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오독 2013.11.26 14:51

몸의 언어, 마임(mime)을 말하다 - 현대마임연구소 '제스튀스’

아, 여기구나, 손을 들어 사무실 간판을 가리켰다. 그 손짓은 방향을 뜻한다. 계단을 오르다가 발걸음을 멈칫했다. 발걸음을 멈춘다는 것은 앞에 무엇이 있거나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몸의 반응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은 마임이다. 작은 체구에 또렷한 눈빛, 느리지만 명확한 말투로 최희 대표는 말했다.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모두 마임배우라고.     

 

 

무작정 뛰어들어 한길로만 직진

[최희 제스튀스 대표]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최희 대표. 음악과 함께 예술적 감성에 빠져 인간이 갖고 있는 드라마적 요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최 대표는 학창시절 무작정 연극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0년, 오로지 연극에만 매달려 살았다. 보수적이고 엄격했던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 쓰고 연극배우로, 극작가로, 연출가로 활동했다. 그렇게 연극은 최 대표에게 삶의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했다. 

"그 때는 멋모르고 연극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몸의 움직임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바로 마임의 본고장인 프랑스로 떠나게 된 거죠."

'몸의 언어'를 배우기 위한 최 대표의 갈망은 대단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신체연극, 마임은 생소한 장르였기 때문에 유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서른이 넘은 나이에 또 다른 도전에 나섰던 그 때를 떠올리며 최 대표는 '무모하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7년 넘게 프랑스에서 마임에 빠져 살았다. 인터뷰 도중 결혼을 했냐는 질문에 최 대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로 답을 주었다.
"그것(마임) 때문에 못했죠." 
맞다. 최 대표는 그렇게 마임과 결혼한 셈.

 

커피 그리고 초콜릿
프랑스 신체연극학교와 프로전문배우학교에서 마임을 배우던 유학시절 2년 동안 최희 대표는 인생에서 가장 달콤 쌉싸름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함께 마임을 공부하던 친구들은 대부분이 이십대였고, 최 대표는 서른을 넘긴 나이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먼 타국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최 대표는 젊은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시간을 아껴 연습에 몰두해야만 했다.

그래도 연습시간은 늘 부족했다. 낮에는 종일 수업을 들어야했고, 저녁에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시간도, 음식을 먹고 난 다음 설거지를 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유학초기에는 사립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생활 또한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도 없었다. 덕분에 최 대표는 말 그대로 쌉싸름한 커피와 달콤한 초콜릿을 주식으로 생활했다.

“다행히 커피는 늘 나를 깨워주는 음료였고, 초콜릿은 저에게 에너지를 가득 채워주는 음식이었어요. 커피와 초콜릿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한 끼 식사였어요.”


우리는 모두 마임배우(?)

‘마임’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미모스(mimos)에서 유래됐다. 한마디로 '흉내'를 뜻한다. 예전에는 촌극이나 잡극 등을 의미했지만, 오늘날에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몸짓과 표정만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팬터마임은 마임의 한 종류일 뿐이다.

최희 대표가 생각하는 마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상상력이다. 무한한 상상력을 맘껏 표현해낼 수 있는 다양함과 자유로움이 최 대표가 말하는 ‘마임’ 속에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말’이라는 언어라면,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몸’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표현수단을 장착하고 있었다. 또한 살아가면서 시시때때로 그것을 본능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 조금 더 전문적인 방법과 상상력을 더해 몸의 언어를 표현하게 된 것이 마임이라는 것이다.

"몸의 표현력은 굉장해요. 연극을 할 때 대사와 지문이 있잖아요. 주인공의 감정이나 심리적인 부분을 표현할 때는 열 줄의 대사보다 한 줄의 지문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어요. 손에 힘을 주거나 어깨를 늘어뜨리는 행동만으로도 관객은 배우의 마음을 함께 느끼게 되죠."

마임은 어렵지 않다. 화가 났을 때 나도 모르게 일그러지는 얼굴 표정, 애인을 향한 수줍은 윙크, 값진 승리를 얻은 뒤 터져 나오는 만세와 환호성 모두 마임에 속한다. 우리는 매순간 자신의 감정을 말보다 빠른 몸으로 먼저 표현한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이라는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최 대표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마임배우가 아닐까? 

 

 

 

현대마임연구소 ‘제스튀스’ 

“제스튀스는 불어로 제스처들이라는 뜻입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제스튀스라는 작은 회사를 하나 만들어서 신체연극, 마임 활동을 했어요. 그 때 사용했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거죠.”
사람들 관계에서 한 사람이 취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의 라틴어로 태도, 몸짓을 말하는 제스튀스는 제스처들(Gestus)이라는 복수의 의미를 갖는 불어이다. 20세기 시인이자 연극연출가인 앙토넹 아르토가 잔혹연극의 관계에서 제스처와 움직임이 주는 테마를 강조해서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인 독일 연출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말하는 ‘게스투스(Gestus)는 소외연극 개념에 중요한 초점으로 비언어적 의사소통 수단인 신체언어를 바탕으로 하였다. 그의 서사극의 게스투스 라는 기호와 다양한 신체 표현 방법에 따른 접근 가능성들은 현재까지 공연되고 연구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르토와 브레히트가 말하는 저마다 제스처의 의미는 다르지만 사회 구조 속에서 상징화되는 영역이 되고 하나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연극적 표현 언어로서 몸의 단어이며 표지가 된다. 가장 기초적인 신체의 한 부분 혹은 전체를 움직여서 생각과 시각적 기능 등을 표현하며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신체의 드라마적인 움직임은 소통의 언어를 쏟아 놓는 것이다.

 


현대마임연구소 제스튀스가 대전에 둥지를 튼 것은 지난 2009년. 마임이란 장르도 낯설었지만 현대마임연구소라니! 지역 최초의 마임 창작공간의 등장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제스튀스의 가장 큰 목표은 마임 창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관객과 호흡하는 것이다. 최희 대표는 공연을 위해 작품을 쓰고, 연출을 담당하고, 배우로 직접 무대에도 선다. 물론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은 제스튀스 회원들과 함께 이루어진다. 연극배우, 무용가, 일반 직장인, 학생 등 마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공연에도 참가할 수 있다. 자격조건이란 없다. 그저 마임을 사랑하고 마임을 알리는 데 함께 할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환영이다. 제스튀스는 마임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학원이 아니다보니 홍보는 하지 않는다. 다만 마임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이들이 곧 회원이 되는 것이다.

