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7.07.16 21:36

기억과의 투쟁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2017년 7월

 

세월호는 기억과의 투쟁입니다.

-매주 토요일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서 리본 나누는 빈들청년공동체 -

 

2017714. 33개월 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714, 인사혁신처는 위험직무 순직 보상심사위를 열었다. 단원고 교사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의 순직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7일에는 세월호 선체조사위가 원점부터 재조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너무나 당연하게 했어야 할 일들이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늦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기억이 사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 세월호 아이들의 기사를 보고도 무심코 넘어갈 때, 광화문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전히 있음을 잊고 있었을 때... 기억이 너무 무뎌진 건 아닐까? 가방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을 다시 매만져 보라는 신호다.

 

 

기억의 등대, 빈들청년들의 노란 리본 나눔

 

빈들청년공동체의 노란리본 나눔&피켓 활동은 가물가물해져가는 세월호에 대한 기억의 저편에서 우리를 붙잡아주기 위한 등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빈들청년공동체는 대전 빈들교회가 가진 방향성과 가치를 이어받아, 세상 속에서 함께 실천하고 공유하는 청년 모임이다. 목회나 복음 활동 뿐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특히 세월호 리본 나눔, 성주 사드 반대 활동,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등 우리 사회의 수많은 고통과 상처의 현장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빈들청년공동체는 2015년 겨울부터 매주 토요일 3~5시까지 노란 리본 나눔과 세월호 기억 관련 피켓팅을 벌이고 있다. 따로 약속은 하지 않으며, 시간이 되는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나오는데 많게는 7명에서 적게는 3명이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2017715일 토요일, 후덥지근한 으능정이 거리에서 노란 리본을 나눠주고 있는 빈들청년공동체 중 남누리, 원찬호, 박정현 씨를 만났다.

 

Sorry Christmas

 

(남누리 씨) “2015년 말 쯤에 저희 교회 청년부 주관으로 세월호 미수습자(당시 미수습자) 부모님의 간담회를 열었어요. 보다 많은 청년이 와서 듣고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보물도 1천 장 가량 만들어 나눠주고, 각 대학교와 학생회 등을 열심히 다니면서 간담회를 알렸죠. 그런데 알리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거부 반응도 보였고, 무관심도 느꼈어요. ‘,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이렇게 멀어졌구나.’ 싶었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빈들 청년들이 모여서 고민을 했어요. 그때 유랑자 이명영 님이 노란 리본 나눔을 하는 걸 알게 됐고, 매주 토요일 마다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빈들청년공동체는 2015년부터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서 유랑자 이명영 씨와 노란리본 나눔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첫날은 공교롭게도 1224,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아 거리마다 온 세상에 평화와 축복을 기리는 그날. 남누리 씨는 거리에서 슬픈 크리스마스를 느꼈다.

 

“Merry Christmas라고 하잖아요. 크리스마스만 되면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져요. 거리의 분위기도 좋고, 캐럴도 울리고요. 가족들끼리 모여서 촛불도 켜고, 밥도 먹고 그 날만큼은 평안한 하루를 보내는 날이에요. 그런데 1224일 처음으로 거리에 나와 세월호를 알리며 제가 느낀 기분은 안타까움이었어요.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슬펐어요. 저에게는 너무나 슬픈 Sorry Christmas이었어요.”

 


 

 

 

 

 

냉담 속에 찾은 희망

 

세상 사람들의 세월호에 대한 무관심의 크기만큼, 12월의 날씨처럼. 첫 리본 나눔을 하던 날은 매우 추웠다는 한 마디를 먼저 전한 원찬호 씨. 원찬호 씨는 첫 리본 나눔의 기억을 냉담 속에 찾은 희망이라고 밝혔다.

 

처음에요? 매우 추웠어요. (웃음) 그런데 막상 피켓팅을 했을 때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고 가시고, 리본도 받더라고요. 조금의 희망을 본 것 같아요. 아예 무관심할 줄 알았는데, 저희의 세월호 행동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꽤 있는 걸 보니 희망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 희망을 따라서 여기 까지 온 것 같습니다.”

 

(박정현 씨) “올해 초였는데요. 어떤 분이 노란 리본을 몇 십 개 씩 달라고 하셨어요. 알고 보니 선생님이시더라고요. 자기 학생들하고 함께 나누면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싶데요.그 선생님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예전에는 학교에서 노란리본을 못 달게 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조금씩 사회가 변한 거 에요.”

