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2015.10.16 12:36

멋대로 낭독회

 

멋대로_낭독회_참가신청서.hwp

 

<내 인생의 책과 함께하는 멋대로 낭독회>

 

일시 : 2015년 11월 14일(토) 오후4시

장소 : 계룡도서관

 

※위 참가신청서다운받아 작성 후 참가신청하시면 됩니다.

   - 신청서 접수처 및 이메일 문의 : storybob@hanmail.net 

    - 전화문의 : 019 -9175-3020  (혹시 010이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 019가 맞습니다)

        

※ <멋대로 낭독회> 참여하는 방법

  1. 내 인생에서 중요한 책이나 참가자가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읽고 싶은 부분을 정한다 (분량 5분 내외)

      - 장르는 시 소설 수필 희곡 시나리오 등 자유

  2. 가족끼리 친구끼리 2명 이상이 모여 어떻게 낭독할지 방법을 연구한다

     ( 멋지게 읽어도 좋고, 음악으로 만들어도 좋고, 랩으로 해도, 연극처럼 해도, 동영상을 만들어도..

     듣고 보도 못한 방법이어도 관계가 없습니다. 참신한 발상을 기대합니다)

  3. 참가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할 때, 맛보기 영상이나 사진, 이렇게 낭독 하겠다는 기획서를 같이 첨부한다

    (낭독 형식의 기획의도를 알 수 있는 자료면 됩니다. 형식과 분량은 자유-동영상, 사진, 한글파일 등)

  4. 예심을 통과한 분들은 11월 14일 계룡도서관 무대에서 관객들이 보고 듣는 가운데 낭독한다

     - 2015년 11월 6일까지 신청서 접수 마감입니다

     - 예심통과자는 15팀 내외로 합니다

     - 참가자격은 계룡시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

  5. 낭독회 입상자들에게는 10만원에서 30만원까지 책과 관련한 상품을 받는다.

    * 세부 프로그램은 추후에 공개합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도란도란 2013.11.21 16:37

시장 안에서 명품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가게 - 신중앙시장 수림주단

가장 눈부신 날 입는 한복

 사람들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케잌을 찾는다고 한다. 평소 떨떠름하고 씁쓸했던 삶을 달콤한 행복한 순간만이라도 보상 받고 싶어서라는데.... 행복한 순간에 먹는 케잌이 있다면 가장 눈부신 순간에 입는 옷은 한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필부필부 장삼이사로 평범한 인생을 살던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날! 자신의 결혼식이나 자녀의 결혼식에 등장하는 날은 한복을 입곤 한다. 그렇게 좋은 날, 최고의 날에 날아갈 듯 화려하게 차려입는 의복이 우리 고유의 한복이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중요한 날 입을 한복을 고르려고 나섰다면 중앙시장으로 가보자! 중앙 시장은 예부터 한복 거리로 유명했다는 걸 대전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알고 있다. 대전우체국 뒤 동구청 정문 근처엔 한복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주차가 불편하다는 것도 옛말이다. 중앙시장 복합주차빌딩에 주차를 하면 되는데, 지금은 중앙 시장에 100여 곳의 한복집이 있고, 신중앙시장에만 25곳의 한복집이 모여 있다.

 

 

 

우선 주차를 하고 신중앙 시장으로 들어서자 양 옆에 무슨 무슨 주단과  무슨 무슨 한복이라는 간판과 이불가게들이 즐비하다.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와 자녀 결혼을 앞둔 어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한복거리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수림주단은 B동 47호, 거기서 한복집을 27년째 운영하고 있는 단아한 생활한복 차림의 최소영 사장을 만났다. 중앙 시장엔 오랜 시간을 지켜온 어르신들만 있을 것 같지만, 피부도 곱고 생각했던 것보다 젊은 분이다.

 요즘 한복집을 찾는 분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먼저 물었다.