제스튀스가 공연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워크숍이다. 제스튀스는 마임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회원들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마임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마임을 통해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의 일부다. 워크숍은 몸의 수축과 이완, 신체 움직임과 격리 움직임, 연극적 표현방식의 차이 등 몸을 통한 표현을 배우고 체험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전문적인 방법과 기술을 익히는 자리라기보다는 마임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내면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던 자신만의 신체언어를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하나의 몸짓, 마임공동체  

제스튀스 회원들은 일 년에 2회 정도 마임공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말을 건넨다. 봄에는 기획공연, 가을에는 정기공연을 만날 수 있다. 일에 있어서는 깐깐하고 섬세한 최희 대표가 이끄는 공연팀은 전문연기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만큼은 프로 못지않다. 그 덕분에 다른 지역에서 초청 공연을 부탁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욕심 같아서는 더 많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싶지만, 아직은 여력이 없다. 제스튀스는 영리를 추구하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운영에 대한 부담이 늘 욕심을 한 발짝 뒤로 물러나게 한다. 하지만 마음만은 부자다. 마임에 대한 같은 마음을 모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최 대표에게는 큰 힘이 된다.

 

그 첫 번째 결과물로 최근 마임공동체 제스튀스 협동조합이 탄생했다. 비록 적은 수지만 오래도록 마임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함께 해온 사람들이 모여 또 하나의 뜨거운 몸짓을 준비하고 있다. 그저 호기심으로 시작된 마임과의 만남이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들과 함께 크고 작은 창작공연을 준비해 시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활동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힘을 모으는 시간이었고, 이제부터는 그 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마임공동체 제스튀스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야외공연도 하고, 야외워크숍도 개최해서 앞으로 시민들과 만나는 시간을 자주 가질 계획입니다.”

ICA는 세계 각국의 협동조합들이 모인 국제기구다. 이 기구에서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해, 그들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고자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사체이다” 이러한 협동조합의 정의를 가능케 한 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 상호자조에 대한 신뢰 그리고 경제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에 기초하고 있다고 협동조합 전문가들은 말한다.
제스튀스가 협동조합으로 새롭게 조직의 성격을 바꾼 것은 더 높이 더 넓은 보폭을 딛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몸짓을 나누기 위해서.


청소년들의 끼와 재능을 발견하는 문화놀이터, 대전청소년마임페스티벌

한여름 더위가 물러나고 가을빛이 조금씩 거리를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대전 원도심 일대에서는 청소년마임페스티벌이 펼쳐진다. 각 지역 마임 공연팀들의 릴레이 공연을 볼 수 있는 소규모 문화축제로 지난 10월 11일에는 ‘마임! 마음에 빠지다’라는 주제로 제5회 대전청소년마임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최희 대표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다. 오로지 성적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교육환경 속에서 열다섯, 열여섯 나이의 청소년들이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었다. 최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임을 통해 마음을 열어주는 일. 하루 정도는 밖으로 나와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자신의 끼와 재능을 맘껏 발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기획하게 된 것이 벌써 5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전청소년마임축제다. 그는 예술감독이라는 직책으로 모든 행사를 총괄하고 있다.
  
“청소년마임페스티벌을 힐링으로 표현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는 힐링 뿐만 아니라 몸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또는 몸의 언어를 공연을 통해 관람하면서 청소년들이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중에는 마임을 하고 싶은 친구도 있고, 마임을 하니까 음악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친구도 있지 않을까요?”

적은 인력과 자본으로 축제를 운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해마다 관객들이 늘고 있고, 참여하는 공연팀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공연에 몰입해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으로 현장을 뜨겁게 달구는 청소년들과 시민들의 모습은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 축제를 준비한 이들에게는 벅찬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최 대표는 소박하게라도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대전청소년마임페스티벌과 같은 지역 문화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대전을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올해는 15팀 정도가 원도심 우리들 공원 야외무대에 올랐다. 각 지역의 공연팀을 한 곳으로 불러 모으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기에, 모든 공연을 하루 만에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는 작업이지만 괜찮다. 지금은 정독보다는 다독으로 마임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을 키우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 최 대표의 생각이다.  

  

대전의 ‘문화혁명'을 이끌다 

제스튀스는 오는 12월 정기공연을 준비 중에 있다. 우리 일상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엮은 마임 공연을 원도심에서 선보이게 된다. 제스튀스의 정예군단이 총출동해 또 한 차례의 폭풍을 함께 헤쳐 나갈 계획이다. 11월 중순에는 초청을 받아 춘천으로 원정공연을 떠난다. 음악가들과 함께 하는 실험적인 작품에 참여하게 될 예정이다. 최희 대표는 마음이 바쁘다.

올해 마지막 공연들을 성공적으로 잘 끝마치기 위해 챙기고 준비해야할 것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나의 마임 공연으로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일은 곧 최 대표가 바라는 작지만 큰 힘을 발휘하는 문화예술운동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3대 마임축제 중 하나인 춘천마임축제가 개최되고 있는 춘천에서는 국내 마임 발전을 이끌어갈 다음 주자로 대전을 주목하고 있다. 무언의 마임이 주는 울림이 한 사람의 훌륭한 마임이스트를 탄생시켰듯, 최 대표와 제스튀스의 활동이 한 도시의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소리 없는 문화혁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희의 마임생각  
불과 몇 해 전 신체연극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연을 했을 무렵 낯설어했다 심리적, 감정의 내면을 화술로 꽃피웠던 사실주의 연극의 포커스가 근원적인 몸의 시대를 구축하면서 신체 움직임으로 드라마를 전달하는 뉴 연극의 시대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연극의 경계선 행보가 달라진 작품들이 국내로 자주 초청되면서 현대연극의 흐름을 만나게 되고 큰 극단들이 해외로 나가서 다양한 공동 워크숍 등으로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의 연극들을 만나는 추세이다 보니 시대의 예술융합이라는 단어는 극히 가깝게 실현되고 일상화되는 기준이 되었다.

 

대중의 경향에 맞추어지고 있는 뮤지컬의 경우마저 몸의 표현 형식과 상황음악의 시뮬레이션이 예전과는 달리 현실을 강조하는 부분들을 첨가한다. 연극행위의 다양한 양식들은 변화의 과정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옛것에 대한 지속을 고집하면서도 문화예술운동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던 20세기 초 특히 다다이즘의 출현으로 현대예술개념이 정착화될 무렵 프랑스 연출가 쟈크코포가 신체언어를 강조하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형태와 배우훈련을 태동시키므로 신체연극이 현대마임의 시초가 되었다면, 같은 시기 미국의 이사도라 던컨은 슈즈를 벗어 던진 진보적 신운동인 독창적 움직임 양식으로 현재까지 위대한 안무가들의 출현과 현대 춤의 방향성을 지배하고 있다 .

뉴 연극의 시대가 자리하는 것은 곧 예술적 창조의 시간을 예고한다. 힘과 마음의 에너지를 모아 줘야 하는 이유는 시대의 예술 사조에 함께하는 진정성의 예술인 때문일 것이다. 그 현실적 배경에서 커다란 문화적 통찰의 시각을 가지고 이끌어야 할 지역 문화재단의 역할도 존재하듯이. 일상적으로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오늘 오후 치과에 갈 일이 있다면 귓속으로 들리는 어지러운 드릴 소리와 흰 가운 옆에 치료기구들만 보는 것보다는 그림이 있는 액자 사이로 음악이 있는 공간과 치과의사 역이 잘 어울리는 문화적 배우를 만난다면 앓던 이를 빼내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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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오독 2013.11.21 15:29

블란서 영화를 보러갔다 - 대전 프랑스문화원 대흥동 분원


프랑스 문화원이 있는 대흥동 풍경

 가을은 이 세상 어딜 가나 다 아름답다고 하지만, 대전 대흥동의 가을은 언제 봐도 특별한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특히 대전고등학교 맞은편 골목길부터 선화동을 지나며 역전통을 가로지르는 은행 나무길은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풍경 좋은 길이다. 그 은행 나무들이 10월말부터 11월 초순 혹은 중순까지 노랗게 물들어 노란 카펫을 만들어 놓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길을 걸으며 자연이 빚어놓은 빛깔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했던가?

