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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밥 기획 특집

[대전 원도심 기획 특집] 대전의 낭만거처, 산호여인숙

 

대전의 낭만거처, 산호여인숙

 

산호여인숙은 잠만 자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다.

 


 그럼 뭐지?

 산호여인숙에 가기 전 잠깐 들린 계룡문고에는 뜻밖에 ‘산호여인숙이 추천하는 책들’이라는 부스가 있었다. 아기자기한 부스 역시 딱 산호여인숙 분위기였다. 어떤 사연인지 공동대표로 산호여인숙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서은덕 씨에게 물었다.
 “계룡문고의 기획이지요. 그 부스는 지역사회의 소통이란 주제로 한 달에 한 번 씩 한 단체나 모임이 서점 한편에 부스를 만들어 단체가 추천하는 도서를 소개하고 그 단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함께 담는 코너에요. 그리고 판매금액의 10%를 계룡문고 상품권으로 돌려줍니다. 지금은 산호여인숙이 권하는 책과 산호여인숙과 인연이 닿은 분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이요. 지역사회와 상생하자는 취지이죠.”

 산호여인숙의 공식적인 주소는 대전 중구 대흥동 491-5번지이다. 계룡문고 건너편으로 대흥동에 들어서 오른쪽으로 만나는 작은 골목 안쪽에서는 아담한 산호여인숙을 만날 수 있다. 산호여인숙은 정말 여인숙이다. 사람들이 와서 고된 몸을 쉬고 가는 곳이기에 여인숙이기는 하지만 또 그냥 그렇게 단순한 여인숙은 아니다.
 요새 말로는 게스트하우스라고 부르는 성격으로 여행자들이 숙박을 하지만 또 그것이 다가 아니다. 어렵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생적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문화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산호여인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전의 원도심 중 하나인 대흥동에서 매년 열리는 ‘대흥동립만세’라는 축제를 알아야 한다. 이 축제는 대흥동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과 상가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축제이다. 이 축제로 대흥동은 8월 동안 많이 들떠있다.
 “대부분의 축제가 위에서 주도해서 만들어지는 형태인데, 우리 축제는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만드는 거예요. 대흥동에 있는 몇몇 개인들이 술을 마시다 축제를 해보자는 취지에 동의했어요. 장소도 우리가 정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는 하고 할 수 없는 건 하지 말자 이런 합의였죠.”

 ‘대흥동립만세’에서 태어나다

 그렇게 2008년 첫 축제를 열면서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게 대흥동의 문턱이 낮아지자 다시 젊은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인디밴드, 연극인들을 비롯해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대흥동에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자원봉사 하는 친구들도 일이 아닌 즐겁게 노는 것을 목적으로 모여 신나게 놀고 함께 기획했다.
 이렇듯 ‘대흥동립만세’는 어떤 실체를 가진 단체가 아니라 대흥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만든 그저 개인의 연대라고 했다. 그것도 각각 강한 색깔을 가진 개인이 만든 느슨한 연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할 땐 반짝 모여 즐겁게 한다. 누군가 기간을 정하고 카페에 자기 마음대로 홍보하면 그게 끝이다. 그러면 각자, 자기 방식으로 살다가 짠하고 모여 즐겁게 일을 만들고 한바탕 논다는 것이다. ‘대흥동립만세’를 계기로 다양한 예술인들이 서로에게 애정이 만들기 시작한 것이 산호여인숙의 출발이다.
 
 축제에 참여하며 교류했던 문화예술인들이 게스트하우스, 그러니까 그들이 함께할 거점 공간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있었다. 그것 또한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왔으며, 자연스레 장소를 물색하다가 지금의 공간을 발견했다고 한다.

 산호여인숙 건물은 1977년에 지어지고 1990년대 말까지 여인숙으로 운영되다가 폐업하고 10년간 휴업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2011년 4월 어느 봄날, ‘대흥동립만세’가 주체가 되어 건물의 임대계약을 하고 만다. 또 즐거운 일이 저질러진 것이다.
 ‘대흥동립만세’에 출몰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연극인, 음악인, 건축인, 장사하는 예술인, 출판인 등 대흥동을 기반으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산호여인숙을 잉태하고 함께 출산한다. 어떤 연극인은 임대료을 대고 건축 하시는 분이 내부공사로 참여하고 각자 나름의 품을 팔아 문화예술인들이 모이는 놀이터를 완성해 나간다.