오랫동안 자발적으로 세월호 기억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세월호 이후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모양이다. 세월호를 철저하게 배제 했던 정부, 그로 인한 사람들의 냉담과 무관심, 하지만 결국엔 드러내지 못했을 뿐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는 희망이다. 빈들청년공동체도 마찬가지였다. 27개월 간 사회의 냉담이 이어진 거리에 서, 작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세월호는 기억과의 투쟁일지도...

 

잠깐 눈감으면 멀어지는 것이 인간의 기억이다. 그래서 남누리 씨에게 세월호는 망각과의 투쟁이다. 남누리씨는 사실 세월호 사고를 군대에서 접했다. 2014416, 초년병시절이었고 최전방에서 근무하다 뉴스를 접했다. ‘사고가 크게 났구나.’ 정도만 생각했단다. 2015년 제대를 한 후 알게 된 사실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사실 맨 처음 일어났을 때 이렇게 심각한 일인지 몰랐어요. 최전방에 있어서 교대근무를 했으니까 TV도 자주 못 봤고요. 그러고 제대후 사회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세월호얘기를 하니까, 왜 그러지? 했었어요. 사고 당시 뉴스를 찾아봤죠. 세월호 주위에 헬기가 돌아다니고, 해경은 멀찌감치 구조정에 있고, 망망대해에 세월호만 떠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한 명이라도 구해야 되는데 해경은 아무것도 안했을까? 그게 저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혼란스럽고 힘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 건지? 계속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됐어요. 어찌 보면 세월호에 빚을 진거죠. 그로 인해 세상에 눈을 떴으니까요.”

 

매주 토요일, 청년들이 황금 같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낸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무려 27개월 간 이어왔기 때문일까? 친구와의 약속도, 중요한 일정도 토요일은 재끼고일정을 잡을 정도로 일상이 되었다는 이들. 빈들청년들에게 여유와 에너지가 느껴졌다. 사람들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고 세월호가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이들은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고 거리에 나올 것 같다는 묘한 믿음이 느껴졌다.

 

(남누리씨) “그래도 빨리 끝나면 좋겠죠. 미수습자들도 돌아오고, 진실도 밝혀지고요. 사실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어요. 처음 시작할 때, 지금까지 올 거라고 생각했다면 못했을지도 몰라요. 미수습자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온 게 벌써 두 번째 겨울을 지나 여름을 맞았습니다. 세월호는 저에게 기억과의 투쟁이에요. 기억이라는 게 잠깐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 새 멀리 도망가 버리잖아요. 그래서 매 순간마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고 노력해요. ‘안일해지지 말아야지. 세월호를 잊지 않아야지.’하는 마음이요. 세월호 리본 나눔은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몸부림이랄까요. 저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투쟁이에요.”

 

시커먼 구름과 구름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빈들청년들에서 시민의 손으로 전해진 노란 리본이 빛에 반짝여 흔들거렸다. 노란 리본이 온 몸으로 질문하는 듯 했다. ‘지금도 잊지 않고 있냐고.’, ‘정말 잊지 않고 있냐고.’ 빈들 청년들이 매주 토요일, 그 자리에 서 있는 이유일 것이다.

 

(원찬호 씨) “잘못된 사회에 맞서 제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제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거리로 나오게 된 거죠. 세월호는 더 이상 하나의 세월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의 많은 잘못된 구조가 사실 세월호 인거죠.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것, 세월호 행동을 하는 것 또한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정현 씨) 제가 거리로 나온 건, 안산 사는 친척 동생 때문이었어요. 동생의 중학교 동창 두 명이 세월호 희생자였거든요. 그리고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어요. 미수습자들도 여전히 배 안에 있고요. 그래서 오늘도 리본을 들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스텔라 데이지호 실종 선원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주황 리본도 나눠주고 있어요. 스텔라 데이지호에서 아직 찾지 못한 구병벌이 오렌지색이라고 해요. 지난주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00일이 됐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가족을 기다리는 분들과 세월호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분들의 마음은 같지 않을까요?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하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섭니다.”

 

(남누리 씨) 저한테 세월호는 기억을 붙잡는 노력입니다. ‘기억합니다.’,‘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세월호 앞에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잊지 않았는지, 나는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지 되돌아보게 되거든요. 노란 리본 또한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 배지를 다는 행동은 아직도 잊지 않았니?’라는 물음이고, 또 물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나누는 노란 리본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세월호와 기억의 메시지를 다시 던져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의미대로 빈들청년공동체는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 섰다. 특별히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한 거리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노란 리본과 기억의 물음을 던져 보고 싶다고도 했다. 이들의 물음에, 우리가 답할 차례다. 빈들청년들에게 받은 노란 리본과 주황색 리본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다시 묻는다. “우리는 잊지 않고 있냐고?”