“예전엔 칠순잔치, 환갑 잔치에도 자녀들이 한복을 맞춰 입었는데 지금은 그런 거 많이 없어졌잖아요? 주로 결혼식에 신랑 신부, 그리고 양쪽 어른들이 오시죠. 요즘엔 사돈 될 분들이 나란히 와서 같이 한복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치마를 똑같이 한다거나 저고리를 같이 해서 입어요.
예전엔 친정 어머니는 분홍, 시어머니는 파랑을 입었잖아요? 근데 이런 모습도 많이 줄었어요 그냥 양쪽 분들이 황금색을 많이 해요. 황금색은 부를 상징하잖아요. 그래서 사돈끼리 황금 치마에 보라색 저고리, 황금 치마에 붉은 저고리를 각각 차려 입으면 얼마나 눈부신데요? 요즘 칠 팔십 퍼센트는 사돈과 같이 와서 하는 일 많더라구요.”

 

 사돈과 나란히 와서 한복을 맞춘다니 의외였다. 아마 요즘엔 자녀가 많지 않아서 그런가, 며느리도 사위도 다 자식처럼 받아들이고 사돈끼리도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지내고 싶은 마음에 예비 사돈이 함께 한복을 맞추러 오는 모양이란다. 달라지는 세태를 한복집에서도 실감 하게 된다. 자녀들과 사돈과 한복 색을 맞춰 입고서 하객들을 맞이하는 결혼식 풍경! 보기 좋을 것 같다.

“신랑 신부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어른들은 며느리나 딸자식 좋은 거 해주라고 하고 본인들은 안 좋은 거 입으신다고 해요. 그러면 제가 말려요. 신부는 좀 저렴한 거 입어도 젊으니까 예뻐요, 하지만 어머니는 주인공이예요. 수십명 수백명 하객 맞아들이고 돋보여야 하잖아요. 근데, 자식한테는 결혼 때 수 천만원도 투자하면서 왜 본인한텐 안 쓰세요? 하고 권해요. 맞는 얘기 아닌가요? 그렇게 하면 다들 만족하시고 예식장에 하객으로 갔다가 그 댁 어머니 한복 예쁘더라고 혼수 하러 저희 한복집 오는 분들도 많아요. 그렇게 예쁘게 해드리면 나중에 고맙다고 잘 했다고들 하시죠.”
 
 어쩌면 이렇게 딱 부러지는 소신을 갖고 있을까? 가장 좋은 날, 딸 고이 키우고, 아들 잘 키운 만큼 누구보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한복을 입어야 하는 건 어머님들이어야 한다는 말에 밑줄 긋고 싶어진다.


시장 한복은 할머니 한복?

 최소영 사장이 이렇게 소신 있게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대를 이어서 손님으로 오시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본인이 수림주단에서 한복을 해 입었는데, 자신의 자녀 결혼시킬 때 와서 한복을 또 하면서 “우리 손주 결혼시킬 때까지도 하세요” 라고 한다는 것! 그러면 최소영 사장은 “아, 네, 그래야죠” 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

 “예전엔 한복 하면, 나이 드신 분들 찾았는데요, 요즘엔 감각이 떨어진다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한복 디자인도 좀 따라가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장도 옛날하고 달라서 시대의 유행 흐름을 빨리 반영해줘야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부산에 최소 2개월에 한 번 씩은 가서 한복의 요즘 흐름을 배우고 와요. 부산은 가장 앞서가는 패션 1번가예요.”
 


 최소영 사장의 말에 의하면 요즘의 한복 추세는 고름이 좁고 짧고, 깃도 달라졌다고 한다. 끝동에도 화려한 문양을 넣고, 자수도 많이 들어간다. 배래도 일자 배래로 예전처럼 배래가 풍성하지 않다. 옛날 사극에 보면 풍성한 소매안에 뭔가 숨겨 갖고 다니기도 하던데, 요즘 배래는 그런 역할은 거의 못한 것 같이 소매가 일자라서 활동이 편하다.

 수림주단은 시장 안에 있지만 인테리어에도 투자를 했다.

