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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오독

다양성 영화의 중심, 대전아트시네마

다양성 영화의 현실

 2013년 9월,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프로젝트>가 멀티플렉스 상영관인 메가박스에서 상영이 중지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천안함프로젝트>는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피폭 사건과 관련해 풀리지 않는 의문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의 상영 중지 이후 각종 보도에서 빠짐없이 ‘다양성 영화’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다양성 영화’는 작품성, 예술성이 뛰어난 소규모 저예산 영화를 이르는 말이다. 상업영화와 대비되는 의미로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시네마워크 사업계획안’에 언급된 용어이다. 대체로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영화 등을 총칭한다. 대규모 제작비를 들여 만드는 상업영화와 달리 소규모 제작비가 투입되고 배급이나 상영 규모에 있어서도 소규모로 진행된다.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다루고 영화 제작에 있어 보다 더 실험적인 것이 장점이지만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스펙타클한 볼거리를 요구하는 관객의 입맛을 맞춰주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맞추려는 시도도 하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지는 않지만 영화 관객들의 취향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흥행에 성공하기도 한다. <워낭소리>, <지슬>은 그 대표적 작품이다. 다양성 영화에 있어 가장 절실한 것은 결국 상영관의 확보이다. 관객과 만날 수 없는 영화는 존재 기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영화의 주류 상영 공간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로 대표 되는 멀티플렉스이다. 예를 들어 대전 CGV는 9관까지 상영관을 확보하고 있다. 상영관이 많다는 것은 관객들이 그만큼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의미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9개의 상영관이 있는 대전 CGV에서 실제로 상영되는 영화는 3~5편에 불과하다. 대형 배급사가 직영하는 멀티플렉스의 수익 구조는 상영관의 독과점 문제를 유발하고 이는 어떤 영화들에게는 상영관 확보 문제와 직결된다. 관객과 만날 수 없는 영화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201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최고 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피에타>가 상영관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확보된 상영관에서의 상영시간도 주요 시간대 밖에 배치되어 흥행에 고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다른 다양성 영화와는 달리 <피에타>는 베니스 영화제 이후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에 힘입어 105개 스크린을 확보했으나 이마저도 당시 흥행작이던 <도둑들>의 1/4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대중의 관심이 한껏 고조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대중은 영화를 ‘제대로’ 관람할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천안함프로젝트>와 <피에타>가 맞닥뜨린 문제는 다양성 영화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예이다. 대형 배급사가 제작에 참여하고 배급하는 주류 상업 영화가 아닌 이상 관객과의 만남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 문화 생태계는 언젠가는 멸종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종의 다양성을 잃은 자연 생태계의 결말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나 다양성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면서 전국적으로 전용 상영관이 속속 개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전에서는 2006년 4월 ‘대전아트시네마’가 개관된다.


시네마테크대전

 ‘대전아트시네마’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네마테크대전’을 말해야 한다. ‘시네마테크대전’은 영화가 제작 상영된 1895년을 기리며 1997년 ‘시네클럽’으로 출발했다. 이후 한국적 시네마테크 운동을 적극 수용해 작가영화, 독립영화, 단편영화, 독립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상을 지역에 배급하며, 지역 영화 인력의 인프라 구축에 힘쓴다. 또한, 2002년 전국의 시네마테크 단체들과 함께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를 결성해 시네마테크 운동을 발전적으로 계승한다. 시네마테크 대전은 지역의 영화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열린 공간을 표방하고 기타 독립적인 문화운동 단체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역의 소외된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지역의 대표적 영상문화운동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시네마테크대전의 주요 활동은 시네클럽, 대안적인 영화배급, 영화 향유자 층 개발, 영화 연구, 영상교육, 문화 복지, 연대활동으로 요약된다. 1997년 창립 이후 일반 관객이 접하기 어려운 단편영화, 인권영화를 포함해 퀴어영화 등을 소개하는 동시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전’, ‘빔 벤더스 영화제’,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제’, ‘프랑스 누벨바그 기획전’, ‘대전둔지미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해 오던 중 안정적인 상영관 확보의 필요성이 절실해진 상황에서 시네마테크대전의 전용 상영관인 ‘대전아트시네마’를 개관한다. 그 무렵 영화진흥위원회가 선정한 예술영화관(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에 대전아트시네마가 선정되었다. 예술영화관 특성화 극장을 집중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대전아트시네마는 그간 대전이라는 도시 규모와 배후조건에 미루어 충분히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영화전용관이 없었던 점과 시네마테크대전의 인력들이 직접 운영하는 상영관으로서 그 의지와 프로그래밍 능력이 반영되어 예술영화관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보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예술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대전아트시네마