 자산은 사람입니다

 산호여인숙의 외관은 오래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여기에 새로 페인트를 칠하고 도배와 장판이 깔면서 점점 다른 공간으로 모습을 갖추어 간다. 생활정보지에 광고도 냈다. 버릴 물건이 있으면 달라는 것이다. 그랬더니 시민들이 소파, 식기세척기, 밥그릇, 숟가락까지 모두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또 많은 집기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주워와 리폼한 것이다.
 이렇게 4개월간의 준비 끝에 2011년 8월 ‘대흥동립만세’ 축제에 맞춰 산호여인숙은 게스트 하우스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문을 연다.
 “우리의 자산은 사람입니다. 산호여인숙은 숟가락을 후원해주신 사람에서부터 매일 출근해 이것저것 다듬어 만든 사람들 모두가 모여 만든 문화예술인들의 공간입니다. 정형화된 인테리어가 아닌 개성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이죠.”

 산호여인숙의 공동대표로 여러 잡일을 하고 있는 서은덕 씨는 여러 사회단체에서 일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자발적인 형태의 마을 축제를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대흥동립만세’와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마을 공동체이면서 억지스럽지 않고, 예술적이면서 자유로운 산호여인숙은 현재 본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익숙한 도시공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재창조하고 싶었죠.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이런 노력이 이 공간을 게스트하우스 이상의 문화공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작은 전시회를 열거나 베란다에서 영화제를 열거나 공동체 화폐 ‘두루’를 사용하는 짜투리시장을 열거나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쓰임새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기획이 즐거워요.”

 

 

 산호여인숙의 역할은 뭘까?

 기본적으로 산호여인숙은 게스트하우스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흥동을 안내하며 아카이브하는 공간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흥동을 중심으로 원도심을 안내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작게는 맛집 소개부터 크게는 원도심 전체 투어를 진행하기도 한다. 대전 원도심은 근대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많고 문화예술의 근원지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외부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시간과 자본에 의해 사라져가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대흥동 트러스트를 소소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대흥동에서 발생되는 문화예술 팸플릿, 포스터 등을 모으고 보관하는 자투리도서관이 한 귀퉁이에 자라잡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역할도 중요하다. 1층은 젊은 예술인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공간이자 다양한 문화예술이 숨 쉬는 창작공간이다.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전시하고, 그들의 물건을 파는 자투리시장을 열기도 한다. 또 공연을 하고 복도에서 강의도 한다. 영화를 찍는 사람도 있으며 이들이 즐겁게 부대끼기 때문에 장르 간 크로스오버가 일어난다. 이렇게 1층 5개의 공간에는 문이 없이 항상 열려있으며 작품은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들은 오가는 어떤 이들과도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2011년에 열린 ‘게스트&게스트’, ‘빈집여행프로젝트1+1’, ‘산호여인숙 기획전시 여관’, ‘산호여인숙을 점령하라!’ 등이 이런 복합장르와 탈장르를 추구하는 움직임으로 열린 기획들이다. 이 작은 공간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아주 재미있고 또 놀랍다.

 2층은 게스트하우스이다. 9개 방으로 최대 25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사실 두 명이 발을 뻗으면 닿는 예전의 여인숙 그대로이다. 방 이름도 재미있다. 한 지인이 에어컨을 기증하였다하여 그 방은 ‘키다리 아저씨방’이다. 또 4명이 들어가는 ‘친목을 위한 고스톱방’, 벽지가 모자라 남은 벽지를 모아 붙인 ‘혼돈의 방’ 등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방들이 모여 있다. 

 

 


 또 2층의 방 중 두개의 방은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곳으로 장기 ‘산호주민’이 거주하는 곳이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거주와 창작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산호가 운영하는 창작 레지던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모집요? 비공개입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 모이죠. 만화가, 미술 하는 친구, 연극하는 친구들, 중국 작가들,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갔어요.”

 이뿐 아니다. 산호여인숙에서는 대흥동의 젊은 기획자들이 모여 일주일에 한번 씩 ‘오감’이란 모임을 연다. 또 대전의 근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포럼과 대전을 연구하는 학예사 모임이 열리는 곳도 산호여인숙이다. 이렇듯 산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즐긴다.
 “우리가 자유로운 공간이긴 하지만 작은 공간입니다. 다양성 중에서도 작은 다양성이죠. 실제로 공간이 좁으니까 열 명 정도만 모여도 굉장히 북적북적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내용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끼리 작은 규모로 기획의 완성도도 높이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재미없으면 안 하죠. 이것이 우리들 나름의 기준입니다.”

