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7.09.16 17:55

세월호에 사과해야 할 공범자들

세월호에 사과해야 할 공범자들

; 영화 공범자들에 세월호가 있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KBSMBC, 거대 방송사 노조의 파업이 3주차를 향하고 있다. 94,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MBC본부는 지난 4일부터 경영진 퇴진과 방송 정상화를 목표로 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MBC의 대표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멈췄고, KBS<12>의 촬영이 취소됐다.

 

사람들 웃기는 방송 만들려고 예능 PD가 되었는데 그거 만들라고 뽑아놓은 회사가 정작 웃기는 짓은 다 한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지난달 30일 성명서를 통해 파업에 참가하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도 이달 15<12> 제작진의 입장을 대신 전했다.

 

“<12> 제작진은 KBS의 정상화가 이뤄진 뒤 시청자들에게 더 건강한 웃음을 드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0년 간 무너진 공영방송을 살리고,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이들.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진, 공범자와세월호1, 공범자와 세월호2)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대전지부, KBS본부 대전충남지부 파업 출정식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나라가 망해요!”

 

양대 방송사의 파업 국면과 함께, 한 편의 영화가 스크린 계에 조용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첫 주 국내 3대 멀티플렉스에서 불과 3.4%이던 이 영화는 현재 입소문만으로 무려 24만 명을 돌파(0916일 기준, 영화 공범자들 홈페이지)하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최승호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10년 동안 공영방송에서 일어났던 언론인들의 저항과 총파업, 무너진 언론의 현실을 담은 이 영화는 사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 했다. 영화 속에 거론되는 전현직 MBC 사장들과 임원들이 명예 훼손과 초상권 침해를 주장하며 지난 731일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다행히도 법원은 상영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드디어 817일 세상에 나오게 된 영화 공범자들’. 영화는 생각 이상으로 충격적이었고, 영화 속 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악랄했다.

 

진도에서 팽목항에서 나를 두 번 죽인 건 현장에 있던 여러분들이었습니다.”

 

KBSMBC, 양대 방송사의 파업 첫 주. 98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파업 중인 언론인들과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고봉순) 집회가 열렸다. 그 첫 번째 연사의 뼈아픈 지지 발언이 좌중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진도에서 팽목항에서 나를 두 번 죽인 건 (방송사) 여러분의 사장이 아니고 바로 그 현장에 있던 바로 여러분들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며 416가족 협의회 집행위원장인 예은 아빠유경근씨였다. 그는 KBS·KBC 파업 참가자들에게 묵직한 목소리로 첫 마디를 열었다. ‘망가져 버린 언론의 피해자는 여러분들이 아니라 바로 국민들, 예은 아빠인 나라는 메시지였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약 20여 일 후인 201459, 희생자들의 영정을 들고 KBS를 찾아갔던 일에 대해 발언을 이어갔다.

 

저희가 영정을 들고 KBS를 찾았을 때 그렇게 울부짖을 때, KBS 여러분 누구 하나 뒤로 몰래 찾아와 대신 미안하다고 이야기한 사람 단 한 명이라도 있었습니까? 내가 파업을 지지하는 건 여러분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편하게 근무하라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또다시 죽고 싶지 않아서, 내가 언론 때문에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예은 아빠유경근 씨의 발언은 그 동안 공영방송에 꾹꾹 눌러두었던 아픔과 분노를 터트리는 듯 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방송사 파업에 왜 그토록 아픈 지지 발언을 해야 했던 것일까. 양대 방송사 파업과 영화 공범자들’, 그리고 세월호는 어떻게 이어져 있는 것일까?

 

(사진, 공범자들과세월호3, 공범자들과 세월호4)

영화 공범자들의 포스터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역사를 무겁게 생각하십시오!”

 

201459. 팽목항에서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긴 시간을 거쳐 서울로 올라왔다. 품엔 희생자 가족들의 영정이 안겨 있었다. 유가족들은 KBS 앞에서 당시 KBS 사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교하며, ‘한 해 교통사고로 6천명이 죽어간다는 말이 KBS 보도 담당 내부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팽목항에서 여전히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 희생된 가족을 만나야 했던 이들의 피눈물이 전 국민을 울렸던 그 때 였다.

