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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유, 생명이라서 그렇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유, 생명이라서 그렇다 /  2016년 4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았다. 여전히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고통은 치유되지 않았다. 분노도 삭혀지지 않았다. 여전히 세월호는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 이것이 세월호 참사 2주기의 현실이다. 명확한 진상규명의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 뿐, 책임있는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가 언제 인양될 수 있을지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숨쉬는 4.16>을 기획 연재한 것은 지난 20147월이다.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망각의 늪에 빠지지 말자는 뜻에서 매달 16일마다 글을 올렸다. 지난 1년 동안 만나본 사람과 취재한 내용을 돌아보는 것으로 우리는 2주기를 기억하려고 한다. 

 

20155

세월호 유가족인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 프란치스코 이호진 씨를 만났다. 이 씨는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 팽목항에서 출발해 서울 광화문까지 삼보일배의 순례길을 이어갔다. 60여 일간 이어진 순례의 길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별들의 영혼을 헤아리는 길이자 9명의 실종된 시신을 찾아달라는 간절한 기도이기도 했다. 순례단이 대전을 지나는 동안 이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짧으나마 50여 명의 시민들이 이 길에 함께 했다. 지나는 시민들은 위로와 격려로 아픔을 나누었으며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연대가 태어나고 있었다.

 

 

20156

희생자들과 동년배의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학교는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집단으로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글은 따뜻하고 또 뜨거웠다.

캄캄한 이 배를 떠날 생각에 벌컥 문을 연 아이들은 무서웠지?’ 팔 벌려 안아주는 엄마 대신 짙은 잿빛의 바다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걸 지켜봅니다. , 문을 두드린 건 엄마가 아니라 저 크고 검은 바다였음을 그제야 깨닫는 나입니다.”

혹여 오는 길 잃었으려나/헤매고 있으려나/이 세상으로 오는 길/환히 밝혀줄 등대 되리라

상상으로나마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 보는 일로 고통을 나누는 학생이 있었으며 또 반드시 돌아올 그들을 위해 등대가 되리라 다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었다.

 

20157

해병대 사설캠프에서 사고로 희생된 공주사대부고의 고 진우석 군, 그의 어머니를 만난 때는 7월이었다. 대형사고는 계속 이어졌고 안타깝게도 희생자들은 우리의 미래가 될 청소년들이었다. 2013년에 발생했던 이 사고를 계기로 안전에 과한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졌다면 세월호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사고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우석 군의 어머니는 인터뷰에 응했다. 어머니는 5명의 젊은 영혼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달라진 것 하나 없이 다시 참변이 일어난 이유는 기본을 지키는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 번의 사고에서는 배워야 기본이 쌓이다. 그렇게 분석하고 배워서 안전을 다져야 하는데 책임만 회피하려 서둘러 수습해버리기에 참사는 반복되고 현실은 더 절망스러워진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도 매일 SNS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슬픔과 상처는 시간으로 지워지지 않았다.

 

20158월과 9

지난 1년 동안 우리에게 인터뷰를 통해 전해졌던 말들을 짚어보면서 세월호 사고를 다시 한 번 기억의 밖으로 꺼냈던 8, 그리고 맞은 9월은 세월호 참사 500일이 되는 달이었다. 어느새 무뎌져가는 우리의 가슴에 경종을 울리는 두 시민을 만났다. 매일 오후 4, 대전의 으능정이 거리에는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중년의 남성 유랑자씨와 대전 새누리 당사 앞에서 91일이 넘게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언니 안선영씨이다. 기억한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두 사람에게도 세월호는 물음표이고 아픔이었다. 진짜 잘못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차가운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안선영 씨의 일갈은 모두의 폐부를 찔렀다.

 

201510

국민TV 대전지협 노란리본 공작소를 찾았다. 국민TV는 공정방송실현을 위한 미디어협동조합이다. 자본권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미디어 환경을 꿈꾸는 조합이다.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지식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적 의무를 다하도록 요구하기 위해 모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조합원들 손으로 직접 만든 노란 리본을 시민들과 나누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행사는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구나,라고 일깨우며 희생자에 대한 미안함도 더는, 산 사람의 씻김굿 같은 거라 전했다. 자동차 키에, 가방에, 어디든 달고 다니는 작은 노란 리본 하나는 우리가 소통하고 또 잊지 않는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201511

그들은 매달 16일 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집회를 갖는다. <매월 16일 세월호 기억행동>이라는 이름으로 피켓을 들고 서명을 받으며 잊혀질 수 없는 세월호를 기억한다. 그들은 참교육학부모회 대전지부 사람들이다. 20148월 준비위원회를 결성해 올해 3월에 정식으로 창립을 했으니 이제 조직의 씨앗을 뿌렸다고 할 수 있다. 전국 규모의 참교육학부모회는 1989년 창립이 됐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아이들을 안전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키울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대전지부가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참교육 학부모회 대전지부의 전,현직 사무국장인 강영미씨와 최윤정씨를 만나 거리에 나서야 하는 엄마의 심정을 들었다

 

201512

가는해의 아쉬움을 달래면서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함순례 시인, 스토리밥 조영여 이사장이 참여를 했다. 다음은 조영여 작가의 편지글 일부다.