 

) 빈들청년공동체에서 특별히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거리에서 빵도 주시고, 음료수도 주시며 응원해 주신 분들. 그리고 노란 리본을 지금까지 만들어주신 국민TV 대전 지협분들, 노란 리본 아저씨 유랑자 이명영 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들이 노란 리본을 만들어주셨고, 거리에 서주셨기 때문에 저희도 꾸준히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활동은 참 신기합니다. 혼자서는 절대 이어갈 수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하고, 그 기억의 끈이 이어져서 또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함께 기억의 끈을 이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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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7.06.16 17:37

그들은 외면하고 회피했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2017년 6월

 

                                                        그들은 외면하고 회피했다

 

 아쉬움이 많았다. 한계도 많았다. 역할과 권한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특조위는 운영 기간 동안 정부와 수시로 갈등을 빚었으며 사실상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지난 2014년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될 당시에 특조위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지난해 특조위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조사관들은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4·16세월호조사관 31명은 세월호 특조위가 해산된 뒤에도 서울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민간인 신분으로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그 활동의 결과가 <외면하고 회피했다>는 책으로 출간됐다. 발간일은 지난 63일이다.

 

 책의 공동 저자로 표기된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은 세월호특조위에서 근무했던 조사관들이 민간인 신분으로 조직한 후속 모임이다. 세월호진상규명법에 따라 만들어진 세월호특조위는 20158월이 되어서야 예산과 인력을 갖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6630일 박근혜 정부는 조사 활동을 강제 종료시켰고, 이후 세월호특조위는 단식 농성, 조사 활동, 3차 청문회까지 진행하면서 부당한 폐쇄에 항의했다. 결국 930일 이후 기본 업무 시스템이 정지되고, 사무실 출입조차 불가능해지면서 세월호특조위는 법이 보장하는 활동 기간 1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국가 기구로서의 활동을 마치게 되었고, 이후 진상 규명 활동을 지속할 의지가 있는 조사관 31명이 결의해 후속 모임을 만든 것이다.

 

외면하고 회피한 책임의 주체들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은 현재까지 참사 당일 정부 대응 체계 정리’, ‘세월호 인양 과정 점검’, ‘사고 원인등 조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책의 일부를 살펴본다.

 

해경 본청,서해청, 목포서 상황실 모두 세월호와 직접 교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세곳 중 어느 한곳도 세월호와 직접 교신을 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세월호와 교신한 곳은 진도 VTS가 유일했다(오전 96분부터 937분까지였다. 목포서에 신고가 접수되기 전인 855분 세월호는 처음 사고 신고를 위해 제주 VTS를 호출했고, 이때 한 차례 교신했다.) 상급부서인 그들이 직접 나서서 세월호의 상황을 즉시 파악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아니라도 누구든 지시하면 된다고 미루어놓고서 막상 아무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다른 부처, 다른 직원들에게 그냥 구조를 맡겨두고 있었다. 해경본청과 서해청, 목포서가 TRS와 상황정보문자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한쪽에서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공유되는 정보망 안에 투입하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휘부가 적극적인 확인 조치를 하지 않은 탓이 크다

 

특조위 활동을 김선애 전 조사관은 세월호특조위에 근무할 당시 조사관들은 공무원들의 노골적인 방해 행위를 경험한 바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축소, 왜곡하거나, 근대화의 병폐로 치부하는 정관계 인사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전 조사관이 출간에 즈음한 말을 이렇게 적었다.

 

조사를 하면서 우리의 뇌리에는 세월호 선내 승객들이 질서를 유지하며 정부를 끝까지 믿고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신고했던 모습, 울고 있는 5세 어린아이를 보듬어 끝내 같이 살아난 학생들, 세월호 선미에 달라붙어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눈이 마주친 그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해 그 죄책감으로 술에 의탁하며 살아가는 어부, 정부를 대신해 희생자를 수습했으나, 작업중 동료 잠수사가 사망하자 그 책임을 민간에게 전가하는 해경을 보면서....”

 

 

제대로 지휘하지 않았다

 

외면하고 회피한 책임의 주체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조사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 책을 펴낸 출판사의 리뷰를 보면 그 책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리뷰의 일부를 옮긴다.