 

영화 공범자들에서는 당시 세월호 교통사고 망언사건을 되짚어 본다. 세월호 유가족이 KBS에 사과요구 방문을 하던 당시, 언론 상부와 권력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을 가리기 위해 권력이 언론에게, 세월호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묻는 언론에게, 정부를 도와 달라고 말하는 현실이 여과없이 보여졌다. 자식 잃은 부모들의 찢겨진 심장에도, 자신의 지지율과 안위 만 생각하는 권력의 추악한 진실이 그 안에 있었다.

 

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부터, 광우병 수입 소고기 반대 촛불 집회 보도 수사, KBS 정연주 사장 해임까지 이어지는 영화의 초반부는 정부가 어떻게 언론을 장악하는 지 보여준다. PD 수첩에 대한 무리한 수사에, 일방적인 방송사 사장의 해임에 내부 구성원들의 공영 방송 사수 투쟁이 이어진다. 그러나 거대한 권력에 의해 점령된 언론은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해고하고, 수사하고, 압박한다. 그러는 사이 정권은 그들에게서 그들에게로 무사히 교체되었다. 권력을 감시하고 질문해야할 언론은 입을 닫아갔다. 영화 속에서 이근행 전 MBC 노조 위원장은 막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방송을 장악하려는 권력자들에게 소리친다.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역사를 무겁게 생각하십시오!”

 

(사진, 공범자들과세월호5, 공범자들과 세월호6)

3, 세월호 인양 현장 (제공:서대선 작가)

 

두 참사의 사이, ‘세월호 침몰전원구조 오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가는 배와 몇 척의 구명보트의 사진을 보도로 접한 국민들은 의아했지만 믿었다. 구조되고 있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이것은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되었다. 해상 참사였고, 구조 참사였고, 보도 참사였다. 일터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안심하고 점심 마친 국민들은 첫 사망자 소식에, 배 안에 200 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소식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다. 침몰하는 배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며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들을 자책했다. 그래서 세월호 전원구조오보는 당시 해경이 전달한 내용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실수 혹은 해프닝으로만 볼 수 없다.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는 그동안 질문하지 않은, 비판하지 않은 언론들이 빚어낸 참사인 것이다.

 

이후 방송은 세월호에 관해 단순한 오보를 넘어섰다. 구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도, ‘사상 초유의 구조대원 투입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희생자 수습은 물론 자식들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상황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유가족 보상금을 계산하는 보도를 했다. 세월호 생존학생들의 대학 특례 입학을 간판에 거는 가하면,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를 광화문 불법 점거로 표현하기도 했다.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하고, 특조위 활동을 논란으로 가져가는 보도가 이어졌다. 방송사 단 한 곳도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를 생중계 한 곳은 없었다.

 

영화 공범자들은 단순히 권력에 의해 언론을 장악한 공범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인 노후 선박에 대해 선령 완화를 한 공범자의 이야기이며, 세월호의 참사의 원인인 정부의 구조 실패의 책임이 있는 공범자의 이야기이며, 세월호를 세월호 참사로 가슴아프게 읽지 못하게 만든 공범자들의 이야기다.

 

세월호에 사과해야할 공범자들’, 그래서 파업을 지지한다.

 

영화 공범자들을 다시 생각한다. 2008년 광우병 보도 수사 반대, KBS 정연주 사장 해임 반대, 2012년 방송사 파업까지. 어쩌면 우리에게는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많은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또 한 편에서 이를 방송사 내부의 문제’, ‘그들의 싸움쯤으로 생각해 오진 않았을까? 더 많은 국민이 지지하고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백 번 만 번 후회해도 소용없는 후회와 가정을 해본다.

 

9,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언론인들이 방송을 멈추고 거리로 나왔다.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세월호 참사 오보는 주워 담을 수 없지만, 참사의 원인과 진상규명에 대해 질문하고 감시하는 언론으로 돌아올 기회가 온 것이다.