 가을마다 길가에 떨어지는 은행잎보다 더 많은 사연들이 그 길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대전이라는 도시가 아무리 많이 변했어도 해마다 가을을 노랗게 물들이는 노란 그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바로 그 은행나무 길가 한 쪽에 대전 프랑스문화원 대흥동 분원이 자리 잡았다. 길의 풍경과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가.

 80년대 외국 문화를 접하기 쉽지 않을 때 몇 몇 친구들은 불란서 영화를 보러 프랑스 문화원에 가기도 했었다. <쉘부르의 우산> <금지된 장난> 장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이브 몽땅의 그 유명한 “고엽”이 처음 소개된 영화 <밤의 문> 그리고 배우 장 뽈 벨몽도가 나온 것 같은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영화 등등을 보았다고 했다.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수월하지 않던 시절이라 프랑스까지는 못 가더라도 프랑스 문화와 예술을 기웃거리며 어떤 동경 같은 마음을 품고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바로 그곳이 지금도 대흥동에 자리를 하고 있다. 지금의 대전 프랑스 문화원 대흥동 분원은 80년대에 시민회관 근처에있었고, 대학 안에 자리한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의 대흥동 은행나무길로 이사 온 지는 4년 되었다.

 대전 프랑스 문화원 본원은 용문동에 있고 대흥동에 있는 것은 분원인데, 프랑스 문화원이 주로 하는 사업은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프랑스 문화를 알리며 여러 가지 행사를 열기도 한다.  대흥동 분원 2층은 갤러리, 1층은 카페인데 카페공간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자주 연다. 뒤쪽에 마당도 넓게 있어, 여름철엔 야외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시끄럽다는 주민이 있어 지금은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4년 동안 100여개의 행사를 했는데 프랑스를 알리는 일, 국내 작가 전시, 대전 와인 페스티벌 기간에 프랑스 와인을 알리는 일 등, 꽤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는 곳이다. 전국의 프랑스 문화원 중에서도 대전은 꽤 역동적인 곳으로 성장했다.


전창곤 대전 프랑스 문화원장 

[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


 대전 프랑스문화원 대흥동 분원은 1층의 카페 이름은 “레모볼랑”이다.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을 레모볼랑에서 만났다. 빠리지엥 같은 모습은 아니고 그냥 수더분한 이웃 아저씨 같은 모습이 친근했다. 우선 “레모볼랑”의 뜻을 물었다

 “레모볼랑은 말(言)이 날아다닌다는 뜻이예요. ‘날아다니는 말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즐겁게 얘기 나누면, 이 공간이 날아다니는 말로 가득한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지었죠“

그날은 음악도 날아다니고 커피향과 햇살도 날아다녔다. 레모볼랑에는 길가에 써 있는대로 블렌드, 에티오피아, 모카, 콜롬비아, 과테말라, 에스프레소...이런 커피도 있고, 다즐링, 얼그레이, 이런 홍차와 녹차, 밀크티, 라떼 등등...다른 찻집에 있는 음료와 차 대부분이 있다.  들어서면 레모볼랑이 꽤 넓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들어서서 오른쪽엔 프랑스문화원에서 하는 여러 가지 행사가 소개된 팜플릿이 놓여 있었다.

팜플릿을 하나 하나 펼쳐보면 이곳에서 종종 전시회가 열리고 파티도 열고, 음악회가 열린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해외 여행도 많이 다니고, 인터넷이니 영화며 TV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프랑스를 많이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렇지 않아요.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 프랑스 문화는 많이 모르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피상적인거죠.우리 문화의 다양화를 위해서도 프랑스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가까운 일본에 대해서도 반감만 가질 게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이예요“

전창곤 문화원장은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유학했는데, 고생하며 외국 문물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돌아와서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그러다 보니 한국의 대학은 대학이 아니고 유치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열을 가지고 배우려는 초롱초롱한 눈이 없고, 그냥 부모가 4년 동안 다른 데로 가지 않게 놓아두고 스펙이나 쌓게 하는 곳인 것 같애요. 게다가 대학가에 이렇게 술집 많은 나라가 어딨을까요?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왔구요?”

이렇게 얘기한다. 아마 20년간의 유학 기간 동안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어렵게 살아온 만큼, 우리의 대학생들이 너무 연약하게 보여서였으리라. 그리고 이 말에는 그의 가치관이 묻어 나는 것 같았다.


버려진 것들에 대한 시선

 지난 여름 대전시 대흥동의 대전 프랑스 문화원에서는 <버려진 그리고 되살아난 작품들>이란 제목의 좀 색다른 전시회가 열렸다. 제목만 봐도 전시 내용을 알 것 같지 않은가. 거칠게 말하면 주워온 물건들이고, 좋게 말하면 버려져서 쓰레기 더미로 갈 뻔 했지만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의 높은 안목으로 귀한 보물들이 된, 진품명품을 모셔 와 새생명을 부여해 전시를 한 것이다. 거기엔 조각상도 있고 그림이 든 액자도 있고, 생활 용품도 있었다. 한때는 휘황한 조명 아래 뭇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전시작품들을 보면서 대체 누가 만들었고 어떤 경로로 손에 넣었으며 왜 버려졌을까? 하는 생각들을 했을 텐데...작품 아래엔 작가 이름은 없고, 어디서 가져 왔는가만 적혀 있다.
 
 이 전시회는 전창곤 원장의 가치관과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버려진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처음엔 유학생이라 돈이 없어 버려진 생활 용품들을 가져다 생활 할 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프고 필연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버러진 물건들을 살피다 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은 물건을 금세 사들였다가 조금 쓰고 버린다는 데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고, 아깝기도 했다고 한다.
 
 한 번 눈이 맞아 사들인 가구나 조각품, 미술작품, 혹은 악기 책장 이런 것들과 한 평생은 살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가치를 지닌 것이 평가 절하 받은 채 버려지는 걸 보면 너무나 아까워 거둬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안아 들이다보니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갖고 있는 존재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수집 습관을 갖게 했다

 
 그래서 남들은 지나치는 고물상, 재활용품점, 벼룩시장, 그리고 분리수거날에 매의 눈을 하고 지켜보다가 가져올 수 있는 건 가져오고 사 올수 있는 건 사온다.

