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5.09.16 14:46

4월 16일을 기억하는 사람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 숨쉬는 4.16> / 2015.9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매달 16일마다 연재하는 <숨쉬는 4.16> 9월에는 대전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을 조연미 작가가 만나 인터뷰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는 세월호 사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월호의 슬픔과 고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이 기획은 2017년 4월까지 3년동안 이어진다.

 

< 416일을 기억하는 사람들 >

  - 노란 리본 아저씨 유랑자 씨와 피켓 언니 안선영씨를 만나다.

 

 

시리아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이 지구촌을 울렸다. 가족과 함께 떠나다 배가 뒤집혀 죽은 아이는 터키의 보드룸 해변에서 잠을 자듯 엎드려 있었다. 충격과 슬픔 그 자체였다. 마지막까지 아빠, 죽지 말아요!’라고 이야기했다는 3 살배기 아이의 모습에서 작년 416일의 진도가 떠오른다. ‘살고 싶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했던 304명의 세월호 아이들. 이 묘한 기시감은 단지 바다라는 공통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 참사를 겪고 500, 어느새 무뎌진 우리의 가슴에 울린 경종이지 않을까. 그래서 만났다. 만나야 했다. 416을 잊지 않겠다고 맹세 했던 두 시민. 매일 오후 4시에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서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중년의 남성 유랑자(자신을 유랑자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와 대전 새누리 당사 앞에서 91일이 넘게 1인 시위를 하는 피켓 언니 안선영 씨.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약속을 지금도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을 말이다.

 

 

멈출 수 없는 약속

유랑자씨와 안선영씨는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다. 대전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며, 세월호 기억 행동을 하며 가까워졌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안선영 씨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안선영 : 그때가 언제였는지 확실히 기억해요. 5월 세간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단원고 희생자 아이 중의 한 명의 아버지가 안타깝게 돌아가신 일이 있었어요. 가슴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떠나간 애들한테 약속 한 게 있었잖아요. ‘안 잊겠다. 너희 부모님 외롭지 않게 해줄게. 꼭 진실을 밝혀줄게.’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한테 한 약속들을 못 지키고 있던 거 에요. 우리 마음도 굳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피켓을 만들고, 대전 새누리 당사로 나왔죠.

 

유랑자 : 그때 저는 주말 마다 으능정이에서 실종자 수습과 인양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었어요. 주중에 으능정이를 지나가는 데 모르는 사람이 세월호 관련 서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물었더니 제주도에 사는 청년이래요. 미안하고 창피했죠. 마침 안선영 씨가 새누리 당사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고 해서, 저도 같은 으능정이 거리로 나와 피켓 시위와 리본 나눔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안선영 씨와 100일까지 해보자얘기했어요. 그땐 100일도 채우지 못하면 어쩌지?’ 내심 걱정이 됐던 거 에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하겠다고 말도 하지 못했죠. 그런데 벌써 거리에 나온 지 100일이 다가와요. 이달 30일에 100일이거든요. 추석연휴기도 하니까,집회신고를 내고 세월호 기억 행동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선영 씨는 100일 되면 그만 할 거 에요?

 

안선영 : 아니요. 쭉 가야죠. 이젠 멈출 수가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거든요. 이 땅에 세월호가 너무 많잖아요. 오늘도 피켓을 새로 하나 만들었어요. 노동법 개악 내용을 포함해서요. 정말 하면서 느낀 거는 피켓에 써야할 내용이 하나 씩 더 늘어난다는 거 에요.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 이후로 정말 변한건가? 싶죠.

 

 

 

 

리에서 만난 사람들

유랑자 씨는 매일 오후 2~4시까지 으능정이 거리에서 리본 나눔과 세월호 인양 촉구 1인시위를 진행한다. 안선영 씨는 같은 시간 새누리 당사에서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그저 잊지 않기 위해거리로 나온 두 사람. 처음에는 대전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에 힘이 들었다고 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50일이 지나고, 100일에 가까워오자 사람들의 반응이 점점 달라졌다고. 커피를 주며 응원하는 사람들, 타 지역에서도 응원 오는 사람들, 잊지 않고 있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거리에서 함께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덕분에 두 사람은 더욱 힘을 내고 있다.

 

유랑자 : 저는 처음에 15만개 리본을 나눠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두 서너 명 만 같이 있어도 좀 나을 것 같은데 사실 혼자서 피켓 들랴, 리본을 나눠주랴. 영 속도가 더디더라고요. 처음에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힘들죠. 엊그제는 한 엄마와 아이가 제 앞을 지나가는데, 아이가 제 피켓을 읽어보고는 리본을 가져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 엄마가 가져가지 마!’하고 화를 내며 아이를 혼내고 돌아서는 거 에요. 저는 그때 그 엄마의 심정이 무엇일까 한참 고민했어요. 무슨 마음인지 지금도 알 수 가 없어요. 세월호인 걸 알면서도 화를 내는 이유를 말이죠.