 

영화 공범자들은 언론인들만의 공범자들인가, 우리 모두의 공범자들인가? 그 가운데에 세월호한 단어만 떠올려도, 우리가 KBS, MBC 언론인들의 파업을 적극 지지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 9월 숨쉬는 4.16 연재는 방송작가 조연미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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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7.07.16 21:36

기억과의 투쟁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2017년 7월

 

세월호는 기억과의 투쟁입니다.

-매주 토요일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서 리본 나누는 빈들청년공동체 -

 

2017714. 33개월 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714, 인사혁신처는 위험직무 순직 보상심사위를 열었다. 단원고 교사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의 순직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7일에는 세월호 선체조사위가 원점부터 재조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너무나 당연하게 했어야 할 일들이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늦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기억이 사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 세월호 아이들의 기사를 보고도 무심코 넘어갈 때, 광화문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전히 있음을 잊고 있었을 때... 기억이 너무 무뎌진 건 아닐까? 가방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을 다시 매만져 보라는 신호다.

 

 

기억의 등대, 빈들청년들의 노란 리본 나눔

 

빈들청년공동체의 노란리본 나눔&피켓 활동은 가물가물해져가는 세월호에 대한 기억의 저편에서 우리를 붙잡아주기 위한 등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빈들청년공동체는 대전 빈들교회가 가진 방향성과 가치를 이어받아, 세상 속에서 함께 실천하고 공유하는 청년 모임이다. 목회나 복음 활동 뿐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특히 세월호 리본 나눔, 성주 사드 반대 활동,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등 우리 사회의 수많은 고통과 상처의 현장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빈들청년공동체는 2015년 겨울부터 매주 토요일 3~5시까지 노란 리본 나눔과 세월호 기억 관련 피켓팅을 벌이고 있다. 따로 약속은 하지 않으며, 시간이 되는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나오는데 많게는 7명에서 적게는 3명이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2017715일 토요일, 후덥지근한 으능정이 거리에서 노란 리본을 나눠주고 있는 빈들청년공동체 중 남누리, 원찬호, 박정현 씨를 만났다.

 

Sorry Christmas

 

(남누리 씨) “2015년 말 쯤에 저희 교회 청년부 주관으로 세월호 미수습자(당시 미수습자) 부모님의 간담회를 열었어요. 보다 많은 청년이 와서 듣고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보물도 1천 장 가량 만들어 나눠주고, 각 대학교와 학생회 등을 열심히 다니면서 간담회를 알렸죠. 그런데 알리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거부 반응도 보였고, 무관심도 느꼈어요. ‘,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이렇게 멀어졌구나.’ 싶었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빈들 청년들이 모여서 고민을 했어요. 그때 유랑자 이명영 님이 노란 리본 나눔을 하는 걸 알게 됐고, 매주 토요일 마다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빈들청년공동체는 2015년부터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서 유랑자 이명영 씨와 노란리본 나눔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첫날은 공교롭게도 1224,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아 거리마다 온 세상에 평화와 축복을 기리는 그날. 남누리 씨는 거리에서 슬픈 크리스마스를 느꼈다.

 

“Merry Christmas라고 하잖아요. 크리스마스만 되면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져요. 거리의 분위기도 좋고, 캐럴도 울리고요. 가족들끼리 모여서 촛불도 켜고, 밥도 먹고 그 날만큼은 평안한 하루를 보내는 날이에요. 그런데 1224일 처음으로 거리에 나와 세월호를 알리며 제가 느낀 기분은 안타까움이었어요.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슬펐어요. 저에게는 너무나 슬픈 Sorry Christmas이었어요.”

 


 

 

 

 

 

냉담 속에 찾은 희망

 

세상 사람들의 세월호에 대한 무관심의 크기만큼, 12월의 날씨처럼. 첫 리본 나눔을 하던 날은 매우 추웠다는 한 마디를 먼저 전한 원찬호 씨. 원찬호 씨는 첫 리본 나눔의 기억을 냉담 속에 찾은 희망이라고 밝혔다.

 

처음에요? 매우 추웠어요. (웃음) 그런데 막상 피켓팅을 했을 때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고 가시고, 리본도 받더라고요. 조금의 희망을 본 것 같아요. 아예 무관심할 줄 알았는데, 저희의 세월호 행동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꽤 있는 걸 보니 희망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 희망을 따라서 여기 까지 온 것 같습니다.”