“버려진 물건을 볼 때 가장 가치 있게 보는 기준은 물론 미학적인 주관적 관점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 세월의 힘을 이겨낼 수 있는 견고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영원까지는 감히 바랄 수 없다 해도 강산이 수십 번 쯤은 변해도 가치가 더 빛을 발하는 물건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입양을 결심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도 쓰레기 더미로 갈뻔한 물건들에서 귀한 보물을 발견하는 안목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수집은 할 수 있을 텐데요, 아무래도 옛날 물건들이 더 오래 쓸 수 있는 게 많아요. 요즘엔 처음부터 잠깐밖에 쓸 수 없도록 만들어지는 게 많죠.”

그렇다면 그 많은 물건들은 어디다 둘까요? 둘 곳이 있나요?

“물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같이 깔끔한 아파트에 오래된 물건들을 둘 곳은 없겠죠. 저는 다행히 금산에 허름한 집을 사서 거기 물건도 두고 주말에 가서 자연과 지내다 와요, 지저분한 물건을 싫어하는 배우자도 없으니 오래된 물건 수집이 가능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카페 “레모볼랑”에도 오래된 등이나 용도를 잘 알 수 없는 저울 같은 게 있다. 용도를 물으니

“저런 저울은 원자력 연구소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아름다워서 샀어요...가격? 가격은 고물이니까 그냥 무게로 달아왔죠. 하하...”

고물이 되는가 작품이 되는가는...아름다움을 보는 훈련이 결정하는 게 아닐까 한다.

“프랑스 유학하면서, 합리적인 사고를 배운 것 같애요. 창피함 때문에 자기한테 이로울 수 있는 걸 포기하지 않는 걸 배웠다고 할까요?”

그래서 재활용품 더미에서 뒤꼭지의 따가움을 무릅쓰고 귀한 것들을 과감히 모셔올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 게다. 가전제품이건 가구건 대개의 생활용품이 금세 버려지는 인스턴트화된 세상에서 저 물건이 얼마나 오래 지속적인 가치를 갖는가 하는데 관심을 갖는 것은 속전 속결의 시대에 부적응하는 걸까?

그건 어쩌면 원도심을 지키려는 마음일 것이다. 낡은 것, 낡은 건물, 오래된 거리, 그걸 지키는 조금 느린 사람들...그곳에 전창곤 프랑스 문화원장의 마음이 있다. 오래 되면 오래 될수록 더 가치 있어지는 와인 같고 된장 같고 진품명품 같은 마음! 그건 오랜 거리와 건물들로 가득한 프랑스의 도시 같기도 하고, 또 원도심을 지키려는 마음 같기도 한 것이다.

 

 


원도심을 살리려면?

 카페 레모볼랑 바깥 풍경은 원래 낡은 기와집과 한옥들이 즐비했던 곳인데, 지금은 계속 원룸같은 신축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예전에 서 있던 건물도 몇 개 사라졌다. 전원장은 한국은 몇 년만 떠나있다 와 봐도 거리며 건물이 싹 바뀌어 있는데, 프랑스는 몇 십년 동안 건물이고 거리고 그대로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다보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우리는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는...” 곳에서 살게 된다. 추억도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원도심은 아직은 그래도, 옛날에 걸으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던, 중구청 주변 골목들, 그리고, 소주와 두부 두루치기를 먹으며 뭔가에 웃고 울며 취하던 “진로집”, 커피를 마시며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했던 “뮤즈”, “산에 언덕에” “브라암스” “전람회” “맥” 등등의 카페들의 흔적이나 장소가 남아 있다. 옛날 풍경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건, 이곳을 지키는 지킴이들 덕분인데, 그리운 곳을 그냥 남아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은

“원도심을 살리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말하고 싶어요“. 살리려고 이것저것 신경 쓰고 투자해서 살려놓으면 상업성이 끼어들어 땅값 건물세를 올려놓아 가난해도 지킬 수 있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지키려는 노력이 오히려 망칠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더 안타까운 건, 대전의 가을을 그 어떤 존재보다 눈부시게 펼쳐 놓곤 하는 은행나무 거리! 대전 프랑스 문화원 대흥분원 창에서 바라보며 가을마다 황홀함에 넋을 놓게 하는 그 은행나무들이 잘릴 위기에 있다고 한다. 수 십년 걸려 자란 은행나무는 시대의 풍경이자 역사다. 풍경은 세월의 덧칠 속에서 변해가고 익숙해진다. 그런 풍경은 건물을 짓듯이 만들어 낼 수 없는 법. 프랑스문화원에 어울리는 은행나무가 베어질 수 있다는 말이 있어 걱정이다. 전기톱 앞에서 “차라리 나를 대신 자르시오” 라고 시위라도 해야할까?  더 이상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대흥동의 오랜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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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오독 2013.11.14 15:42

오늘의 글

  송인효에게 박수를

  정 덕 재 (시인 ·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책임작가)
 
 대학 수능시험이 끝났다. 시험을 치른 다음날 나는 인터넷을 뒤져 국어영역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이형기의 시 <낙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청준의 <소문의 벽 > 등이 문학 관련 문제의 지문으로 출제되었다. 비문학 지문은 과학  ·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되었다. 이번 국어영역에 나온 지문 가운데 눈에 들어온 내용의 일부를 옮겨보겠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를 펴내며 역사 연구의 기본 단위를 국가가 아닌 문명으로 설정했다. 그는 예를 들어 영국이 대륙과 떨어져 있을지라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 왔으므로, 영국의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서유럽 문명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이 지문을 인용한 것은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의 처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거대한 유럽문명을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고딩들이 처한 상황도 거대한 경쟁체제의 잘못된 교육환경과 깊은 상관성을 갖는다. 오직 대학만을 향해 달려가는 고달픈 인생, 반에서 1등을 해도 흔히 말하는 유명대학에 들어가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그들은 경쟁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동안 10대의 풋풋함은 지쳐가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 순응해갔다. 그 중에는 원하는 대학에 가는 고딩도 있겠지만 생각하지 않았던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또는 대학을 포기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고딩도 있다.

 

[송인효, 인상 형제, 왼쪽 기타치는 녀석이 인효다]

 


 내가 잘 아는 한 선배의 아들이 이번에 수능시험을 보았다. 그 녀석 이름은 송인효다. 인효는 홍성에 있는 풀무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여느 학생과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녀석이 수능을 치른 것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을 옥죄는 수능이 뭔지 궁금해서 치른 것이다. 녀석은 몇 개월 전에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에 1년 동안 친구들과 농사일을 하면서 노래를 열심히 만들다가 군대에 가겠다는 계획을 말했다. 시험을 치르기 1주일 전인 시월의 마지막 날 밤. 그 녀석은 촛불문화제의 초대가수로 노래를 불렀다. 여느 수험생이라면 시험을 코앞에 두고 이렇게 간 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선배는 녀석이 대학을 가든 안가든 등록금에 해당하는 돈을 주겠다고 한다. 그 돈으로 떡을 사먹든 밥을 사먹든 알아서 쓰라고 말이다. 내가 짐작하기에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녀석 답게 악기점을 기웃거리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홀가분하게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떠날지도 모른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대학에 갈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녀석의 진지한 고민 속에서 나온 선택일 터.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고딩의 의지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다시 국어영역의 지문을 조금 더 인용해 보겠다. “성공적인 응전을 통해 나타난 문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문제, 즉 새로운 도전들을 해결해야만 한다. 토인비에 따르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창조적인 인물들이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다수의 대중까지 힘을 결집해야 한다”

[인효 아버지, 송성영 작가] 

  
 앞서 소개한 송인효같은 고딩을 나는 토인비가 말한 창조적인 인물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이 많아질 때 경쟁으로 치닫는 교육환경도 조금은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녀석의 선택이 후회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어쩌면 세상을 익숙한 대로 이해하려는 어른들의 습관화된 인식일지 모른다.