 대전아트시네마는 1990년대까지 명맥을 이어온 동보극장이 있던 자리(대전시 동구 중동)에 위치한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이다. 대전에서도 대중교통 이용이 가장 편리한 대전역 인근 중앙로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그러나 블록버스터와 슈퍼스타에게 집중되어 있는 대중의 관심, 다양성 영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 부족, 자본의 흐름에서 갓길로 벗어난 영화 상영 등의 이유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그 동안 수많은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많은 상영관을 다니면서도 대전아트시네마라는 상영관의 존재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우연한 기회에 대전아트시네마를 ‘발견’하게 된 그는 이후 한 달에 서너 번 정도 대전아트시네마를 찾아 영화를 감상하는 마니아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꼽은 최고의 작품은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렛미인>이었다. 대부분의 영화관이 상영을 외면한 이 작품을 생애 최고의 영화로 꼽으면서 그는 말했다.

 “아트시네마가 없었다면 나는 이 영화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살았을 수 있고, 내 인생은 그만큼 더 건조했을 것이다. 내 인생의 기쁨 하나를 잃어버렸을, 아니 맛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대전아트시네마는 상대적 소수일 뿐 적잖은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것은 대전아트시네마를 회원제로 운영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회원들은 인문학카페, 시네클럽, 브런치시네마 등의 소모임 커뮤니티를 통해 소통하고 각종 정보를 공유한다.

 시네마테크대전이 탄생의 근거가 되었던 만큼 대전아트시네마는 영화를 상영하는 당연한 일 외에도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전아트시네마 영화강좌이다. 2013년 6~7월 진행한 강좌는 ‘시나리오 기초과정’과 ‘색보정, DI 초급 과정’, ‘영화비평교실-영화는 어떻게 성립하는가?’의 세 강좌였다. 영화 이해는 시작과 실전, 그리고 사유의 단계를 짚어나가는 일련의 순환고리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영화의 기초 지식을 습득하고 뼈대를 만들 수 있는 시나리오 기초반 강좌, 영화의 분위기와 독창적인 시각효과를 창조할 수 있는 색보정 및 DI 초급과정, 완성된 영화를 통해 영화를 성립시키는 요건들을 사유할 수 있는 영화비평교실은 사유가 필요한 영화 예술에 대하여 보다 깊이 접근하고 폭넓게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간이다. 이 밖에도 ‘질 들뢰즈와 시네마’, ‘영화로 변주하는 철학의 물음들’과 같은 철학적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강좌와 함께 ‘영화 장르에 대해 궁금한 다섯 가지 것들’처럼 영화에 보다 가볍게 다가설 수 있도록 안내하는 강좌와 ‘카메라 기초-DSLR, 쌈빡하게 시작하기’, ‘디지털 카메라, 구입부터 활용까지’와 같은 실용적인 주제의 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전아트시네마는 소박하다. 대훈서적이 있던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작은 교통카드 충전소를 만나게 된다. 교통카드 충전소 앞 건물을 바라보면 조금 우묵하게 들어간 건물이 있고 건물 오른편으로 몇 개의 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위층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간 3층에 대전아트시네마가 있다. 맑고 경쾌한 풍경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몇 개의 테이블과, 아마도 커피 원두를 볶은 것 같은 향기를 만날 수 있다. 은근하게 배어 있는 커피 향이 가끔은 카페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영화관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겨울이면 홀 중앙에 설치된 난로와 전기스토브도 볼 수 있다.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상영관이 춥다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름에는 다소 더우리라는 것도.

 상영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홀 내부에 비치된 서가에서 다양한 종류의 서적을 읽어볼 수도 있다. 영화 관련 각종 매거진과 단행본들, 그리고 약간의 시집을 비롯한 문학서적과 철학서적까지. 대전아트시네마의 강민구 대표가 한때는 시인을 꿈꾸기도 한 철학도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문학과 철학이 주요 주제를 이루는 서가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홀의 왼쪽에는 강민구 대표의 작업실이 있다. 은행동에 별도의 작업실을 마련하기 전에는 영화 강좌가 진행되기도 하던 공간이다. 작업실에는 각양각색의 카메라와 부대 장비들이 즐비하다. 시네마테크대전의 회원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필요한 장비를 대여할 수도 있다.