 “기왕이면 그냥 취미 생활이 아니라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에 투자를 해서 인테리어를 했는데, 처음엔 주변에서 흉봤어요. 뭘 그런데 돈을 들이냐고...그렇게 6년이 지났는데요, 처음 3년은 그럭저럭 됐고 3년 4년 지나니까 좀 더 괜찮고, 이젠 단골들이 보내주는 고객들은 거의 소화를 할 정도가 됐어요.
 저는 이렇게 말해요. 시장을 찾는 손님이 격이 낮은 게 아니다, 상인이 손님 질을 못 끌어 올린다고. 옷이 이쁘면 좀 비싸도 사게 돼 있다고 해요. 설명을 잘 하고, 색을 잘 배합하고 그 손님 체형에 맞에 예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면 잘 된다고...재래 시장이라고 손님이 적게 쓸 수 밖에 없는 게 아니니까 투자를 해보라고 주변에 말해요”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시장에서 왜 투자를 하냐고 반문한다고 한다. 그런 마음이면 백화점이나 더 큰 데 나가서 가게를 하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시장 밖에 나가면 임대료도 비싸고, 그러면 그 돈을 고객한테 부담줘야 하는데 저렴하게 하고, 시장을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시장도 그렇게 감각이 떨어지거나 고리타분하고 싼 물건만 파는 곳은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지 않나요? 시장도 많이 변했잖아요“”

 


착하고 아름다운 거래

 최신 유행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만, 수림주단도 시장의 넉넉한 인심은 잃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최소영 사장은 가게 안에 밤, 고구마 같은 군것질 거리들을 갖다 놓고 오가는 손님들께 권하고, 그리고, 최대한 고객의 마음을 맞춰드리려 노력한다. 비싼 돈 주고 한복을 했는데 마음을 맞춰드리고 요구를 들어드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만약 고객이 한복을 맞추고 찾으러 올 때 밤늦게 밖에 시간이 없다는 고객이 있으면 밤 10시까지라도 기다려준다. 그리고 택배로 보내야하는 거리면 꼭 전화해서 옷은 잘 맞는지 색은 맘에 드는지 확인한다.
 
 “한 번은 충북 영동에 사는 분이 한복을 맞추러 오셔서 나중에 바느질 된 옷을 택배로 보내드렸는데요, 옷 잘 맞으세요? 전화했더니 “한복이 좀 이상해요. 저고리도 뒤로 넘어가고, 허리도 뜨고 그러네요”하는 거예요. 그래서 괜찮으면 밤에 찾아뵈어도 되냐고 묻고, 직접 영동으로 달려갔는데, 그분은 저한테 대접하려고 밥을 다 지어서 차려 놓으셨더라구요. 근데 한복을 입혀봤는데요 정말, 좀 안 어울리시더라구요. 몸이 좀 뚱뚱했는데, 한복이 좀 들뜨는 거예요. 그래서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다시 만들어드렸더니 과연 예쁘게 맞았어요. 저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분은 너무나 고마워하면서 집에서 농사 지은 쌀과 무 같은 농산물을 차에 실어주시는 거예요. 지금까지도 명절 때나 연말이면 가게 잘 되세요? 전화가 와요. 그리고 이 근처에 오실 땐 뭘 사들고 오세요. 농사 지은것도 때때로 보내주시고...사실 제가 고마운 건데, 너무나 고마워 하시더라구요.“

 사실, 한복을 그냥 드린 것도 아니고 대가를 받고 지어드렸는데도 너무 고맙다며 떡을 보내고, 이것 저것 가져오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시장의 인심이 그래도 고객과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그냥 거래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정이 통하는 곳이 시장이 아니던가?

 


 

아름다운 한복을 입으려면?

 누구보다 예쁘게 한복을 입게 해주는 역할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최소영 사장은 손님과 어떻게 상의를 할까 궁금했다.