 수능시험이 끝난 날, 2학년 고딩을 둔 아빠가 “넌 이제 1년 남았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지는 않았는지, 1학년 고딩을 둔 부모가 “넌 이제 2년 남았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 들어가는 건 고딩 스스로가 아니라, 등을 떠미는 어른들이다. 경쟁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동인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 경쟁이 공정하지 않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불공정한 경쟁에서 배우는 건 남을 생각하는 배려와 나눔이 아니라 배제하고 독식하려는 태도이다. 

  수능 국어영역 문학 지문으로 출제된 이형기의 시 <낙화>의 한 구절을 적는 것으로 나는 송인효라는 한 고딩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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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오독 2013.11.14 10:30

대흥동 소극장의 메카 ‘HotDog’를 찾아서


 대전의 소극장들은 대부분 대흥동 주변의 원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 영상 예술에 밀리고 상업주의의 그늘에 가린 연극이 숨 쉬는 거리. 젊은이들의 거리로 활기를 되찾고 있는 원도심은 소극장과 함께 호흡하고 있어 그나마 문화예술의 명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나로서도 연극을 보기 위해 찾는 거리가 된 중앙로. 삼성생명 건너편 골목으로 50여 미터 들어간 곳에 위치한 소극장 핫도그의 행정주소는 대전시 중구 중앙로 122번길 15번지이다. 번화한 으능정이보다는 화방과 표구사들이 들어서 있어 좀 더 한적한 골목. 때마침 내리는 가을비의 운치에 젖어 천천히 2층 계단을 오르니 대표 최창우 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지난해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재미있게 본 연극 <인형의 집>의 주연배우이시고 핫도그에 연극을 보러 올 때마다 뵌 분인데 대표인 줄은 몰랐다. 연극배우와 관객의 만남이 구체화되니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핫도그의 역사

 “2009년 대전시 소극장 지원사업의 대상지역이 이곳 대흥동 주변에 한정되어 있었어요.”

 소극장 핫도그를 비롯하여 드림아트홀, 마당, 고도, 상상아트홀 등의 소극장들이 대흥동에 개관하게 된 데는 당시 대전시 지원사업의 영향이 컸다는 얘기이다. 최창우 씨는 가난한 연극배우들이 공연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값진 선물이었노라고 지금껏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듯 감회에 젖는다.  

 

[극장 핫도그 최창우 대표]

“연극다운 연극을 보려면 핫도그에 와라,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말없이 매우 느린 연극, 내면을 보여주는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배우는 드러내놓고 갈등을 표출하지 않지만 관객은 연극의 흐름 속에서 갈등을 읽어내는 거죠. 표시내지 않고 들키지 않는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2009년에 개관하여 올해 5년차로 접어든 소극장 핫도그는 극단 놀자가 만든 연극전용 소극장으로 연극 고유의 무게와 감동, 흥행보다는 작품성 위주의 공연활동을 추구하고 있다.  이 장소는 극단 놀자 대표이기도 한 최창우 씨가 천정이 높아 소극장을 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평소 유심히 보아 두었던 건물이다. 무엇이든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을 쏟으면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대학 연극동아리 활동으로 연극에 입문하게 된 최창우 대표는 졸업 후 4년간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하지만 연극에의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극단 놀자를 창단하고 연극다운 연극을 하기 위해 소극장 문을 열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연극의 세계는 배고픔의 대명사로 불린다.

 “처음엔 관객이 없어 연극을 못 올린 적도 있어요.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작품 만드는 데 신경쓰다 보면 한해가 흘러가곤 했지요. 핫도그는 ‘뜨거운 개’라는 의미예요. 고등학교 시절 제 별명이 ‘미친 개’였는데 그걸 좀 더 순화시켜 붙인 이름이죠.”

 2009년 개관공연 <이름을 찾습니다>를 시작으로 극단 놀자의 자체제작으로 올린 연극은 <You don't understand!>(송선호 연출), 2010년에는 <춘천, 거기>(연출 최창우), <귀신이 곡할 노릇>(연출 송선호), <들에 핀 백합>(연출 최창우), 극단 유랑선과 극단 놀자의 레퍼토리 개발 w.s 공연으로 <몰리 스위니>, 2011년에는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김윤희 연출), 2012년에는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연출 이동규), 2013년에는 <진정한 진실>(연출 홍재웅), 서늘한 반전의 서스펜스 호러 연극으로 각광을 받았던 <두 여자>(공연예술집단 노는이) 등이다. 그밖에 대관작으로 2009년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인 <청춘의 등짝을 때려라>(연출 송선호, 극단 유랑선), 2010년에는 <황소, 지붕 위로 올리기>(연출 임은희, 극단 금강), <장군슈퍼>(연출 김태섭, 극단 금강), <날개>(연출 임은희, 극단 금강), 2011년에는 <일등급 인간>(연출 서재화, 극단 손수), 2012년에는 <미남선발대회>(극단 감탄사), 2013년에는 <고래>(연출 유창선, 극단 홍시) 등의 작품들을 들 수 있다.


핫도그 연극의 주제와 예술적 가치들

 2011년 공연작인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2011년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4일간 개최된 ‘제20회 대전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최우수연기상, 신인상 등 4개 부분을 석권한다. 소극장 핫도그가 지향하는 연극과 많이 닮아 있는 작품으로 최창우 대표 개인으로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한다. 2011년도는 2009년부터 받아 온 대전시 연극전용 소극장 지원사업이 종료되는 해였는데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것. 대전시 연극전용 소극장 지원사업은 극장의 개관뿐 아니라 양질의 공연작품을 생산하는데도 한몫을 한다. 이렇듯 우수한 연극의 대부분이 공적기금을 받아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열악한 연극계의 사정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 공적기금의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 사례이다.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기준은, 아마도 가장 보편적인, 다수의 손에 놓여진 가치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치들만으로 이 세상을 나눈다면 보편적이지 못한, 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한, 그 가치들은 과연 버려져야만 하는 것들일까. 내 기준으로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틀렸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해 받을 수 없는 사랑을 주제로 그 고민에 답을 내려 보고자 했다. 감히 ‘운명’을 내세워 그것을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삶’ 전부로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우리의, 물음과 고민을 보편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더 많은 수의 사람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_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김윤희 연출가의 말에서

