과 슬픔을 과대 포장하는 일과 같다.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은 너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희생자들을 덮친 죽음의 순간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땅의 영역 안에서 서로 죗값을 나누는 일이다.

두 번째는 희생자들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의 시간이다. 사실 유가족은 단원고 희생자의 가족들과 친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여행객 희생자들도 간과하지 말아야한다.

유가족에게 다가올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행진에 나선 유가족들이 대전 충남을 지났다. 몇몇 아이들이 함께 걷기를 청했기에 그 아침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을 찾았다. 숙소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킨 부모님들은 아침식사를 하고 또 하루를 걷기 위해 출발지에 모였다. 줄을 맞춰선 이들에게 가볍게 몸 풀기를 지휘하던 자원봉사자가 인원을 확인하는 절차는 희생자 학생이 속했던 반을 부르는 것이었다. “10반 다 모였죠?” 하면 대부분 4~50줄의 부모들은 거리낌 없이 !”하고 대답했다.

해가 바뀌면 아이들은 학년이 바뀌면서 반이 바뀌고 친구도 바뀌고 담임선생님도 바뀐다. 그러나 이 지우지 못할 상처를 가슴에 새긴 부모님들은 앞으로 평생을 아이가 속했던 고등학교 2학년의 반으로 살아갈 것이다. 아마도 형준이 부모님은 TV에서 4반이라는 말만 나오면 놀라 고개를 돌릴 것이고 창현이의 부모님은 평생 5반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아물지 않으면 이미 상처도 아니다. 이들에게는 상처라고도 부를 수 없는 무엇이 평생을 관통할 것이다. 이 정도는 우리도 예측할 수 있는 사실들이다.

이제 우리들에게 닥칠 시간이다. 누구는 천연덕스레, 아니 애써 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는 오로지 할 수 있는 일이 잊지 않는 것뿐이라고 몸부림칠 것이다.

우리에게 닥쳐올 시간을 가늠해보는 일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과 같다. 오래전 부의 상징이었던 번듯한 아파트가 무너졌다. 그리고 또 얼마 전 백화점이 무너졌고 다리가 두부 썰듯 떨어져 내렸다. 따지자니 입이 아프다. 혹시 우리는 그 시절의 무지와 탐욕을 탓할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의 시간이 지난 어느 때에 분명 지금 이 시대의 욕망과 어리석음을 돌아보며 탄식할 것이다. 그래야 한다. 과거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 다가올 시간을 누릴 후손들이 마음 놓고 탄식할 수 있다. 그래야 한다.

현대과학은 미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관찰이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가능성으로 떠돌고 있다. 그중 누군가에게 관찰 당한 것만이 현실로 굳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다가간 가능성만이 현실이 된다는 사실은 과학이 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위하며 보듬는, 그래서 서로에게 안전한 사회로 다가올 시간들은,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이런 미래를 부정하는 이는 우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