 

(박정현 씨) “올해 초였는데요. 어떤 분이 노란 리본을 몇 십 개 씩 달라고 하셨어요. 알고 보니 선생님이시더라고요. 자기 학생들하고 함께 나누면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싶데요.그 선생님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예전에는 학교에서 노란리본을 못 달게 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조금씩 사회가 변한 거 에요.”

오랫동안 자발적으로 세월호 기억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세월호 이후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모양이다. 세월호를 철저하게 배제 했던 정부, 그로 인한 사람들의 냉담과 무관심, 하지만 결국엔 드러내지 못했을 뿐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는 희망이다. 빈들청년공동체도 마찬가지였다. 27개월 간 사회의 냉담이 이어진 거리에 서, 작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세월호는 기억과의 투쟁일지도...

 

잠깐 눈감으면 멀어지는 것이 인간의 기억이다. 그래서 남누리 씨에게 세월호는 망각과의 투쟁이다. 남누리씨는 사실 세월호 사고를 군대에서 접했다. 2014416, 초년병시절이었고 최전방에서 근무하다 뉴스를 접했다. ‘사고가 크게 났구나.’ 정도만 생각했단다. 2015년 제대를 한 후 알게 된 사실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사실 맨 처음 일어났을 때 이렇게 심각한 일인지 몰랐어요. 최전방에 있어서 교대근무를 했으니까 TV도 자주 못 봤고요. 그러고 제대후 사회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세월호얘기를 하니까, 왜 그러지? 했었어요. 사고 당시 뉴스를 찾아봤죠. 세월호 주위에 헬기가 돌아다니고, 해경은 멀찌감치 구조정에 있고, 망망대해에 세월호만 떠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한 명이라도 구해야 되는데 해경은 아무것도 안했을까? 그게 저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혼란스럽고 힘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 건지? 계속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됐어요. 어찌 보면 세월호에 빚을 진거죠. 그로 인해 세상에 눈을 떴으니까요.”

 

매주 토요일, 청년들이 황금 같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낸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무려 27개월 간 이어왔기 때문일까? 친구와의 약속도, 중요한 일정도 토요일은 재끼고일정을 잡을 정도로 일상이 되었다는 이들. 빈들청년들에게 여유와 에너지가 느껴졌다. 사람들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고 세월호가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이들은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고 거리에 나올 것 같다는 묘한 믿음이 느껴졌다.

 

(남누리씨) “그래도 빨리 끝나면 좋겠죠. 미수습자들도 돌아오고, 진실도 밝혀지고요. 사실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어요. 처음 시작할 때, 지금까지 올 거라고 생각했다면 못했을지도 몰라요. 미수습자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온 게 벌써 두 번째 겨울을 지나 여름을 맞았습니다. 세월호는 저에게 기억과의 투쟁이에요. 기억이라는 게 잠깐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 새 멀리 도망가 버리잖아요. 그래서 매 순간마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고 노력해요. ‘안일해지지 말아야지. 세월호를 잊지 않아야지.’하는 마음이요. 세월호 리본 나눔은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몸부림이랄까요. 저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투쟁이에요.”

 

시커먼 구름과 구름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빈들청년들에서 시민의 손으로 전해진 노란 리본이 빛에 반짝여 흔들거렸다. 노란 리본이 온 몸으로 질문하는 듯 했다. ‘지금도 잊지 않고 있냐고.’, ‘정말 잊지 않고 있냐고.’ 빈들 청년들이 매주 토요일, 그 자리에 서 있는 이유일 것이다.

 

(원찬호 씨) “잘못된 사회에 맞서 제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제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거리로 나오게 된 거죠. 세월호는 더 이상 하나의 세월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의 많은 잘못된 구조가 사실 세월호 인거죠.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것, 세월호 행동을 하는 것 또한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정현 씨) 제가 거리로 나온 건, 안산 사는 친척 동생 때문이었어요. 동생의 중학교 동창 두 명이 세월호 희생자였거든요. 그리고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어요. 미수습자들도 여전히 배 안에 있고요. 그래서 오늘도 리본을 들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스텔라 데이지호 실종 선원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주황 리본도 나눠주고 있어요. 스텔라 데이지호에서 아직 찾지 못한 구병벌이 오렌지색이라고 해요. 지난주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00일이 됐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가족을 기다리는 분들과 세월호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분들의 마음은 같지 않을까요?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하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섭니다.”