 “사랑은 모든 예술의 최고의 소재입니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존재합니다. 처음부터 아픔과 상처를 각오한 사랑, 미친 집착 같은 사랑, 이제 막 시작한 핑크빛 사랑, 가슴에 품은 채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사랑…어쩌면 유치하고, 또는 찌질하고, 한없이 절박하고 가슴이 시리지만 먼 훗날엔 배시시 웃음 짓게 하는 것 역시 젊음 시절의 사랑이기에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사랑이란 모습 그대로를 현실감 있게, 고유한 감성 그대로를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_ <춘천 거기>, 최창우 연출가의 말에서

 “80년대는 용광로와 같은 불길 속에서 모든 것들이 뒤섞여 꿈틀거리는 시기였다고 생각됩니다. 억압과 해방감, 사상적 신념과 좌절, 풍요와 빈곤, 그밖에 온갖 집단적, 개인적 욕망이 공존했던 시대. 지금은 정의로움과 희생, 쟁취 등을 떠올리게 되는 향수 어린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발견하고 싶었던 인간 본성과 진실은 아직까지 뿌연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역사로서의 80년대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근거로 시대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근거 위에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연극 행위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_ <You don't understand>, 송선호 연출가의 말에서

 2011년 당시 20대 연출가로 주목을 받은 김윤희 씨의 말을 보면 ‘보편적이지 못한 가치’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감지된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진실’과 그 시대상황과 맞닿아 있는 ‘인간 본성’, ‘갈등과 욕망’ ‘절망보다 징그러운 희망’ 그리고 ‘사랑’과 ‘성장통’ 등이 핫도그 연극의 중요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마구 웃고, 떠들고, 울어대는 연극이 아니라 배우의 표정과 몸짓으로 인간내면이 보이고 갈등이 표출되는 그런 연극. ‘희곡 언어의 육화’, ‘감성을 성찰하는 무대’, 즉 예술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핫도그 연극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소극장 핫도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송선호 상임연출가이다. 극단 유랑선 대표이기도 한 그는 <바다와 양산>(동아연극상작품상수상), <루나자의 춤>(대전예술의전당 우수작선정), <청춘의 등짝을 때려라>(‘09 서울국제공연예술제초청작) 등 섬세하면서도 언어를 정교하게 다뤄 공간에 각인시키는 연출형식으로, 그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구체성을 확장하는 무대로 연극성을 회복한다’는 그의 연출론은 최창우 대표가 추구하는 연극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초창기 최창우 대표가 막연히 꿈꾸던 연극 스타일의 현실화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 구체성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희망을 갖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천상 연극쟁이들인 최창우 대표와 송선호 상임연출가의 연대와 소통이 지금의 핫도그를 지켜내고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당연히 연극의 예술성과 완성도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핫도그의 변화와 계획

 “대전의 연극공연이 자체 제작을 하기 보다는 인지도 있는 서울공연을 데려와 5:5 공연이 빈번해지는 것은 대전연극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지방 공연 첫날에는 A급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점점 B팀, C팀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관객들에게도 오히려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어요.”

 서울 제작 작품을 지방으로 유치하는 데는 상업적인 이유가 크다. 투자금 회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웃고 즐기는 상업연극이 범람하면서 정극이라 표현되는 인간내면 심리를 고찰하는 연극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서울 대학로 연극이 저물어가는 이유도 지나치게 코미디적으로 흘러간 풍토에서 비롯하고 있다. 제작여건이나 경제적인 사정에 의해서라면 서울에서 제작은 맡되 배우는 대전연극의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게 최창우 대표의 소신이다. 그래서 소극장 핫도그는 자체 예술성 가치 창출에 노력하면서 좋은 작품을 올리는 것과 대전연극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에 최우선의 중점을 둔다.

 

“관심이 없어서 연극을 보지 않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이 극장에 와서 연극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돈이 없어서 연극을 볼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만은 참을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극을 하고 있지만 현재 웬만한 극단이라면 공적 기금, 즉 지원금을 받아 제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면 관람료가 내려가야 하는데 올라갑니다. 상업구조에 편입됨과 동시에 포장비가 비싸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 속에는 개런티와 비연극인에게 지불되는 인건비, 그리고 홍보비도 포함됩니다. 예술성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제작 여건입니다. 앞으로 더 가속화되겠지요. 여기서 말하는 관람료는 상업연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업연극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원금과 상관없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은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저희극단은 연극 문화가 공적인 구조를 가진 제도로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핫도그 공식홈페이지(cafe.daum.net/TheatreHotDog)에서 발견한 상임연출가 송선호 씨의 말은 좀 더 근원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 연극의 공적 구조와 평등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외부의 여건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연극을 지켜나가며 관객과 만나는 예술문화, 예술정신을 추구하는 엄결성이 극진하다. 연극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좌석을 마련하는 것이 극단이 해야 할 일이며, 그분들이 부담 없이 극장을 찾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나갈 생각이라는 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도 타 소극장에 비해 대관이 많이 되는 편이고 해가 갈수록 대표 부담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니 다행이죠. 뭐 거창한 계획이 있겠어요. 지금껏 얘기한 것에 대하여 약속을 지키는 게 계획이 아닐까 합니다. 올해부턴 대중이 좋아하는 연극도 올리면서 동시에 좀 더 수준 높은 연극을 준비하는 방향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호흡하는 것이죠.”

 최창우 대표의 관심도 시종일관 순수 정극에 대한 애정과 관객과의 뜨거운 만남에 집중되어 있다. 연극다운 연극을 하기 위해 소극장 운영이 도움이 되는지도 단언하기 힘든 상황에서 아마추어 대학 연극반에는 가능한 대여를 안하고 버티고 있지만 대략적인 한 달 운영비가 이백오십만 원. 작지도 크지도 않은 금액이지만 연극과 관객의 만남은 늘 만만치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원도심에 바라는 것들

 “술집이 너무 많아요. 화방이나 글 쓰는 사람들, 문화예술인들의 사무실이나 작업실 혹은 작지만 이쁜 찻집 등으로 채워진다면 문화적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지 않겠어요?”

 최근 원도심 활성화 사업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어 순차적으로 개선될 여지는 있지만 현장의 예술인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아직은 멀다는 얘기이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극장과 연계되어 무료공연을 올려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 있다. 술집과 유흥업소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가게 세도 올라가고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은 좀 더 월세가 싼 변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낳는다. 최창우 대표가 가장 걱정하는 사안이다. 소극장이 생기면서 주변골목이 살아나는 상생의 효과도 있다고 보여지는데 그 기여도가 나중엔 월세 인상으로 연결된다면 이보다 큰 손실이 어디 있겠는가.

