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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읽었으면 좋으련만, 하늘로 보내는 편지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 2015. 12

 

읽었으면 좋으련만, 하늘로 편지를 보내다

 

2015년 한해가 저문다. 세월호 청문회를 보면서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분노가 더욱 쌓인다고말하는 이들이 많다. 매달 16일마다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는 글을 올리면서 이 나라가 가는 방향이 어디인지 자주 돌아보게 된다. 소중한 생명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한해를 보내는 12월에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하늘로 편지를 보낸다. 슬픔을 얼마나 달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 노란 리본을 단다

우리 조합이 세월호를 기억하며 글로 약속한 삼년상 중 18개월이 지났다. 절반이 지난 셈이다. 잊지 말자고 했다. 그건 그들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아직 살아있는 우리 자신을 위한 묵념이었다. 기막힌 일이지만,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고 살아올 수 없다면 그건 잊어야 하는 일이다. 그들과 유가족들을 위해서도 잊혀지는 게 맞고 잊어야 하는 게 맞다. 그것을 우리는 순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순리대로 애도의 과정을 거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유가족들의 아픔에 온전히 공감하고 위로했을까? 잊으려면, 잊으라 하려면 이 과정을 온전히 거쳐야 하지 않은가?

 

기억한다. 참사 앞에서 우린 모두 한마음이었다. 함께 공감하며 아파했다. 분명 그 순간엔 모두 자신의 일처럼 오열했고 분노했으며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 제각각의 자리에서 뭔가 해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했다. 무엇보다 사건의 배후와 본질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고도 믿었다. 냉정하게 우리 사회에서 그와 같은 참사가 왜 자꾸 반복되고 있는지 제대로 보고 제대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목격한 총체적 진실은 사람보다 돈이 먼저였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선장을 욕하고 기업의 책임자를 욕하면서도 놓치지 말아야할 가장 중요한 건 사실 그 안에 숨은 부끄러운 내 모습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나는 제대로 본 걸까? 그 때 내 앞에 민낯을 드러낸 내 흉물스런 얼굴을 정직하게 마주했을까? 과연 나는 내 몫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을까?

 

인간이 본래 망각의 동물임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불과 1개월도 지나지 않아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버렸음을 우린 기억한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마주 서려고 한 진실을 놀라울 정도로 왜곡시켜버리는 힘은. 우리의 가슴을 참사의 아픔과 온전히 함께하지 못하게 하고, 떠올리는 일 자체를 지겹게 느끼게 하고 싸늘하게 등 돌려 버리게 한 그것은.

이젠 주변의 누구도 세월호를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게 종결되어 버린 듯한 인상이다. 당연한 일처럼 세월이 지나면 다 그렇고 그래야 하는 게 맞다고 한다. 아직도 잊지 못했다면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잊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상처를 깨끗이 씻고 닦아 정성껏 꿰매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흔적 없이 깨끗하게 잘 치유되었다면...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소독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꿰매어 언제 다시 어떤 모습으로 곪아 터져 나올 줄 모르는 불안 속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사실 우리도 그게 두려워 자신과는 먼 얘기로 회피하고, 정치적으로 변질되어버린 이합집산의 난투극으로 치부하고, 진실이 외면되고 왜곡되고 있음을 아프게 알더라도 답 없는 상황에 지치고 질려 체념하고 애써 묻어두고 있다는 것을.

 

금요일엔 돌아 오렴북 콘서트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날 참석했던 유가족 한 분이 말했다.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고 한 번, 그게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두 눈 뜨고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살리지 못해서 또 한 번, 자식을 죽인 책임 자들이 배후로 숨어버린 현실 앞에서, 그 진실을 알고자 하는 노력을 죽은 자식 팔아 득보려는 행위로 매도당하는 현실 앞에서 그는 이미 죽었다고 했다. 더는 살아야할 아무런 미련이 없다고. 그래서 이젠 모든 걸 그만두고 떠나고도 싶었지만 결국 남아 해야 할 숙제가 있다는 생각에 쉽게 떠날 수조차 없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이젠 누굴 원망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은 그저 이 땅에 남아 떠난 자식이 내게 준 숙제를 할 뿐이다. 가끔 길거리에서 노란 리본이 차나 가방에서 빛날 때 서로 알지 못해도 말하지 않더라도 위로가 된다. 이런 사람들이 아직 있구나. 모두가 등 돌릴 때 우리와 마음으로라도 함께 해주는, 진실은 드러나야 하고 그래야 비로소 새로운 사회가 올 수 있음을 아는 그런 이웃이 있구나. 눈물이 나고 힘이 난다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 부끄럽고 어색해서 감춰두었던, 가슴으로만 간직하자 했던, 그러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노란 리본을 꺼내어 가방에 달았다. 혹 마주치게 될 유가족에게는 당신의 마음과 늘 함께 하고 있다고 전하려고. 나에게는, 참사를 불러들인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이득만을 쫓는 우리들의 욕망과 무사안일의 태만함을 매순간 정직하게 내 안에서 보라는 따끔한 성찰의 침으로. 그리고 그들에겐, 거대한 바벨탑을 짓고 골리앗처럼 우뚝 서 있는 그들과 시스템에 보내는 -너희는 잊기를 바라지만 절대 잊지 않고 언젠가는 바로 네 앞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는- 경고의 징표로. 힘없고 작지만 투명하고 정직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임을, 늘 다시 깨닫고 살아가는 소박한 이웃들이 뭉쳐 한마음을 이룰 때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는, 오래된 진리를 확인하는 징표로. 노란 리본은 다시, 내 곁에 함께 한다.     조영여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작가)

 

 

 

 

흰눈이 내려 잠시라도 깨끗한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면

-김건우, 박성호에게

 

비가 내리는구나.