 

(남누리 씨) 저한테 세월호는 기억을 붙잡는 노력입니다. ‘기억합니다.’,‘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세월호 앞에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잊지 않았는지, 나는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지 되돌아보게 되거든요. 노란 리본 또한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 배지를 다는 행동은 아직도 잊지 않았니?’라는 물음이고, 또 물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나누는 노란 리본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세월호와 기억의 메시지를 다시 던져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의미대로 빈들청년공동체는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 섰다. 특별히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한 거리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노란 리본과 기억의 물음을 던져 보고 싶다고도 했다. 이들의 물음에, 우리가 답할 차례다. 빈들청년들에게 받은 노란 리본과 주황색 리본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다시 묻는다. “우리는 잊지 않고 있냐고?”

 

) 빈들청년공동체에서 특별히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거리에서 빵도 주시고, 음료수도 주시며 응원해 주신 분들. 그리고 노란 리본을 지금까지 만들어주신 국민TV 대전 지협분들, 노란 리본 아저씨 유랑자 이명영 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들이 노란 리본을 만들어주셨고, 거리에 서주셨기 때문에 저희도 꾸준히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활동은 참 신기합니다. 혼자서는 절대 이어갈 수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하고, 그 기억의 끈이 이어져서 또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함께 기억의 끈을 이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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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7.06.16 17:37

그들은 외면하고 회피했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2017년 6월

 

                                                        그들은 외면하고 회피했다

 

 아쉬움이 많았다. 한계도 많았다. 역할과 권한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특조위는 운영 기간 동안 정부와 수시로 갈등을 빚었으며 사실상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지난 2014년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될 당시에 특조위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지난해 특조위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조사관들은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4·16세월호조사관 31명은 세월호 특조위가 해산된 뒤에도 서울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민간인 신분으로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그 활동의 결과가 <외면하고 회피했다>는 책으로 출간됐다. 발간일은 지난 63일이다.

 

 책의 공동 저자로 표기된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은 세월호특조위에서 근무했던 조사관들이 민간인 신분으로 조직한 후속 모임이다. 세월호진상규명법에 따라 만들어진 세월호특조위는 20158월이 되어서야 예산과 인력을 갖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6630일 박근혜 정부는 조사 활동을 강제 종료시켰고, 이후 세월호특조위는 단식 농성, 조사 활동, 3차 청문회까지 진행하면서 부당한 폐쇄에 항의했다. 결국 930일 이후 기본 업무 시스템이 정지되고, 사무실 출입조차 불가능해지면서 세월호특조위는 법이 보장하는 활동 기간 1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국가 기구로서의 활동을 마치게 되었고, 이후 진상 규명 활동을 지속할 의지가 있는 조사관 31명이 결의해 후속 모임을 만든 것이다.

 

외면하고 회피한 책임의 주체들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은 현재까지 참사 당일 정부 대응 체계 정리’, ‘세월호 인양 과정 점검’, ‘사고 원인등 조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책의 일부를 살펴본다.

 

해경 본청,서해청, 목포서 상황실 모두 세월호와 직접 교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세곳 중 어느 한곳도 세월호와 직접 교신을 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세월호와 교신한 곳은 진도 VTS가 유일했다(오전 96분부터 937분까지였다. 목포서에 신고가 접수되기 전인 855분 세월호는 처음 사고 신고를 위해 제주 VTS를 호출했고, 이때 한 차례 교신했다.) 상급부서인 그들이 직접 나서서 세월호의 상황을 즉시 파악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아니라도 누구든 지시하면 된다고 미루어놓고서 막상 아무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다른 부처, 다른 직원들에게 그냥 구조를 맡겨두고 있었다. 해경본청과 서해청, 목포서가 TRS와 상황정보문자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한쪽에서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공유되는 정보망 안에 투입하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휘부가 적극적인 확인 조치를 하지 않은 탓이 크다

 

특조위 활동을 김선애 전 조사관은 세월호특조위에 근무할 당시 조사관들은 공무원들의 노골적인 방해 행위를 경험한 바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축소, 왜곡하거나, 근대화의 병폐로 치부하는 정관계 인사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전 조사관이 출간에 즈음한 말을 이렇게 적었다.