 

안선영 : 저도 1인 시위를 시작할 땐 하루에 두세 번이 넘게 시비 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정말 힘들었죠. 그래도 버텼어요. 제가 세월호 진실을 밝혀달라는 1인 시위를 시작했을 때는 이게 사람들에게 별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나왔던 거니까요. 나 스스로에게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100일이 지나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많은 분이 응원하고 함께 지켜보고 있던 거 에요. 지난번에는 어떤 중년 남성분께서 저를 보며 금방 그만 둘 줄 알았는데 몇 달동안 하는 것 보고 놀랐다.’고 하시며 지나가더라고요. 무심결에 매일 지나치며 관심을 가져 주신 거 에요.

 

유랑자 : 초창기에 리본을 나눠줄 땐 여학생들이 많이 받아갔는데, 요즘엔 남학생들도 많이 받아가는 걸 보면서 기분이 좋아져요. 그중에서도 강경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아직도 기억나는데요. 집이 대전이라 방학 때 집에 왔나봐요. 으능정이 거리에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저를 보고는 다음 날 또 시간대를 맞춰서 와서 함께 피켓을 들고 도와주더라고요. 생판 모르는 친구였거든요. 또 어떤 여자 분은 저한테 편지를 주고 갔어요. 제가 유가족인 줄 알았나 봐요. 힘내라는 얘기였어요.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해요.

 

 

 

망각의 참사 속에 9명의 실종자가 갇혀있다.

두 사람은 100일 가까이 1인 시위를 하며, 때론 사람들의 응원에 고무되고 때론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알리며 보람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여전히 세월호는 아픔이었다. 1년 전 우린 304 명의 별을 잃었지만, 우린 다시 세월호 참사를 무서울 속도로 잊어 간다. 망각의 참사가 진행 중이었다.

 

안선영 :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씨 랜드에서 세월호까지... 참사가 계속 된 이유는 사람들이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참사를 잊고 포기를 하면, 다음엔 또 참사가 날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 변화가 없는 거잖아요. 누구든 경험에서 배움을 얻지 못하면 딱 그만큼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거 에요.

 

유랑자 : 세월호 유가족들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신들도 참사를 겪고 나서야 사회를 알게 됐다고. 분식집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이 있는데요. 아이가 살아있었을 때 가게로 시민들 몇 명이 무슨 서명을 받으러 왔었데요. 그런데 바쁘다고 돌려보냈데요. 무관심 했었데요. 그런데 본인들이 겪고 나서 잊으면 안 되는구나, 무관심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알았다는 거죠. 저희가 거리에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요. 무관심 하지 말자고요, 자신이 당하고 나서 알지 말자는 거 에요.

 

안선영 : 게다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구조 실패로 아이들이 죽었는데, 정부는 잘못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죠. 저는 정부의 잘못을 왜 국민이 나서서 덮으려는지 이해 할 수 없어요. 1인 시위를 하면서 들었던 말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자 가장 화나는 말이 있어요. ‘세월호 유가족들 보상 받았잖아.’ 하는 말이에요. 정부가 잘 못했으면 보상 받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 당연한 것에서 왜 사람들은 위안을 찾고 강요하는지, 그만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유랑자 : 그래도 우리들의 1인 시위 소문나면서 광주에서 연락이 왔어요. SNS 친구이신데 우리처럼 세월호 기억 행동을 시작하겠다고요. 또 대전에서는 몇몇 분들을 중심으로 지역에 리본 만들기도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죠. 우리 일이 훌륭한 일도 아니고 누군가의 박수를 받으려는 것도 아니에요. 잊지 않겠다고, 행동하겠다고 했던 약속들을 지키는 것뿐이죠. 세월호가 사람들에게 잊혀 지지 않기 위해 작은 희망의 불씨를 잡고 있는 거 에요.

 

안선영 :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우리가 되돌아 봐야 할 것은 다른 게 아니에요. 내 가슴이 얼마나 차가워졌는지 돌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짜 잘못한 건, 남이 아니라 나라고요. 내 자식만 안 죽으면 되고, 보상 받았으니 됐고, 내 가족은 살아있으니 다행인 세상이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차가운 사람인지, 냉담하고 심장이 얼어붙은 사람인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필자에게 아일란 크루디에게서 세월호 아이들이 오버랩 된 이유를 알게 됐다. 아홉 명의 실종자가 여전히 차가운 바다에 있고, 세월호 사태의 진실은 더 깊은 심연 속에 가라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세월호는 우리에게 물음표이고 아픔이었다. 잊지 말아야할 우리 시대의 참극이기 때문이다. 진짜 잘못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차가운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안선영씨의 말이 필자의 폐부를 찌른다. ‘잊지 말자’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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