기억한다. 참사 앞에서 우린 모두 한마음이었다. 함께 공감하며 아파했다. 분명 그 순간엔 모두 자신의 일처럼 오열했고 분노했으며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 제각각의 자리에서 뭔가 해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했다. 무엇보다 사건의 배후와 본질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고도 믿었다. 냉정하게 우리 사회에서 그와 같은 참사가 왜 자꾸 반복되고 있는지 제대로 보고 제대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목격한 총체적 진실은 사람보다 돈이 먼저였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선장을 욕하고 기업의 책임자를 욕하면서도 놓치지 말아야할 가장 중요한 건 사실 그 안에 숨은 부끄러운 내 모습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나는 제대로 본 걸까? 그 때 내 앞에 민낯을 드러낸 내 흉물스런 얼굴을 정직하게 마주했을까? 과연 나는 내 몫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을까?”

 

20161월  

해가 바뀌었도 스토리밥의 기획연재는 이어졌다. 서른 아홉의 박민선씨는 오래 전부터 바느질을 좋아했다. 그녀는 직장 생활할 때는바느질할 시간이 없었지만 둘째 아이가 조금 크고 난 이후에는 손바늘질과 퀼트를 했다. 재봉틀을 이용해 옷을 만들었고 가방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바느질 솜씨로 세월호의 아이들을 기억했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작은 인형과 소품으로 형상화했다.

바느질 자체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요. 빨리 하면 하루 꼬박 걸리는데요. 근데 이 작업을 하려면 여러 생각을 해야 되잖아요. 아이의 꿈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하죠. 아이 별명이 마이콜인 친구는 마이콜 모양으로 만들었구요. 약사가 꿈인 아이들도 여러 명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약국 표시를 해서 꿈을 나타내곤 하죠. 아이의 꿈을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만들까 생각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아이들의 꿈을 공책에 적고 또 아이들 사진을 보고 생각하거든요.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20162

죽음의 순간에도 삶은 탄생한다. 죽음을 목격하면서 얻은 삶이기에 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4416, 그녀의 뱃속에서 새생명이 태어났다. 제주섬을 밟지 못한 채 진도 앞 바다에서 푸른 청춘들이 숨진 그 날이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운다고 했던가. 정서희 씨가 당진버스터미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것은 그들의 죽음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세월호 1인 시위를 시작하는 분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저는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다는 핑계로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가만히 있었는데 마음이 괴롭더라구요. 스스로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되면서 나오게 됐죠. 제가 처음 나온 게 막내가 5개월 차 되던 때였어요. 엄마들 모임하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어요. 제가 나가고 싶은데 같이 해주실 분 없냐고 했죠. 사실 혼자 서기에 겁이 나기도 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한 두명씩 참여하는 분들이 늘었구요. 음료수랑 빵을 사주면서 격려하는 분들도 생겼어요.”

 

 

20163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목수 고충환 씨는 나무고리에 불도장을 찍으며 세월호의 죽음을 기억한다. 그가 찍는 도장은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한다는 각인이다. 지금까지 8천개 넘는 나무고리를 전국으로 보냈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경건해졌다.

다른 작업과 달리 마음이 사뭇 다르죠. 보통은 일상적으로 들어오는 주문 작업을 끝내고 밤에 고리 만드는 작업 진행하는데요. 때로는 마음이 복잡하고 심난하기도 하지만 막상 불도장을 찍고 고리를 다듬고 있으면 새겨진 글처럼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이런 생각을 더욱 간절하게 갖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죠. 참으로 작은 일이지만 이런 작업이 유가족들에 위로나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더불어 내 자신의 마음을 다듬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성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경건한 자세가 든다는 점에서 말이죠.”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의 <숨쉬는 4.16> 기획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소속 조합원 작가들은 슬픔과 고통을 나누려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날 것이다. 치유되지 않는 충격과 상실을 보듬으며 글로 3년상을 치룰 것이다. 세월호 글쓰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작은 소명이다. 그것은 하늘에서 보고 있는 아이들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그날까지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