 

조사를 하면서 우리의 뇌리에는 세월호 선내 승객들이 질서를 유지하며 정부를 끝까지 믿고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신고했던 모습, 울고 있는 5세 어린아이를 보듬어 끝내 같이 살아난 학생들, 세월호 선미에 달라붙어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눈이 마주친 그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해 그 죄책감으로 술에 의탁하며 살아가는 어부, 정부를 대신해 희생자를 수습했으나, 작업중 동료 잠수사가 사망하자 그 책임을 민간에게 전가하는 해경을 보면서....”

 

 

제대로 지휘하지 않았다

 

외면하고 회피한 책임의 주체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조사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 책을 펴낸 출판사의 리뷰를 보면 그 책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리뷰의 일부를 옮긴다.

 

국민의 안전 불감증이 재난을 부른 것이 아니다. 탈출하지 못한 친구를 찾으러 다시 배 안에 들어간 학생의 책임감이 참사 당일 정부 기관이나 관료들에게는 부재했기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구조 기관들은 참사 당일 내 관할, 내 소관이 아니라는 이류로 자신들은 몸을 빼면서 다른 곳에 책임을 떠넘겼다. 참사 당일 승객들의 신고 전화가 정부 각 기관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이 축소되고 왜곡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구조 기관의 지휘부는 서로 소임을 미루었고, 일선 현장의 구조자들은 문책을 피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국가의 책임이 분명하다. 최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영춘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에서 안전관리 부실과 구조 미흡 등 국가의 책임이 크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김 후보자가 지난 12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인사청문위원에게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를 살펴보면 "선박·운항 안전관리를 철저히 감독하지 못해 참사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점과 사고 당시 구조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한 점에 국가의 책임이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미수습자 수습을 하루빨리 마무리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 2기 특조위의 출범으로 의혹과 의심을 풀어야 한다. 물론 2기 특조위가 출범하기까지는 거쳐야 하는 난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도 지켜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고 비하하는 일부 인사들의 반발도 넘어야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얼마나 호응을 해줄지가 관건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수백만명이 서명에 참여했고, 1차로 취합된 350만명의 서명부가 국회에 전달된 게 2014715일이다. 이후에 난항 끝에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것이 같은 해 117일이다. 사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특별법이 의결된 것만 보더라도 2기 특조위의 출범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방해하는 세력은 도처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참사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고, 조사는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을 외면하고 회피했는지확실히 밝히는 게 살아남은 자의 도리이다.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에서 펴낸 책이 그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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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7.05.16 17:38

시로 기억하는 단원고의 별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숨쉬는 4.16> 20175

 

단원고의 별들, 기억과 만나다

- 단원고 희생자 육필 기억시전을 찾아서 -

 

새정부가 출범을 했다. 정권이 바뀌었다.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취임초기라 그런지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은 연일 뉴스의 주요 관심사다. 소통의 행보도 화제가 되고 있다.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스승의 날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단원고 기간제 교사 김초원·이지혜씨에 대한 순직 절차를 지시했다. 그동안의 외침에 대한 답변이 나오기 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교육단체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번 대통령의 순직 검토 지시를 계기로, 우리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이 사라지를 소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새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진실규명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치유의 시작이다. 사고의 원인과 의혹들이 밝혀지지 않으면 가슴에 패인 슬픔을 달래기 어려울 것이다. 진실규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기억의 시편들