 “손님이 처음 오시면 어떤 용도로 입을 건가를 먼저 여쭤봐요. 혼주로 입을 건지, 하객으로 입을 건지, 그리고 그 다음엔 피부톤과 목 길이, 키, 같은 걸 고려해서 선택을 권해드립니다. 목이 너무 짧거나 가슴이 튀어나온 경우는 아무래도 한복이 덜 어울리죠. 하지만 한복을 체형의 단점을 잘 가려주는 의상이라 색을 잘 맞춰 드리면 예쁘게 입을 수 있어요. 일단 수림주단에서 만들어 입고 예뻤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니까 저는 최선을 다해서 상담을 해드려요. 어떤 집은 그냥 팔고 돈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저는 맘에 안 든다고 그러면 다시 손질해드려요. 근데 최대한 잘 입게 해드리고 애써서 만들었는데 변수가 생길 때도 있어요. 막상 입혀놓으면 제가 봐도 잘 안 어울린다고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저고리 하나 더 만들어 드려요.“

 항상 예쁘게 만들려고 고민을 한다는 최소영 사장은 평소에 손님이 없을 때는 한복 색을 배합해보고 고름도 이색 저색으로 달아보고 고민을 한다. 색감을 좀 타고나기도 했지만 계속 연구를 하는 편이란다.

 


 TV에서 사극을 봐도 그렇고 한복도 유행을 많이 타는 것 같던데 요즘 가장 최신 유행 한복은 어떤 건가도 궁금했다.

“요즘 한복은 디테일이 중요하죠. 저고리에도 화려한 수가 놓이고, 색이 투톤이상 많이 들어간 걸 선호해요. 그렇게 재단하면 어깨도 좁아 보이고 결점도 가려지거든요. 그리고 저고리 고름도 가늘고 짧아진데다 저희집은 고름이 저고리나 치마하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으로 하는 게 특징이예요. 깃이나 배래, 끝동에도 여러 가지 색을 더 넣기 때문에, 바느질이 더 까다로워졌는데, 그래도 가장 좋은 날 입는 거니까 좀 화려해도 좋잖아요.”

그런데 예쁘게 만들어 놓아도 입는 사람이 잘 입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걸 최사장은 강조한다

“한복은 입는 몸가짐도 중요해요. 머리를 풀어헤치거나 부스스한 채 한복을 입으면 맵시가 살지 않잖아요. 머리도 단정하게 올리고, 화장도 좀 곱게 하고, 속옷도 제대로 갖춰입고, 버선이랑 꽃신이랑 다 갖춰 입어야 하죠. 그리고 한복입는 방법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예뻐요. 그래서 저는 아무리 멀어도 한복은 직접 배달하고 직접 입혀드려요. 입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드리는 거죠. 때로는 서울까지도 한복 갖다드리러 가거든요?”

 철저하게 고객 중심인 최소영 사장, 그는 소품 같은 건 원하면 아끼지 않고 더 주면서 깍쟁이처럼 굴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엔 생활 한복도 활동하기 편해졌는데, 생활 한복에 대한 최사장의 의견은 어떨까?

 “요즘엔 대여한복을 선호하기도 해서, 저희 집도 하고 있는데요, 대여한복은 옷이 아무리 예뻐도 자신의 몸에 맞춰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잘 맞기가 힘들어요. 사실 옛날엔 혼자 사는 여자는 시집가는 여자 한복을 바느질 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의미를 갖고 정성껏 곱게 만들던 게 한복인데, 요즘엔 누가 입었는지도 모르는 한복을 빌려 입어요. 시집 가는 새색시가 이혼한 친구 꺼지만 잠깐 입었던 거니까 그냥 제가 입을래요 하는걸 보면 가슴이 철렁해요”

 한복은 마음으로 소중하게 입어야 한다는 게 최사장의 의견이다. 요즘엔 한복이 불필요하다고 하고, 또 불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한복을 입지 않는 건 고유의 문화가 없어지는 것, 그래서 최사장은 한복을 입는 날을 정했으면 좋겠다며 한복이 정말 아름다운 옷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얼이 담긴 한복