 

국민의 안전 불감증이 재난을 부른 것이 아니다. 탈출하지 못한 친구를 찾으러 다시 배 안에 들어간 학생의 책임감이 참사 당일 정부 기관이나 관료들에게는 부재했기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구조 기관들은 참사 당일 내 관할, 내 소관이 아니라는 이류로 자신들은 몸을 빼면서 다른 곳에 책임을 떠넘겼다. 참사 당일 승객들의 신고 전화가 정부 각 기관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이 축소되고 왜곡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구조 기관의 지휘부는 서로 소임을 미루었고, 일선 현장의 구조자들은 문책을 피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국가의 책임이 분명하다. 최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영춘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에서 안전관리 부실과 구조 미흡 등 국가의 책임이 크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김 후보자가 지난 12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인사청문위원에게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를 살펴보면 "선박·운항 안전관리를 철저히 감독하지 못해 참사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점과 사고 당시 구조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한 점에 국가의 책임이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미수습자 수습을 하루빨리 마무리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 2기 특조위의 출범으로 의혹과 의심을 풀어야 한다. 물론 2기 특조위가 출범하기까지는 거쳐야 하는 난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도 지켜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고 비하하는 일부 인사들의 반발도 넘어야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얼마나 호응을 해줄지가 관건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수백만명이 서명에 참여했고, 1차로 취합된 350만명의 서명부가 국회에 전달된 게 2014715일이다. 이후에 난항 끝에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것이 같은 해 117일이다. 사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특별법이 의결된 것만 보더라도 2기 특조위의 출범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방해하는 세력은 도처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참사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고, 조사는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을 외면하고 회피했는지확실히 밝히는 게 살아남은 자의 도리이다.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모임에서 펴낸 책이 그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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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7.05.16 17:38

시로 기억하는 단원고의 별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숨쉬는 4.16> 20175

 

단원고의 별들, 기억과 만나다

- 단원고 희생자 육필 기억시전을 찾아서 -

 

새정부가 출범을 했다. 정권이 바뀌었다.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취임초기라 그런지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은 연일 뉴스의 주요 관심사다. 소통의 행보도 화제가 되고 있다.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스승의 날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단원고 기간제 교사 김초원·이지혜씨에 대한 순직 절차를 지시했다. 그동안의 외침에 대한 답변이 나오기 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교육단체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번 대통령의 순직 검토 지시를 계기로, 우리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이 사라지를 소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새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진실규명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치유의 시작이다. 사고의 원인과 의혹들이 밝혀지지 않으면 가슴에 패인 슬픔을 달래기 어려울 것이다. 진실규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기억의 시편들

기억은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고 이 기억들로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를 바꿀 수 있답니다. 모든 사람들은 좋은 기억들은 오래 간직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프고,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세월호 참사는 기억에서 지우고자 합니다. 기억에서 지우지 마세요. 우리 모두는 사라지고 잊혀지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들을 매일 매일 되새김을 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 아이들의 온기와 손길을 느끼며 우리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 답니다. 우리 모두는 밤하늘을 수놓은 밝은 별이 된 아이들의 시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슬픔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 단원고 희생자 261인의 한명 한명의 이름과 꿈, 슬픔과 추억을 담은 기억시가 있습니다. 벽에 가만히 기대어 눈을 감고 시를 들어봅니다. 가슴 속으로 그리움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옵니다. 한명 한명이 오늘도 내일도 내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아름다운 추억, 세상에서 꿈꾸었을 미래와 희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종시 교육청 로비에 들어서면 교육문예창작회와 함께하는 단원고 희생자 육필 기억시전시회가 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인용한 문구는 전시를 소개하는 팜플릿 내용의 일부다. 이 기억시 전시회는 세월호 참사 3주기 기억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미 전국 여러 곳에서 진행됐다. 세종시 교육청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과 선생님들에 대한 추모의 뜻을 기리고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전시를 마련했다. 시를 쓴 이들은 교육문예창작회 소속의 교사시인들이다.

 

희생 학생들의 특징과 꿈을 형상화한 시를 읽고 있으면 희생자들의 애틋한 사연이 가슴깊이 밀려온다.

