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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그들은 외면하고 회피했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2017년 6월

 

                                                        그들은 외면하고 회피했다

 

 아쉬움이 많았다. 한계도 많았다. 역할과 권한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특조위는 운영 기간 동안 정부와 수시로 갈등을 빚었으며 사실상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지난 2014년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될 당시에 특조위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지난해 특조위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조사관들은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4·16세월호조사관 31명은 세월호 특조위가 해산된 뒤에도 서울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민간인 신분으로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그 활동의 결과가 <외면하고 회피했다>는 책으로 출간됐다. 발간일은 지난 63일이다.

 

 책의 공동 저자로 표기된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은 세월호특조위에서 근무했던 조사관들이 민간인 신분으로 조직한 후속 모임이다. 세월호진상규명법에 따라 만들어진 세월호특조위는 20158월이 되어서야 예산과 인력을 갖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6630일 박근혜 정부는 조사 활동을 강제 종료시켰고, 이후 세월호특조위는 단식 농성, 조사 활동, 3차 청문회까지 진행하면서 부당한 폐쇄에 항의했다. 결국 930일 이후 기본 업무 시스템이 정지되고, 사무실 출입조차 불가능해지면서 세월호특조위는 법이 보장하는 활동 기간 1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국가 기구로서의 활동을 마치게 되었고, 이후 진상 규명 활동을 지속할 의지가 있는 조사관 31명이 결의해 후속 모임을 만든 것이다.

 

외면하고 회피한 책임의 주체들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은 현재까지 참사 당일 정부 대응 체계 정리’, ‘세월호 인양 과정 점검’, ‘사고 원인등 조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책의 일부를 살펴본다.

 

해경 본청,서해청, 목포서 상황실 모두 세월호와 직접 교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세곳 중 어느 한곳도 세월호와 직접 교신을 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세월호와 교신한 곳은 진도 VTS가 유일했다(오전 96분부터 937분까지였다. 목포서에 신고가 접수되기 전인 855분 세월호는 처음 사고 신고를 위해 제주 VTS를 호출했고, 이때 한 차례 교신했다.) 상급부서인 그들이 직접 나서서 세월호의 상황을 즉시 파악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아니라도 누구든 지시하면 된다고 미루어놓고서 막상 아무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다른 부처, 다른 직원들에게 그냥 구조를 맡겨두고 있었다. 해경본청과 서해청, 목포서가 TRS와 상황정보문자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한쪽에서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공유되는 정보망 안에 투입하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휘부가 적극적인 확인 조치를 하지 않은 탓이 크다

 

특조위 활동을 김선애 전 조사관은 세월호특조위에 근무할 당시 조사관들은 공무원들의 노골적인 방해 행위를 경험한 바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축소, 왜곡하거나, 근대화의 병폐로 치부하는 정관계 인사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전 조사관이 출간에 즈음한 말을 이렇게 적었다.

 

조사를 하면서 우리의 뇌리에는 세월호 선내 승객들이 질서를 유지하며 정부를 끝까지 믿고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신고했던 모습, 울고 있는 5세 어린아이를 보듬어 끝내 같이 살아난 학생들, 세월호 선미에 달라붙어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눈이 마주친 그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해 그 죄책감으로 술에 의탁하며 살아가는 어부, 정부를 대신해 희생자를 수습했으나, 작업중 동료 잠수사가 사망하자 그 책임을 민간에게 전가하는 해경을 보면서....”

 

 

제대로 지휘하지 않았다

 

외면하고 회피한 책임의 주체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조사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 책을 펴낸 출판사의 리뷰를 보면 그 책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리뷰의 일부를 옮긴다.

 

국민의 안전 불감증이 재난을 부른 것이 아니다. 탈출하지 못한 친구를 찾으러 다시 배 안에 들어간 학생의 책임감이 참사 당일 정부 기관이나 관료들에게는 부재했기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구조 기관들은 참사 당일 내 관할, 내 소관이 아니라는 이류로 자신들은 몸을 빼면서 다른 곳에 책임을 떠넘겼다. 참사 당일 승객들의 신고 전화가 정부 각 기관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이 축소되고 왜곡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구조 기관의 지휘부는 서로 소임을 미루었고, 일선 현장의 구조자들은 문책을 피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국가의 책임이 분명하다. 최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영춘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에서 안전관리 부실과 구조 미흡 등 국가의 책임이 크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김 후보자가 지난 12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인사청문위원에게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를 살펴보면 "선박·운항 안전관리를 철저히 감독하지 못해 참사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점과 사고 당시 구조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한 점에 국가의 책임이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미수습자 수습을 하루빨리 마무리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 2기 특조위의 출범으로 의혹과 의심을 풀어야 한다. 물론 2기 특조위가 출범하기까지는 거쳐야 하는 난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도 지켜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고 비하하는 일부 인사들의 반발도 넘어야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얼마나 호응을 해줄지가 관건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수백만명이 서명에 참여했고, 1차로 취합된 350만명의 서명부가 국회에 전달된 게 2014715일이다. 이후에 난항 끝에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것이 같은 해 117일이다. 사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특별법이 의결된 것만 보더라도 2기 특조위의 출범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방해하는 세력은 도처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참사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고, 조사는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을 외면하고 회피했는지확실히 밝히는 게 살아남은 자의 도리이다.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에서 펴낸 책이 그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