봄여름 마른 가뭄이 심하더니 가을부터는 비구름이 계속되고 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십이월인데도 눈보다는 빗속이야. 한차례 세차게 쏟아지면 좋으련만 부슬부슬, 멈추지 않는 눈물처럼 그을린 사랑처럼.

 

축구를 좋아하는 건우는 공을 찰 수 없어서, 별을 좋아하는 성호는 별을 볼 수 없어서 울상이었을라나? 아니지, 비 오는 날의 풍경 속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놀이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날씨와 상황도 멋지게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이니 말이야.

나는 너희 이름을 부르고 사진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냈단다. 약전을 쓰며 만난 너희는 수많은 희생학생들 중에서도 더 가까이 내 가슴에 살아 있단다. 비록 사진을 통해서 부모님과 형제들,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통해서 만났지만 정말 매력적이고 빛나는 아이들이었어. 내게 너희보다 두 살 많은 아들이 하나 있는데 형동생 삼아주고 싶을 만큼.

 

운동을 좋아하고 유쾌발랄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았던 건우와 매사 사려 깊고 의젓한 행동으로 사제를 꿈꾸었던 성호를 어찌 잊을 수 있겠니!

너희 둘은 짝꿍이었다지? 그곳에서도 다정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 믿어. 얼핏 보면 성격이 달라 보이지만 성실하고 친구들을 배려하고 의로운 일에 앞장서는 행동거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너희들이잖니. 그다지 많은 말없이도 의기투합하는 순간들이 많을 것 같아. 그곳에서도 여전히 2학년 5반 친구들의 리더로 정신적인 의지처 역할을 늠름하게 하고 있을 것 같아.

미안하구나. 그리 참담하게 너희들을 보내고 나서도 나아진 것이 없다. 반성할 줄 모르는 어른들, 진실을 조작하고 아픔을 회유하는 검은 무리들의 세상이다. 팽목항의 통곡을 덮으려는 찬바람만 쌩쌩 분다. 여기는 너무나 춥다.

그러니 너희들이 더욱 씩씩하게 살아 있어라. 너희들의 의지대로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거라. 살고 또 살아서 나무가 되고 울창한 숲이 되어라. 그곳에서, 너희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나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을게. 종교가 없는 나도 간절한 기도의 힘은 믿는단다.

 

보고 싶구나.

이 비 그치면 더욱 추워질 거라고 해. 감기 조심하고.

창밖이 캄캄하다. 내일 아침 창문을 열면 비 대신 흰눈이 소복히 쌓여 있으면 좋겠다. 잠시라도 깨끗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 환해질 것만 같아서.      함순례 (시인)

 

 

보이지 않는 너와의 동행

 

작년 4, 우리 97년생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아직은 서먹서먹한 교실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지.

비록 많은 학업 스트레스에 찌든 18세 고2들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가슴과 정신은 그 때 봄날의 바깥 풍경처럼 푸르렀지.

열심히 노력하고 인내하면서 남은 고등학교 생활을 보낸다면 우리에게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지. 그 때 우리의 미래는 어떨지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 가깝게는 어떤 대학을 갈지, 조금 더 멀리 보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정말 궁금하고 설렜어.

 

그랬던 그 시기에 일어난 세월호 사고는 내 또래들을 하나로 만들었고 바로 옆에 있던 친구를 잃은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단다. 사고가 일어난 날 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어. 나도 슬프다는 감정 이상의 그 무엇의 감정이 들었지. 너희들의 잘못도 아닌데 기회조차 뺏긴 것을 보면서 당연히 화가 났어. 그래서 그 때부터였지, 18년 남짓을 뛰어온 너희들의 사라진 남은 일생은 우리가 같이 살아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어느새 사고가 일어난 지 600일이 지났고 우리는 대학입학을 위해 한 발짝 더 다가왔어. 어떤 친구는 수시에 합격을 해 여유롭게 보내고 있고 어떤 친구는 가슴을 졸이며 예비합격을 기다리고 있단다. 또 어떤 친구는 정시모집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이제 서서히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지.

 

너희들이 살아있다면, 나는 내년에 대학에서 단원고 학생 누군가와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거나 삼겹살을 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있을 수도 있겠지. 가끔씩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아직도 궁금증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가 힘들어. 나라가 책임지고 모든 걸 밝히고 부모들이 갖고 있는 의문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언제쯤 이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네.

 

나는 요즘 대학에서 가면 어떤 친구를 만날까, 어떤 공부를 할까, 고등학교와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단다. 고등학교 때는 수학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는데 그런 공부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아. 지금쯤 너희들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대에 부풀어 있을텐데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구나.

 

97년에 태어난 우리들은 앞으로도 또래의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걸 오랫동안 기억할 수 밖에 없을거야. 한 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이 죽었기 때문이지. 내년에 너희 학교는 졸업식 때 눈물바다를 이루겠지. 바다에서 죽은 너희들을 눈물바다로 적신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려고 해

단원고 친구들아 ! 우리가 어디에 있든,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너희들을 생각하면서 보이지 않는 동행을 할게. 우리가 기억하는 동안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줘.     정현우 (용남고등학교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