늦은 밤/ 알바를 마치고 돌아온 딸이 목욕탕을 가자며 / 손목을 잡아 끌었지 / 마지못해 따라나선 길이었지만 / 그래도 엄만 즐거웠어/ 다정하게 목욕을 마친 다음 / 네가 선물로 준 핸드폰 케이스도 마음에 들고 / 네가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전해준 것도 고마웠어” (박일환 시인의 시 너와 함께 걷던 봄밤의 추억중에서)

2학년 2반 강수정 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미어지는 엄마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엄마의 마음을 대신해 네 손목 한 번 더 잡아볼 걸이라며 돌아오지 못한 딸에 대한 진한 슬픔을 전한다.

 

친구들 가리거나 무시하지 않고 어울리고 / 벌써 알바해서 홀로 서는 법을 익히는 모습 든든했다 /그만하면 되었다고, / 세상사는 연습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 다독여 주는 어머니를 친구들이 부러워했는데 / 건우는 그렇게 세상에 발 디딜 채비하는 중이었다” (배창환 시인의 시 단원고 김건우중에서)

시인은 건우를 대했던 가족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인데, 벌써 떠나간 열여덟 청춘을 추모했다. 한줄 한줄 읽을 때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모두가 돌아와야 한다

엄마는 다윤이가 좋아하던 / 민트색 옷을 입고 다닌다는구나 / 깜비는 화랑유원지 분향소 /다윤이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구나 / 서윤이 언니는 다윤이에게 줄 / 비스트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는구나 /그러니 다윤아 / 이제 그만 나오너라 / 네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물속에서 / 어찌 이리 오래 있단 말이냐” (박일환 시인의 시 이제 그만 나오너라중에서) 미수습자 허다윤 학생을 생각하는 시를 읽고 있으면 세월호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고통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목포 신항만 부두에서는 세월호 선체 수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인 단원고 학생 머물던 객실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DNA 분석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누구의 유골인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다만 미수습된 이들의 유품과 유골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 미수습자의 가족들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렀다. 녹아가는 가슴으로 하루 하루를 버텨왔다. 많은 이들이 함께 슬픔을 나누었고,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를 읽으며 우리는 하늘로 올라간 안타까운 청춘들과 가족의 애달픈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모두가 돌아오는 날, 또 한 번 하늘을 뒤흔드는 통곡이 세상을 덮을 것이다. 그 울음을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일, 그게 살아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 일이다. ‘단원고 희생자 육필 기억시 전시회531일까지 세종시교육청 1층 로비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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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7.04.16 20:55

끝나지 않는 3년상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 숨쉬는 4.16> 2016/4월

 

2014년 7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글로 치르는 3년상으로 생각하며 매달 16일 마다 세월호 관련 내용을 원고로 썼습니다

어느새 3년, 2017년 4월 16일을 맞았습니다. 여전히 미수습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진실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3년상을 끝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매달 16일이 되면 수 많은 사연들을 그려보며 가슴에 안겠습니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며,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잊지 않겠습니다.

망각이 죄악임을 항상 살피겠습니다. 지난 3년간 연재한 내용은 <4.16 기억의 숨>이라는 한권의 책으로 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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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2017.03.16 15:41

스토리펀딩으로 만나는 세월호의 기억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 2017년 3월

 

스토리펀딩으로 만나는 세월호의 슬픔

-4.16 기억의 숨 출간 프로젝트 -

 

 

탄핵과 세월호 참사

추운 겨울을 지나는 동안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의 정치는 시민의 정치였고 당당한 요구였다. 탄핵 찬반의 갈등도 깊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로 가는 여정은 멈추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나왔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대규모 인파가 몰렸지만 평화로웠다.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에 대한 심판은 대통령 파면으로 일단락됐다.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직무의 성실성 문제를 탄핵사유로 인용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탄핵인용의 사유로 들지는 않았지만 보충의견으로 낸 부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이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지만, 미래의 대통령들이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상실되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탄핵심판 선고가 난 이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는 “4.16연대의 다음과 같은 논평을 냈다.

헌재는 대통령이 당일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는지 여부가 탄핵심판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청와대가 당일 행적에 대한 기록과 정보를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특검 등이 당일 행적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헌재가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렀다는 사실 확인만으로 탄핵근거로 삼기는 쉽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로써 모든 불법적 편법적 권력수단을 동원해서 진실을 가려온 박근혜의 권한남용이 특조위 조사도 특검수사도 헌재 탄핵심판도 모면하는데 통했다는, 법치의 관점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선례가 남겨지게 되었다. 세월호 특조위 조사가 방해받지 않았다면, 특검수사가 중단되지 않았다면 헌재의 판결에 다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을 터이다.”