 

작은 돌멩이 아래 꾸물대는 마법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작게 뭔가를 벌이는 공간인 산호여인숙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서은덕 씨의 말을 빌어보면 뭔가 잡히는 것이 있다.
 “어릴 적, 냇가에서 돌멩이 들어보면 그 아래 아주 작은 공간에 벌레들이 바글바글하던 모습이 자주 떠올라요. 여긴 바로 그런 공간일 것 같아요. 사회에 나가기 전, 자기를 실험하면서 자기를 파악하고 잠재력도 짐작해보는, 또 공동작업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의 특징을 눈치 채는, 또 먼저 사회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고 싶은 친구를 찾아내는, 그런 연결고리가 되는 문화적 중간지대랄까요?”

 문화적 활동만으로 산호여인숙을 운영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세속적 물음도 빠뜨릴 수 없었다.
 “주로 게스트의 수입으로 운영되죠. 크지 않은 돈이지만 적정하게 운영하고 있어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업처럼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가 아니라는 거죠.”
 지금 문화적 환경은 사업의 성격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적지 않다.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기업을 만드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면 좀 더 많은 지원을 받아 많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산호여인숙의 원초적 기획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일을 원하는 방식으로 하기 위해서는 지원 사업에 크게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물론 산호여인숙에 어울리는 작은 프로젝트는 일부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자유롭게 산호의 목소리를 내고 산호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산호가 추구하는 바다.

 “우리는 스스로 믿음의 자식들이라고 불러요. 스스로 만들어지는 마법을 믿는 거죠. 돈 안 벌고 돈 없어도 먹고 산다는 믿음? 산호여인숙의 생명력은 호혜죠. 나눔의 삶 말입니다. 돈은 없는데 항상 풍족해요. 신기하죠? 마르지 않는 샘 같아요.”
 그래서 산호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모두가 스쳐지나가는 인연인데 뭔가를 함께 하고나면 끈끈한 인연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서 쉬고 싶어 하고 그것이 인연으로, 친구로 남는 과정이 바로 산호여인숙이다.

 

산호여인숙 바로 보기

 마을기업인 ‘원도심 렛츠’와 함께 시작한 기획이 짜투리시장이다. 엄마, 이모 같이 푸근한 마을기업 사람들과 함께 시작한 짜투리시장은 한 달에 한번 토요일에 산호여인숙 앞 골목에서 열린다. 대안화폐인 ‘두루’만이 사용되는 이 시장은 밥할 사람은 밥하고 팔 사람은 팔고 놀 사람은 노는 말 그대로 동네잔치이다. 자연스레 마을 아줌마들과 예술 하는 젊은이들, 대흥동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 또 언론에 알려지면서 구경나온 많은 사람들도 같이 어울리기도 한다.

 “여관하고 여인숙의 차이를 아세요?”
 각 방에 화장실이 있으면 여관이고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면 여인숙이라는 사실을 서은덕 씨도 잘 몰랐다. 술에 취해 예전의 여인숙을 생각하고 들어왔던 한 중년의 남성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서 우연찮게 산호여인숙의 역사도 들었다는 것이다.
 “한 책자에 우리 산호가 소개되었어요. 그래서 이 지역보다 외부에서 더 많이 찾아오고 문의가 옵니다. 물론 좋은 점도 많지만 불편한 점도 많아요. 미디어를 통해 알려질 때면 어느 정도 포장되어 나가기 때문에 정작 그 이미지만 보고 오셨다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보시다시피 작은 여인숙이잖아요? 그럴 때 불편하죠.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여지길 원해요. 그리고 거기에 매력을 느끼신 분들만 찾아오셨으면 좋겠어요. 더욱 우리는 구경거리가 아니라는 사실도 생각했으면 좋겠고요.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필요하죠.”

 산호여인숙이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산호에게는 억지로 만들어나가는 미래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산호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밖에는 없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숙박업에 대한 부담도 조금 있어요. 그러나 그것보다는 산호여인숙의 생명이 다하면 끝나지 않겠어요? 억지로 끝까지 잡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해보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는 거죠. 우리도 지금처럼 될지 몰랐어요. 억지로 하자고 됐겠어요? 흐름대로 가야죠.”

 


 사회에는 보편적 가치가 있다. 그러나 보편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수직적인 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연대가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는 시간이 올지 알 수 없지만, 이런 가치가 보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산호여인숙과 같이 다양성으로 모이고 서로를 배려하는 가치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