 명절이 가까워지면 옛날 어머니들은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한땀한땀 공을 들여서 식구들의 한복을 새로 지으셨다. 집안일 빈틈없이 하시면서도 바느질 솜씨도 장인의 것이었던 당시 어머니들은 야무진 손끝으로 밤새워 식구들의 한복을 지어내놓으셨다. 그래서 명절 아침이면 식구들 몸에서 눈부시게 빛이 났던 한복!
 지금은 집에서 옷을 짓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입는 것 조차도 거추장스럽다며 벗어버리는 시대다. 그래도 아주 중요한 행사에 정갈하게 한복을 챙겨 입은 모습은 무척 고와보인다.
 한복은 너무 강렬하게 튀거나 하지 않고 가을 햇살처럼 은은한 빛깔이 매력이라고 한다. 조선 백자나 고려 청자 같은 우리의 전통 빛깔! 쪽빛 가을 하늘이나, 초가지붕에서 말라가던 빨간 고추 빛깔, 그리고 가을 들판의 쑥부쟁이와 구절초, 여름날의 봉숭아와 봄날의 복사꽃을 닮은 빛깔로 지어진 옷들이고, 정숙한 절제의 미가 들어 있는 옷이며, 진선미의 아름다움이 배어 들어 있는 의상이라고 한다. 평상시엔 거추장 스럽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우리 얼과 전통과 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옷이기 때문에, 명절 만이라도 살아 있는 한복을 입어본다면 그동안 거친 삶에서 흐트러졌던 매무새며 살아가는 자세가 저절로 바로잡아 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도란도란 2013.11.05 18:21

[대전원도심 특별기획] 대전 공연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끌다 - 가톨릭문화회관

1970년대 대전의 연극판

 가톨릭문화회관이 개관할 즈음의 대전연극의 상황을 잠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톨릭문화회관의 등장이 대전연극의 대흥동시대를 여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탄생한 극단의 일부가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극단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반면 대학당국의 지원을 받는 대학극의 등장으로 대전연극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72년도부터 시작된 대학 연극동아리를 살펴보면 충남대 <시나브로극회> 숭전대<청림극회> 목원대 <목산극회> 대전실업전문대 <동아극회> 대전여자초급대학 <동아리극회> 대전공업전문대학 <현암극회> 등이 생겨났다. 이뿐만 아니라 각 대학의 문과대학에서도 학술적인 차원에서 각 학과 성격에 따라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국문과에서는 우리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마당놀이를 중심으로 한 전통극을 계승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영문과에서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독문과에서는 독일작가의 작품을 올리는 식으로 대학에서의 연극활동이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불어 닥친 대학가의 축제는 대학극회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이로 인해 대학극회의 공연은 대학내 에서만 실시된 것이 아니라 시내공연장으로까지 진출했던 관계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대학극의 부활은 전공교수들의 학문적 지원과 대학당국으로부터의 재정적 지원 그리고 기본적인 관객동원 등으로 인해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이 같은 대학극의 중흥은 훗날 대전연극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것은 대학극 동아리 출신들이 대전연극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대전광역시연합회 50년사 발췌 인용>


가톨릭문화회관의 중흥

 대전의 소극장운동은 대흥동에서 시작되었다. 1971년 300석 규모의 가톨릭문화회관 개관은 대전연극의 대흥동시대를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극장의 등장은 대학 강당과 아카데미극장나 대전극장 같은 영화관에서 공연을 하던 연극인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았다. 연극인들 뿐만 아니라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공간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의미를 갖게됐다. 가톨릭문화회관을 중심으로 한 공연활동은 소극장들이 등장할 때 까지 연극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가톨릭문화회관에서는 지역극단들의 작품이 올려지기도 했지만 서울에서 히트한 작품들의 전국순회 공연시 빠지지 않고 올려졌다. 대전하면 가톨릭문화회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80년대 가톨릭문화회관에서 다양한 공연과 전시가 이루어졌을 때의 풍경을 돌아보자