 대전아트시네마를 찾는 관객이 적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더 조용하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멀티플렉스의 어수선한 관람 분위기가 거북했던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대전아트시네마의 관람 분위기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다만 미리 영화 프로그램과 상영 시간을 대전아트시네마 인터넷카페에서 미리 확인해야 하는 것이 다소 번거로울 수도 있겠지만 영화 예매가 일상화 되어 있는 지금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니다. 데이트 도중 ‘영화나 볼까’ 하고 즉흥적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의 대부분은 멀티플렉스로 향할 테니까. 관객의 수는 극장 운영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정작 극장 측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일지라도 적은 관객 수는 대전아트시네마 입장에서는 고민거리일 법도 하다. 관람료 수입은 차치하더라도 좋은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감상하는 것은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고 상영하는 이들의 주된 관심사일 테니까 말이다. 이런 고민이 모이고 모여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대전아트시네마는 여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은 영화 문화 생태계 보존 및 다양성 영화의 가치를 지향하고, 완성된 작품을 함께 봄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극을 좁히고, 영상 및 영화 문화 향유권을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2013년 7월 창립되었다.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는 시네마테크대전과 대전아트시네마와 그 목표를 공유하고 있으나 시네마테크대전이 대체로 영화 생산자를 중심에 두고, 영화 상영이 목적인 대전아트시네마가 소비자 중심인 반면,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극을 더욱 좁히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시네마테크대전과 대전아트시네마의 그 동안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모든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조직으로 확대 조직함으로써 영화 예술의 일상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셈이다.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은 ‘다중 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이다. 영상제작 및 편집, 배급과 지역에서 영화 문화를 이끌어가는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는 생산자 조합원, 다양한 영화 관람과 조합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갖는 후원자 조합원,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 조합원, 조합에서 진행하는 개별 사업에 자원봉사를 하거나 재능을 기부하는 자원봉사 조합원 등 네 가지 유형의 조합원으로 구성된다. 생산자 조합원을 제외한 조합원은 소비자 조합원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소비자 조합원이 조합에서 진행하고 생산하는 각종 사업과 그 결과물에 단순하게 참여하거나 향유하는 피동적 역할을 넘어서 재능 기부 형태나 자원봉사 형태로 직접적 참여가 가능하도록 명문화 하여 능동적 주체로 이끌어가는 것이 특이점이라 할 만하다.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은 이미 협동조합 영화 <위 캔 두 댓> 상영회를 진행했고, 단편영화 <새벽, 국경에서> 제작에 참여하고 있으며 ‘누벨바그 상영회’와 ‘조합원 상영회’를 준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조합 차원에서 생산된 영화를 상영하거나 각종 상영회를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공동체 영화관인 ‘마을극장’을 건립하고자 한다. 현재는 대전아트시네마와 협력하며 공동 사업을 진행하거나 추진 중이다.


영화 운동을 넘어

 문화운동의 핵심적 역할이 문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그 혜택이 다양한 계층에 전파되어서 다시 문화의 폭과 깊이가 확대되도록 하는 데 있다면 대전아트시네마는 그 중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관 자체 사업에만 몰두하는 것만으로는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미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에서도 대중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고, 가장 접하기 쉬운 장르이기도 하다. 종합 예술이 지닌 강점이 현대 사회의 특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까닭이기도 한데 그래서 영화 예술의 다양성은 특히 더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다양성’은 생태계의 건강성을 확보하는 지지대인 동시에 생태계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촉매이다. 모두가 주류 영화를 향해 뛰어가고 있는 와중에 갓길에 서서 다른 영화를 외치는 것은 어쩌면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 외침을 많은 사람들이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영화 생태계를 유지하는 자양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류’로 대변되는 주류 상업 음악이 아닌 인디음악에 대한 지원이 대폭 줄어들었음에도 꾸준히 그리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들이 그 예이다. 대중음악 생태계와 영화 생태계가 아직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은 그 힘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우리를 인정하는 일이다. ‘다양성’은 곧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시네마테크대전’과 ‘대전아트시네마’,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우리 지역의 영화 운동은 우리에게 ‘다양성’이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지키고 보듬는 것은 비단 영화의 다양성을 살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