 

4.16 연대는 국민의 생명권이 헌법상의 권리로 더욱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과 함께 헌재의 판단이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을 위축시키는데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같이 밝혔다.

 

스토리펀딩으로 만나는 세월호 기억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직하는 동안에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한 특조위의 활동을 비롯해 전방위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못해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두고, 그동안 기획으로 연재해 온 숨쉬는 4.16”을 한권의 책을 펴내기 위해 스토리펀딩을 시작한 것은 지난 38일이다. 첫회 연재가 시작된 것은 탄핵심판 이틀 전이었지만 펀딩이 시작되기 까지는 한 달 남짓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는 스토리펀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창작자와 후원자를 연결하고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콘텐츠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입니다. 세상에 없던 창작물,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가진 창작자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정기 후원을 통해 꾸준히 창작자를 응원할 수 있는 피플펀딩사용자의 공감 액션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하트펀딩도 함께 합니다.”

누구나 창작자가 된다는 것은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플랫폼이다. 과거 의 작가들이 원고쓰기에만 매달리던 시기와는 창작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스토리밥이 기획한 것은 문학작품이 아니지만 르포와 인터뷰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창작자의 글쓰기는 중요한 요소였다.

 

스토리밥은 먼저 스토리펀딩을 운영하는 인터넷 포털에 기획서를 보냈다. 취지와 참여작가 그리고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샘플 원고를 함께 보냈다. 일주일 남짓 지난 뒤 심사를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심사통과와 함께 펀딩을 운영하는 담당자와 회의를 가졌다. 담당자는 펀딩 운영취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동시에 어떻게 스토리펀딩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지 구체적인 전략을 들려주었다. 그동안 성공한 펀딩사례를 비롯해 유사한 성격의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경험들을 소개해주며 가이드 역할을 맡아주었다.

 

지난 38일 펀딩을 시작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와 주변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단순하게 말하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나오지도 않은 책에 소액이지만 펀딩을 한다는 것 자체를 신기하게 여겼다. 물론 이런 환경에 익숙한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아날로그 세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변화된 소비환경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보낸 것도 사실이다.

 

펀딩 금액은 300만원, 책 한권을 내기에는 부족한 금액이지만 함께 만들어간다는 취지에 적정한 금액으로 여겼다. 펀딩 기간은 모두 40. 하지만 일주일 만에 목표액의 절반을 넘어섰다. 창작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참여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전혀 인연이 없는 이들의 참여였다는 점에서 펀딩 취지의 의도를 제대로 살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연재 첫회는 지난 2년 동안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꿈을 인형으로 만든 박민선 씨 얘기를 담았다. 스토리밥이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 당시만 해도 그녀는 대전에서 살았다. 지금은 전라도 어느 마을로 둥지를 옮겼다. 그녀가 이사를 간 것은 불과 열흘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이사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대답을 했다.

그녀는 바느질을 하면서 아이들의 꿈을 생각했을 것이다. 열여덟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청춘들의 꿈을 그리면서 자녀들의 미래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나라. 그녀는 이런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세월호 3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인양도 함께 기다린다

스토리펀딩 두 번째 이야기는 나무에 불도장을 찍는 목공방 목수 고충환 씨 얘기를 담았다. 그는 나무를 다루는 능력을 발휘해 나무고리를 만들어왔다. 지금까지 만들어 무료배포한 것 만 해도 4만개를 넘는다고 한다. 부러진 나무, 자투리로 남은 나무에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쓰며, 그는 세월호를 기억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다. 304명의 죽음이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나 먼 인연이 닿은 사람까지 모두가 힘들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기억을 반복하는 동안, 누군가를 기리고 이름을 불러주는 동안,그들의 슬픔은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다. 떠남이 아니라 잊혀지기에 이별의 슬픔이 더 크다는 말은 죽음 앞에서 더욱 그렇다.

 

스토리펀딩의 인연은 분명 새로운 만남이자 소중한 응원이다. 펀딩 참여자 들은 취재하고 기록하는 일에 박수를 보냈다. 동참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아니 이미 그들은 벌써 동참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스토리펀딩이 끝나고 한권의 책이 나오면 취재 대상으로 만났던 이나, 인터넷으로 만났던 이들이나 모두가 세월호라는 비극의 우산 아래 모이게 된다. 창작자들이 스토리펀딩을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스토리펀딩은 세월호 참사 3주기가 되는 416일 마감한다. 펀딩은 끝이 나지만 세월호 진실규명과 인양을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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