 1982년 가을,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가톨릭문화회관에 몰려들었다. 지역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돌샘문학회의 문학의 밤이 열리는 날이다. 돌샘문학회는 1960년대 초반 창립된 문학동아리로 대전지역 고등학교 문예부에서 활동하던 학생들이 모이던 학교연합 단체다. 이 문학회는 대전실업전문대학 교수이자 한국연극협회 충남지부 초대 지부장을 맡은 김성수씨가 만들었다. 
 당시 문학적 열정을 가진 학생들은 문학의 밤 행사를 통해 대전지역 고등학교 문예부간에 친밀한 교류를 가졌다. 지금이야 작가를 꿈꾸는 학교 문예부가 유명무실한 형편이지만 1980년대 만 해도 예비 문학인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돌샘 머들령 동맥 파랑돌문학회가 그중 활발하게 활동한 단체들이다. . 여기에 참여한 학생들은 서로를 동인이라 부르며 습작을 했다. 대학 국문과에 다니던 선배들이 번갈아 나오며 후배들의 작품을 놓고 촌평을 했다. 가끔은 등단한 선배들이 문학사상이나 현대문학 같은 잡지를 옆구리에 끼고 와 눈이 번쩍 뜨이는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기도 했다. 문학회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 가운데 문학적 열정을 가지고 꾸준하게 작품을 쓴 경우도 있었지만, 문학소녀와 친분을 가지려고 나온 녀석들도 있었다.

 사춘기 시절, 여고생과 야릇한 감정을 교류하던 친구들도 가을이 되면 시나 산문을 한편은 썼다. 그 이유는 문학의 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문학의 밤은 개인 창작물을 발표하는 시간인데, 이 날은 다른 학교 문예부 친구들이 대부분 모이는 거의 유일한 자리다. 문학의 밤은 주로 가톨릭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이곳에서 행사를 치렀다. 10월과 11월에는 각급 학교의 문예부 학생들이 매주 가톨릭문화회관을 찾을 정도였다. 행사는 단출했다. 무대에 촛불을 켜놓고 한명씩 나와 시를 낭송하거나 수필을 낭독했다. 객석은 가득 찼고 일부는 자리가 없어 한 시간 내내 서서 듣기도 했다.

 행사가 끝나면 꽃다발을 전하는 세레모니가 이어졌는데, 장난기 있는 녀석들이 배추를 주며 축하하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촛불이 꺼진 후 대학생 선배와 중년의 선배작가들이 우리를 이끌고 중국집으로 향했다. 인근의 중국집 <인화영>은 당시 뒤풀이 장소로 자주 애용되었다. 식사는 주로 자장면이나 볶음밥이다. 그 자리에서 선배들은 행사에 대해 격려를 하고 아쉬운 점을 말하기도 했다. 당시 문학지망생들은 등단작가를 곁에 놓고 귀동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문인을 꿈꾸었던 고등학생들에게 가톨릭문화회관은 지울 수 없는 추억의 공간이다.

 또한 가톨릭문화회관은 서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연극작품들의 순회무대로도 적격이었다. 지난 봄 연극배우 강태기의 부음소식을 알리는 기사의 타이틀은 에쿠우스로 빛난 연극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에쿠우스라는 작품이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은 1975년 9월 서울에 있는 극단 실험극장의 소극장 개막 공연에서다. 당시 개관작품이 피터쉐퍼의 작품인 <에쿠우스>였다, 당시 강태기는 예민한 감성을 지닌 알런역을 맡아 관객에게 지울 수 없는 이미지를 남겼다. 이후 같은 역에 송승환(1980년), 최재성(1985년), 최민식(1990), 조재현(1991) 등이 거쳐갔다. 우리나라 대표 남자배우들이 거쳐젼 배역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는데, 강태기가 알런역을 맡았던 시기에 가톨릭문회회관에서도 순회공연이 이뤄졌다.

