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6.01.16 15:19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그들을 기억합니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연재 < 숨쉬는 4.16> / 2016.1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매달 16일마다 기획글을 올립니다. 2014년 여름부터 시작한 이 기획은 2017년 4월까지 3년 동안 이어집니다. 망각은 죄악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그들을 기억합니다

- 인형으로 세훨호 학생들의 꿈을 만드는 박민선씨 -

 

평범했다. 아니, 지금도 평범하다.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 다니고 살림하는 엄마이자 아내였다. 정치적인 뉴스에 깊은 관심을 가진 적도 많지 않다. 사회적인 이슈에 심각하게 고민했던 시절도 거의 없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녀의 궁금증은 단 하나였다. “ 어떻게 그 많은 학생들 가운데 한 명도 구하지 못했지?”

 

그래서 광화문 광장에 갔다. 단식을 하는 유민이 아버지를 보았다. 명찰을 목에 걸고 있는 김빛나라 어머니도 만났다. 빛나라 어머니는 그녀의 어린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를 이름이 뭐니. 우리 애는 이름이 김빛나라야. 아이들이 김밥나라라고 놀리기도 했지

 

애써 웃음을 지어주시는 어머니를 보고 그녀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김빛나라 라는 이름을 적은 천사모양의 인형을 만들었다.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시연이의 기타, 예슬이의 구두같은 걸 만들면 좋겠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서른 아홉 평범하게 살아온 박민선씨가 세월호의 아이들을 위해 인형을 만들고 소품을 만든 건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4년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들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모두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이왕 하는 거면 이름만 새기기보다 기억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서 사연이 알려진 아이들부터 하기 시작했죠. 한겨레신문에서 아이들의 사연을 연재한 적이 있었잖아요. 그런 내용을 보면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아이들의 절반 이상을 만들었네요.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 한 명 한 명 다 예쁘잖아요. 아이가 좋아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또 아이들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싶어서 아이의 특징과 연관지어 인형을 만들었죠

 

박민선씨는 오래 전부터 바느질을 좋아했다. 직장 생활하는 과정에서는 바느질을 할 시간이 없었지만 둘째 아이가 조금 크고 난 이후에는 손바늘질과 퀼트를 했다. 재봉틀을 이용해 옷을 만들었고 가방을 만들기도 했다. 바느질 솜씨가 이렇게 세월호를 기억할 줄은 그녀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바느질로 기억하는 것이 엄마가 기억하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쓰였는지 모른다. 그동안 만든 것은 아직 전달하지 않았다.

 

아직은 전달 안했어요. 절반 정도는 대전에 있는 한살림 조합 공간에 있구요. 나머지는 저희 집에 있는데 일단 다 만들고 나서 어떻게 할 지는 생각을 해보려고요”.

 

바느질 하나로 기억하다

바느질 자체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요. 빨리 하면 하루 꼬박 걸리는데요. 근데 이 작업을 하려면 여러 생각을 해야 되잖아요. 아이의 꿈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하죠. 아이 별명이 마이콜인 친구는 마이콜 모양으로 만들었구요. 약사가 꿈인 아이들도 여러 명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약국 표시를 해서 꿈을 나타내곤 하죠. 아이의 꿈을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만들까 생각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아이들의 꿈을 공책에 적고 또 아이들 사진을 보고 생각하거든요.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자신이 만든 인형과 소품들을 세월호 사고로 자식을 잃은 어머님들에게 몇 번 보여줬다. 한결 같이 좋다는 반응이었다. 한동안 작업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일 있는지 안부를 물어보는 이들도 있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걸 뜸했더니 요즘 인형이 잘 안보인다고 말씀을 한 분이 있어서 올해에는 부지런히 작업해 해를 넘기기 전에 마무리할 생각이다. 그녀에게 인형을 꼭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세월호로 숨진 단원고 학생들 어머님들께 뭔가 해드리고 싶었어요. 사고 이후에 집에 와서 슬퍼만 하고 있으니까 생활이 힘들더라고요. 남편도 교사인데요.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나도 거기에 탔다면 못나왔을 거라고. 이런 말을 들으니까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뭔가라도 해드리고 싶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저 같은 경우에는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돌봐야 할 시간이 많잖아요. 그렇다 보니 마음은 있지만 시간을 내서 1인 시위 같은 걸 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바느질로 이름을 새기는 시작한거죠. 아이들을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한 명 한 명 기억하고 싶어서 하게 됐어요

 

순서를 정해놓고 하는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좋아했던 꿈을 알 수 있는 아이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친구들 가운데 세월호 사고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듣기도 했구요. 안산에 택시기사 하시는 분이 사연 올려주신 것도 참고하고, 또 어머님들 보면 여쭤봐서 노트에 적어놓기도 했어요. 그런 식으로 사연을 알게 되면서 한 명씩 한 명씩 하고 있어요

 

세월호 사고가 생각을 바꿔놓았다

나이 서른 아홉. 어린 아들과 딸 하나 그리고 남편. 부부는 한때 공무원이었다. 그들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전에 내려왔다. 텔레비전이 없어서 뉴스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도 SNS를 통해 알았다.

 

“4.16은 제게는 충격이었어요.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저런 소식을 들었는데요, 아이들이 죽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에요.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잖아요. 사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고를 인정하더라도 한 명도 못 구한 게 너무 이상했거든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내 아이한테 경찰관 말 잘 들어라, 질서를 잘 지켜라 이런 말을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이건 아닌데, 뭔가 바뀌어져야겠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죠. 사실 단원고 아이들이 타서 그렇지, 내 아이가 탈 수 도 있는 것이고 남편도 교사니까 탈 수 있었던 거죠. 그건 내 문제인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게 너무 이상해서 광화문 나간거죠. 고공 농성을 하는 노동자도 만나고. 평택에 있는 쌍용자동차 사태에도 관심이 갖게됐죠, 또 밀양의 할머니들이 싸우는 것도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그렇게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사회 문제에 눈을 떴다고 봐야죠”.

 

박민선씨는 사회적 관심을 가지면서 공부를 했고 여러 모임에 나가기도 했다. 페이스북 친구들을 통해 공유하며 나누는 가운데 더 많은 걸 깨닫고 있다

 

지역에서 정치에 대해서 공부하는 모임, 좋은 책의 저자를 불러서 모임을 하거나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과는 다른 나은 것들을 추구하는 대안 모임들도 있어요. 저 뿐만 아니라 남편도 많이 나가죠

 

남편은 육아휴직중이다. 부부가 언제까지 대전에 살지 알 수 없다.자연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시골로 가려고요. 자연이랑 맞닿아 살고 싶더라고요. 흙이 더 많고 차가 더 적고 그런 곳으로 살고 싶어요.”

 

대전의 한 커뮤니티 카페에서 만난 박민선씨. 그녀의 소박한 인형 만들기가 일상에 젖어사는 이들에게 작은 울림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필자에게는 긴 여운으로 남은 것은 분명하다.

 

제가 가진 능력으로 아이들에게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저도 이걸 만들면서 생각을 하고, 또 만들어 진걸 보면서 아이들 생각할 수 있고. 제가 가진 걸로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무척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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