 “대전시에서 연극공연을 알릴 수 있는 광고판이나 홍보판을 더 많이 설치해주면 좋겠어요. 우리들공원이나 으능정이 쪽에는 몇 개 있는데 위쪽으론 거의 없어 아쉽습니다. 대전 시민들에게는 웃고 즐기는 연극을 선호하기보다 이삼일 동안 한 권의 책을 읽듯이 느긋한 마음으로 연극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최창우 대표의 바람은 소박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지난 2년간 연극의 감상을 성숙시키기 위한 관객교육을 진행했던 이유도 그러한 절실함 때문이다. 소극장 핫도그는 이름에 걸맞게 연극판에서 뜨겁게 살아내고 있다. 그 사이 소극장의 객석도 밤색 앉은뱅이 의자에서 쿠션 좋은 주황빛 의자로 바뀌어 있다. 연정국악문화원이 사라지면서 거기 의자를 개당 만 원씩 구입하여 교체했다고 한다. 한결 편안하고 환해 보이는 객석에 앉아 책을 읽듯이, 한편의 연극을 보고 듣고 읽는 관객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대전 시민들이 연극의 언어를 통해 사색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성숙해진다면 소극장 핫도그의 문턱이 반질반질 윤이 나겠다. 그것이 진정 즐거운 놀이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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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오독 2013.11.14 09:48

다양성 영화의 중심, 대전아트시네마

다양성 영화의 현실

 2013년 9월,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프로젝트>가 멀티플렉스 상영관인 메가박스에서 상영이 중지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천안함프로젝트>는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피폭 사건과 관련해 풀리지 않는 의문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의 상영 중지 이후 각종 보도에서 빠짐없이 ‘다양성 영화’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다양성 영화’는 작품성, 예술성이 뛰어난 소규모 저예산 영화를 이르는 말이다. 상업영화와 대비되는 의미로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시네마워크 사업계획안’에 언급된 용어이다. 대체로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영화 등을 총칭한다. 대규모 제작비를 들여 만드는 상업영화와 달리 소규모 제작비가 투입되고 배급이나 상영 규모에 있어서도 소규모로 진행된다.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다루고 영화 제작에 있어 보다 더 실험적인 것이 장점이지만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스펙타클한 볼거리를 요구하는 관객의 입맛을 맞춰주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맞추려는 시도도 하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지는 않지만 영화 관객들의 취향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흥행에 성공하기도 한다. <워낭소리>, <지슬>은 그 대표적 작품이다. 다양성 영화에 있어 가장 절실한 것은 결국 상영관의 확보이다. 관객과 만날 수 없는 영화는 존재 기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영화의 주류 상영 공간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로 대표 되는 멀티플렉스이다. 예를 들어 대전 CGV는 9관까지 상영관을 확보하고 있다. 상영관이 많다는 것은 관객들이 그만큼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의미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9개의 상영관이 있는 대전 CGV에서 실제로 상영되는 영화는 3~5편에 불과하다. 대형 배급사가 직영하는 멀티플렉스의 수익 구조는 상영관의 독과점 문제를 유발하고 이는 어떤 영화들에게는 상영관 확보 문제와 직결된다. 관객과 만날 수 없는 영화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201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최고 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피에타>가 상영관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확보된 상영관에서의 상영시간도 주요 시간대 밖에 배치되어 흥행에 고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다른 다양성 영화와는 달리 <피에타>는 베니스 영화제 이후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에 힘입어 105개 스크린을 확보했으나 이마저도 당시 흥행작이던 <도둑들>의 1/4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대중의 관심이 한껏 고조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대중은 영화를 ‘제대로’ 관람할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천안함프로젝트>와 <피에타>가 맞닥뜨린 문제는 다양성 영화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예이다. 대형 배급사가 제작에 참여하고 배급하는 주류 상업 영화가 아닌 이상 관객과의 만남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 문화 생태계는 언젠가는 멸종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종의 다양성을 잃은 자연 생태계의 결말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나 다양성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면서 전국적으로 전용 상영관이 속속 개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전에서는 2006년 4월 ‘대전아트시네마’가 개관된다.


시네마테크대전

 ‘대전아트시네마’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네마테크대전’을 말해야 한다. ‘시네마테크대전’은 영화가 제작 상영된 1895년을 기리며 1997년 ‘시네클럽’으로 출발했다. 이후 한국적 시네마테크 운동을 적극 수용해 작가영화, 독립영화, 단편영화, 독립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상을 지역에 배급하며, 지역 영화 인력의 인프라 구축에 힘쓴다. 또한, 2002년 전국의 시네마테크 단체들과 함께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를 결성해 시네마테크 운동을 발전적으로 계승한다. 시네마테크 대전은 지역의 영화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열린 공간을 표방하고 기타 독립적인 문화운동 단체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역의 소외된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지역의 대표적 영상문화운동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시네마테크대전의 주요 활동은 시네클럽, 대안적인 영화배급, 영화 향유자 층 개발, 영화 연구, 영상교육, 문화 복지, 연대활동으로 요약된다. 1997년 창립 이후 일반 관객이 접하기 어려운 단편영화, 인권영화를 포함해 퀴어영화 등을 소개하는 동시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전’, ‘빔 벤더스 영화제’,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제’, ‘프랑스 누벨바그 기획전’, ‘대전둔지미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해 오던 중 안정적인 상영관 확보의 필요성이 절실해진 상황에서 시네마테크대전의 전용 상영관인 ‘대전아트시네마’를 개관한다. 그 무렵 영화진흥위원회가 선정한 예술영화관(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에 대전아트시네마가 선정되었다. 예술영화관 특성화 극장을 집중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대전아트시네마는 그간 대전이라는 도시 규모와 배후조건에 미루어 충분히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영화전용관이 없었던 점과 시네마테크대전의 인력들이 직접 운영하는 상영관으로서 그 의지와 프로그래밍 능력이 반영되어 예술영화관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보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예술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대전아트시네마

 대전아트시네마는 1990년대까지 명맥을 이어온 동보극장이 있던 자리(대전시 동구 중동)에 위치한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이다. 대전에서도 대중교통 이용이 가장 편리한 대전역 인근 중앙로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그러나 블록버스터와 슈퍼스타에게 집중되어 있는 대중의 관심, 다양성 영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 부족, 자본의 흐름에서 갓길로 벗어난 영화 상영 등의 이유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그 동안 수많은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많은 상영관을 다니면서도 대전아트시네마라는 상영관의 존재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우연한 기회에 대전아트시네마를 ‘발견’하게 된 그는 이후 한 달에 서너 번 정도 대전아트시네마를 찾아 영화를 감상하는 마니아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꼽은 최고의 작품은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렛미인>이었다. 대부분의 영화관이 상영을 외면한 이 작품을 생애 최고의 영화로 꼽으면서 그는 말했다.

 “아트시네마가 없었다면 나는 이 영화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살았을 수 있고, 내 인생은 그만큼 더 건조했을 것이다. 내 인생의 기쁨 하나를 잃어버렸을, 아니 맛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대전아트시네마는 상대적 소수일 뿐 적잖은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것은 대전아트시네마를 회원제로 운영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회원들은 인문학카페, 시네클럽, 브런치시네마 등의 소모임 커뮤니티를 통해 소통하고 각종 정보를 공유한다.