 국내 최초 관객 1만 명 돌파, 최초 6개월 연속 공연, 최초 예매제도 도입 등의 기록을 세우며 소극장 운동의 시발점이 된 연극 '에쿠우스' 의 진면목을 대전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던 것도 가톡릭문화회관이라는 공연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2010년대 들어서도 재해석되면서 여전히 작품성과 실험성있는 고전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가톨릭문화회관에 올린 작품 가운데 여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빨간피터의 고백이다.
모노드라마 연기의 대가로 칭송받는 추송웅씨가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를 각색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을 기획해 제작·연출·연기·장치까지 1인5역을 맡았다. 이 작품 역시 대히트를 기록했다. 8년간 500회가 넘게 무대에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그 인기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1981년 초연된 이래 지금까지 공연이 지속되고 있는 <품바>도 대전관객
의마음을 사로잡았다. 각설이의 노래를 통해 서민들의 애환을 다룬 이 작품은 여러명의
배우를 바꿔가며 지금도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유명한 공연이나 문학의 밤 같은 행사가 열리는 날 저녁이면 가톨릭문화회관 주변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공연의 여운이 아쉬운 사람들은 건물 바로 옆 지하 가배다방이나
브라암스 같은 찻집에서 정취를 달랬다.


가톨릭문화회관의 새로운 변신

 한때 대전문화예술의 1번지로 각광을 받던 가톨릭문화회관도 세월의 흐름을 견뎌내기 쉽지 않았다. 둔산에 신도시가 생겨나면서 원도심은 서서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또한 다양한 소극장이 들어서면서 그 위세가 점점 기울었다.
 가톨릭문화회관은 잠시 공백기를 가진 뒤 지난 2008년 공연기획사 아신아트컴퍼니에 의해 연극전용소극장으로 재개관해 꾸준하게 작품이 올려지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운치가 있어 좋다는 관객도 있지만 영화관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좁은 객석과 낮은 시야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신아트컴퍼니 이인복 대표는 객석 기부제를 통해 모은 기금으로 역사가 서린 가톨릭문화회관을 '명품 극장'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했다.
 
올 1월부터 시작된 공사는 좁고 시야가 불편했던 좌석을 넓은 계단식 좌석으로 리모델링 하고, 낡은 벽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페인트칠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객석 기부는 대전MBC, 천주교대전교구, KT&G상상유니브 등 기업과 연극배우 이종국씨,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제작한 연우무대 유인수 대표, 연극 '옥탑방고양이'를 제작한 악어컴퍼니 조행덕 대표 등이 동참했다.

이 대표는 "개관한 뒤에도 객석 기부를 계속 받을 예정"이라며 "250석이 대전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분들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져 원도심 문화의 활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신, 가톨릭문화회관의 추억을 넘는다.

지난 10월, 취재차 찾아간 극장에서 연극 한편을 보았다. 객석이 꽉 들어차진 않았지만 데이트 중인 연인들과 젊은이들, 선생님과 함께 단체관람 온 학생들 속에 섞여 유쾌하게 웃었던 로맨틱 코미디 ‘작업의 정석 2탄<선수의 탄생>’ 순수하지만 소심한 청년이 작업의 고수가 되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이 연극은  대흥동 이안과 병원 옆에 새롭게 문을 연 소극장, 아신극장 1관의 개관기념작이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방금 전까지 웃음과 열기로 가득했던 소극장에서 극장의 주인장이자 아신아트컴퍼니 대표인 이인복씨와 마주 앉았다. 그가 건넨 명함엔 ‘대전의 대학로를 꿈꾸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예전엔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 보던 게 영화였죠. 지금처럼 영화가 일상의 취미로 자리잡게 된 건 멀티플렉스관이 생기면서 부터였어요. 연극에도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서울의 대학로처럼, 1년 365일, 공연이 끊이지 않아야 관객이 늘고 새로운 관객이 개발 된다는 게 이대표의 생각이다. 아신극장은 바로 일년 내내 공연하는 극장, 그리고 최소 3개월에서 6개월 이상의 장기공연을 올리기 위해 만들었다. 이미 5년 전부터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카톨릭 문화회관은 단기공연용, 아신극장은 장기공연용으로 분리해 운영하려는 계획인 것이다. 두 개의 소극장을 개관하면서 겪은 재미난(?) 시행착오 하나. 