기억은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고 이 기억들로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를 바꿀 수 있답니다. 모든 사람들은 좋은 기억들은 오래 간직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프고,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세월호 참사는 기억에서 지우고자 합니다. 기억에서 지우지 마세요. 우리 모두는 사라지고 잊혀지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들을 매일 매일 되새김을 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 아이들의 온기와 손길을 느끼며 우리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 답니다. 우리 모두는 밤하늘을 수놓은 밝은 별이 된 아이들의 시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슬픔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 단원고 희생자 261인의 한명 한명의 이름과 꿈, 슬픔과 추억을 담은 기억시가 있습니다. 벽에 가만히 기대어 눈을 감고 시를 들어봅니다. 가슴 속으로 그리움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옵니다. 한명 한명이 오늘도 내일도 내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아름다운 추억, 세상에서 꿈꾸었을 미래와 희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종시 교육청 로비에 들어서면 교육문예창작회와 함께하는 단원고 희생자 육필 기억시전시회가 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인용한 문구는 전시를 소개하는 팜플릿 내용의 일부다. 이 기억시 전시회는 세월호 참사 3주기 기억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미 전국 여러 곳에서 진행됐다. 세종시 교육청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과 선생님들에 대한 추모의 뜻을 기리고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전시를 마련했다. 시를 쓴 이들은 교육문예창작회 소속의 교사시인들이다.

 

희생 학생들의 특징과 꿈을 형상화한 시를 읽고 있으면 희생자들의 애틋한 사연이 가슴깊이 밀려온다.

늦은 밤/ 알바를 마치고 돌아온 딸이 목욕탕을 가자며 / 손목을 잡아 끌었지 / 마지못해 따라나선 길이었지만 / 그래도 엄만 즐거웠어/ 다정하게 목욕을 마친 다음 / 네가 선물로 준 핸드폰 케이스도 마음에 들고 / 네가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전해준 것도 고마웠어” (박일환 시인의 시 너와 함께 걷던 봄밤의 추억중에서)

2학년 2반 강수정 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미어지는 엄마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엄마의 마음을 대신해 네 손목 한 번 더 잡아볼 걸이라며 돌아오지 못한 딸에 대한 진한 슬픔을 전한다.

 

친구들 가리거나 무시하지 않고 어울리고 / 벌써 알바해서 홀로 서는 법을 익히는 모습 든든했다 /그만하면 되었다고, / 세상사는 연습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 다독여 주는 어머니를 친구들이 부러워했는데 / 건우는 그렇게 세상에 발 디딜 채비하는 중이었다” (배창환 시인의 시 단원고 김건우중에서)

시인은 건우를 대했던 가족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인데, 벌써 떠나간 열여덟 청춘을 추모했다. 한줄 한줄 읽을 때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모두가 돌아와야 한다

엄마는 다윤이가 좋아하던 / 민트색 옷을 입고 다닌다는구나 / 깜비는 화랑유원지 분향소 /다윤이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구나 / 서윤이 언니는 다윤이에게 줄 / 비스트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는구나 /그러니 다윤아 / 이제 그만 나오너라 / 네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물속에서 / 어찌 이리 오래 있단 말이냐” (박일환 시인의 시 이제 그만 나오너라중에서) 미수습자 허다윤 학생을 생각하는 시를 읽고 있으면 세월호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고통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목포 신항만 부두에서는 세월호 선체 수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인 단원고 학생 머물던 객실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DNA 분석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누구의 유골인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다만 미수습된 이들의 유품과 유골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 미수습자의 가족들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렀다. 녹아가는 가슴으로 하루 하루를 버텨왔다. 많은 이들이 함께 슬픔을 나누었고,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를 읽으며 우리는 하늘로 올라간 안타까운 청춘들과 가족의 애달픈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모두가 돌아오는 날, 또 한 번 하늘을 뒤흔드는 통곡이 세상을 덮을 것이다. 그 울음을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일, 그게 살아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 일이다. ‘단원고 희생자 육필 기억시 전시회531일까지 세종시교육청 1층 로비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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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7.04.16 20:55

끝나지 않는 3년상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 숨쉬는 4.16> 2016/4월

 

2014년 7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글로 치르는 3년상으로 생각하며 매달 16일 마다 세월호 관련 내용을 원고로 썼습니다

어느새 3년, 2017년 4월 16일을 맞았습니다. 여전히 미수습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진실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3년상을 끝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매달 16일이 되면 수 많은 사연들을 그려보며 가슴에 안겠습니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며,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잊지 않겠습니다.

망각이 죄악임을 항상 살피겠습니다. 지난 3년간 연재한 내용은 <4.16 기억의 숨>이라는 한권의 책으로 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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