 시네마테크대전이 탄생의 근거가 되었던 만큼 대전아트시네마는 영화를 상영하는 당연한 일 외에도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전아트시네마 영화강좌이다. 2013년 6~7월 진행한 강좌는 ‘시나리오 기초과정’과 ‘색보정, DI 초급 과정’, ‘영화비평교실-영화는 어떻게 성립하는가?’의 세 강좌였다. 영화 이해는 시작과 실전, 그리고 사유의 단계를 짚어나가는 일련의 순환고리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영화의 기초 지식을 습득하고 뼈대를 만들 수 있는 시나리오 기초반 강좌, 영화의 분위기와 독창적인 시각효과를 창조할 수 있는 색보정 및 DI 초급과정, 완성된 영화를 통해 영화를 성립시키는 요건들을 사유할 수 있는 영화비평교실은 사유가 필요한 영화 예술에 대하여 보다 깊이 접근하고 폭넓게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간이다. 이 밖에도 ‘질 들뢰즈와 시네마’, ‘영화로 변주하는 철학의 물음들’과 같은 철학적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강좌와 함께 ‘영화 장르에 대해 궁금한 다섯 가지 것들’처럼 영화에 보다 가볍게 다가설 수 있도록 안내하는 강좌와 ‘카메라 기초-DSLR, 쌈빡하게 시작하기’, ‘디지털 카메라, 구입부터 활용까지’와 같은 실용적인 주제의 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전아트시네마는 소박하다. 대훈서적이 있던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작은 교통카드 충전소를 만나게 된다. 교통카드 충전소 앞 건물을 바라보면 조금 우묵하게 들어간 건물이 있고 건물 오른편으로 몇 개의 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위층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간 3층에 대전아트시네마가 있다. 맑고 경쾌한 풍경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몇 개의 테이블과, 아마도 커피 원두를 볶은 것 같은 향기를 만날 수 있다. 은근하게 배어 있는 커피 향이 가끔은 카페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영화관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겨울이면 홀 중앙에 설치된 난로와 전기스토브도 볼 수 있다.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상영관이 춥다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름에는 다소 더우리라는 것도.

 상영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홀 내부에 비치된 서가에서 다양한 종류의 서적을 읽어볼 수도 있다. 영화 관련 각종 매거진과 단행본들, 그리고 약간의 시집을 비롯한 문학서적과 철학서적까지. 대전아트시네마의 강민구 대표가 한때는 시인을 꿈꾸기도 한 철학도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문학과 철학이 주요 주제를 이루는 서가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홀의 왼쪽에는 강민구 대표의 작업실이 있다. 은행동에 별도의 작업실을 마련하기 전에는 영화 강좌가 진행되기도 하던 공간이다. 작업실에는 각양각색의 카메라와 부대 장비들이 즐비하다. 시네마테크대전의 회원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필요한 장비를 대여할 수도 있다.

 대전아트시네마를 찾는 관객이 적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더 조용하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멀티플렉스의 어수선한 관람 분위기가 거북했던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대전아트시네마의 관람 분위기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다만 미리 영화 프로그램과 상영 시간을 대전아트시네마 인터넷카페에서 미리 확인해야 하는 것이 다소 번거로울 수도 있겠지만 영화 예매가 일상화 되어 있는 지금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니다. 데이트 도중 ‘영화나 볼까’ 하고 즉흥적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의 대부분은 멀티플렉스로 향할 테니까. 관객의 수는 극장 운영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정작 극장 측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일지라도 적은 관객 수는 대전아트시네마 입장에서는 고민거리일 법도 하다. 관람료 수입은 차치하더라도 좋은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감상하는 것은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고 상영하는 이들의 주된 관심사일 테니까 말이다. 이런 고민이 모이고 모여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대전아트시네마는 여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은 영화 문화 생태계 보존 및 다양성 영화의 가치를 지향하고, 완성된 작품을 함께 봄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극을 좁히고, 영상 및 영화 문화 향유권을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2013년 7월 창립되었다.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는 시네마테크대전과 대전아트시네마와 그 목표를 공유하고 있으나 시네마테크대전이 대체로 영화 생산자를 중심에 두고, 영화 상영이 목적인 대전아트시네마가 소비자 중심인 반면,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극을 더욱 좁히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시네마테크대전과 대전아트시네마의 그 동안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모든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조직으로 확대 조직함으로써 영화 예술의 일상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셈이다.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은 ‘다중 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이다. 영상제작 및 편집, 배급과 지역에서 영화 문화를 이끌어가는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는 생산자 조합원, 다양한 영화 관람과 조합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갖는 후원자 조합원,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 조합원, 조합에서 진행하는 개별 사업에 자원봉사를 하거나 재능을 기부하는 자원봉사 조합원 등 네 가지 유형의 조합원으로 구성된다. 생산자 조합원을 제외한 조합원은 소비자 조합원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소비자 조합원이 조합에서 진행하고 생산하는 각종 사업과 그 결과물에 단순하게 참여하거나 향유하는 피동적 역할을 넘어서 재능 기부 형태나 자원봉사 형태로 직접적 참여가 가능하도록 명문화 하여 능동적 주체로 이끌어가는 것이 특이점이라 할 만하다.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은 이미 협동조합 영화 <위 캔 두 댓> 상영회를 진행했고, 단편영화 <새벽, 국경에서> 제작에 참여하고 있으며 ‘누벨바그 상영회’와 ‘조합원 상영회’를 준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조합 차원에서 생산된 영화를 상영하거나 각종 상영회를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공동체 영화관인 ‘마을극장’을 건립하고자 한다. 현재는 대전아트시네마와 협력하며 공동 사업을 진행하거나 추진 중이다.


영화 운동을 넘어

 문화운동의 핵심적 역할이 문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그 혜택이 다양한 계층에 전파되어서 다시 문화의 폭과 깊이가 확대되도록 하는 데 있다면 대전아트시네마는 그 중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관 자체 사업에만 몰두하는 것만으로는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미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에서도 대중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고, 가장 접하기 쉬운 장르이기도 하다. 종합 예술이 지닌 강점이 현대 사회의 특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까닭이기도 한데 그래서 영화 예술의 다양성은 특히 더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다양성’은 생태계의 건강성을 확보하는 지지대인 동시에 생태계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촉매이다. 모두가 주류 영화를 향해 뛰어가고 있는 와중에 갓길에 서서 다른 영화를 외치는 것은 어쩌면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 외침을 많은 사람들이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영화 생태계를 유지하는 자양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류’로 대변되는 주류 상업 음악이 아닌 인디음악에 대한 지원이 대폭 줄어들었음에도 꾸준히 그리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들이 그 예이다. 대중음악 생태계와 영화 생태계가 아직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은 그 힘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우리를 인정하는 일이다. ‘다양성’은 곧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시네마테크대전’과 ‘대전아트시네마’,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우리 지역의 영화 운동은 우리에게 ‘다양성’이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지키고 보듬는 것은 비단 영화의 다양성을 살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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