“보통 소극장 의자는 딱딱하고 등받이도 없잖아요. 혹시 그것이 관객개발을 막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카톨릭 문화회관 소극장 개관당시 과감하게 비용을 투자해 영화관처럼 푹신한 등받이 의자로 교체해 봤어요.”
 
과연 그의 예측과 바람대로 관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을까?

“극장은 어두컴컴하고 의자는 푹신하니... 조금만 지루한 장면이 나오면 바로 주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아신극장 개관 때는 절충안을 내놨죠. 등받이가 있되 맘 놓고(?) 기대어 코를 골긴 어려운 디자인으로요. 불편하지 않으면서 집중력을 향상시켜주는 의자로 수험생 부모님들이 좋아하시는 의자래요.(웃음)”

마냥 편하고 쉬운 것보다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얻은 것이 귀하게 생각되는 이치라는 것. 그는 극장 밖으로 길게 줄을 늘어서는 것 또한, 효과적인 마케팅 홍보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의자 하나까지 관객개발(그는 이 표현을 자주 썼다) 과 연관시켜 방법을 모색하는
이 사람은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일을 하게 된 걸까?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연극을 했어요. 전공도 연극연출이었고요. 그런데 작품 연출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그 외에 신경 쓸 일이 너무나 많은 거에요. 나는 작품연출에만 집중하고 다른 일을 해줄 기획자가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결국 그 일을 제가 하게 된 거에요.”

이인복 대표는 기획자의 업무가 단순히 티켓판매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planner), 제작하고(producer) 홍보(promoter) 할 수 있는 3s 를 잘 갖춰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하는 일과 가치를 설명했다. 이미 대흥동에 두 개의 소극장을 열었음에도 내년쯤 이곳 언저리에 코미디 전용극장인 아신극장2 를 개관하는게 목표란다. 대흥동은 그가 말한 3s
를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곳인지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달랑 연극 한편 보려고 대흥동에 나오지는 않아요.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다른
놀이들이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어야 하죠. 그런 면에서 원도심 활성화 사업이 저희들에게도 분명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덜컥 겁도 나죠. 원도심 활성화가 이 일대 건물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거든요. 그러면 가난한 예술가들은 여기 있고 싶어도 떠날 수 밖에 없어요. “

我信, 아신의 뜻을 물었다. 그는 나를 믿는다는 말로 연극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연극이 사십줄을 넘으면서 어느새 이십여년 세월, 잠시 다른 일을 한 적이 있기도 했지만 연극에 대한 애정만큼은 식지 않았다. 무대를 비우지 않는 연극을 하고 싶은 남자, 그는 자신을 믿는다는 말로 대전연극의 미래를 밝히고 있었다.

대전에는 총 9곳의 소극장이 있고 그 중 5곳은 여기, 대흥동에 위치해 있다. 터전을 잃으면 또 다른 곳에 둥지를 틀며 떠도는 것이 광대의 운명이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문화와 예술과 그리고 예술가들이 단지 건물 임대료 때문에 쫒겨나듯 떠돌아야 한다면 많이 슬픈 일이다. 부디, 굳건히, 이 터를 떠나지 않고 떼밀리지 않고 신명나는 한 판 연극이 계속되길 바란다.

가톨릭문화회관의 극장과 근처 있는 아신극장의 개관으로 두 개의 극장을 운영하게 된 아신아트컴퍼니, 과거의 추억은 살리고 현재의 관객을 모으려는 노력이 어떤 결과로 나올지 궁금하다.

 

 

신고
TOTAL 22,435 TODAY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