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2013.11.05 18:21

[대전원도심 특별기획] 대전 공연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끌다 - 가톨릭문화회관

1970년대 대전의 연극판

 가톨릭문화회관이 개관할 즈음의 대전연극의 상황을 잠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톨릭문화회관의 등장이 대전연극의 대흥동시대를 여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탄생한 극단의 일부가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극단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반면 대학당국의 지원을 받는 대학극의 등장으로 대전연극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72년도부터 시작된 대학 연극동아리를 살펴보면 충남대 <시나브로극회> 숭전대<청림극회> 목원대 <목산극회> 대전실업전문대 <동아극회> 대전여자초급대학 <동아리극회> 대전공업전문대학 <현암극회> 등이 생겨났다. 이뿐만 아니라 각 대학의 문과대학에서도 학술적인 차원에서 각 학과 성격에 따라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국문과에서는 우리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마당놀이를 중심으로 한 전통극을 계승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영문과에서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독문과에서는 독일작가의 작품을 올리는 식으로 대학에서의 연극활동이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불어 닥친 대학가의 축제는 대학극회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이로 인해 대학극회의 공연은 대학내 에서만 실시된 것이 아니라 시내공연장으로까지 진출했던 관계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대학극의 부활은 전공교수들의 학문적 지원과 대학당국으로부터의 재정적 지원 그리고 기본적인 관객동원 등으로 인해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이 같은 대학극의 중흥은 훗날 대전연극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것은 대학극 동아리 출신들이 대전연극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대전광역시연합회 50년사 발췌 인용>


가톨릭문화회관의 중흥

 대전의 소극장운동은 대흥동에서 시작되었다. 1971년 300석 규모의 가톨릭문화회관 개관은 대전연극의 대흥동시대를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극장의 등장은 대학 강당과 아카데미극장나 대전극장 같은 영화관에서 공연을 하던 연극인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았다. 연극인들 뿐만 아니라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공간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의미를 갖게됐다. 가톨릭문화회관을 중심으로 한 공연활동은 소극장들이 등장할 때 까지 연극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가톨릭문화회관에서는 지역극단들의 작품이 올려지기도 했지만 서울에서 히트한 작품들의 전국순회 공연시 빠지지 않고 올려졌다. 대전하면 가톨릭문화회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80년대 가톨릭문화회관에서 다양한 공연과 전시가 이루어졌을 때의 풍경을 돌아보자


 1982년 가을,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가톨릭문화회관에 몰려들었다. 지역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돌샘문학회의 문학의 밤이 열리는 날이다. 돌샘문학회는 1960년대 초반 창립된 문학동아리로 대전지역 고등학교 문예부에서 활동하던 학생들이 모이던 학교연합 단체다. 이 문학회는 대전실업전문대학 교수이자 한국연극협회 충남지부 초대 지부장을 맡은 김성수씨가 만들었다. 
 당시 문학적 열정을 가진 학생들은 문학의 밤 행사를 통해 대전지역 고등학교 문예부간에 친밀한 교류를 가졌다. 지금이야 작가를 꿈꾸는 학교 문예부가 유명무실한 형편이지만 1980년대 만 해도 예비 문학인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돌샘 머들령 동맥 파랑돌문학회가 그중 활발하게 활동한 단체들이다. . 여기에 참여한 학생들은 서로를 동인이라 부르며 습작을 했다. 대학 국문과에 다니던 선배들이 번갈아 나오며 후배들의 작품을 놓고 촌평을 했다. 가끔은 등단한 선배들이 문학사상이나 현대문학 같은 잡지를 옆구리에 끼고 와 눈이 번쩍 뜨이는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기도 했다. 문학회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 가운데 문학적 열정을 가지고 꾸준하게 작품을 쓴 경우도 있었지만, 문학소녀와 친분을 가지려고 나온 녀석들도 있었다.

 사춘기 시절, 여고생과 야릇한 감정을 교류하던 친구들도 가을이 되면 시나 산문을 한편은 썼다. 그 이유는 문학의 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문학의 밤은 개인 창작물을 발표하는 시간인데, 이 날은 다른 학교 문예부 친구들이 대부분 모이는 거의 유일한 자리다. 문학의 밤은 주로 가톨릭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이곳에서 행사를 치렀다. 10월과 11월에는 각급 학교의 문예부 학생들이 매주 가톨릭문화회관을 찾을 정도였다. 행사는 단출했다. 무대에 촛불을 켜놓고 한명씩 나와 시를 낭송하거나 수필을 낭독했다. 객석은 가득 찼고 일부는 자리가 없어 한 시간 내내 서서 듣기도 했다.

 행사가 끝나면 꽃다발을 전하는 세레모니가 이어졌는데, 장난기 있는 녀석들이 배추를 주며 축하하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촛불이 꺼진 후 대학생 선배와 중년의 선배작가들이 우리를 이끌고 중국집으로 향했다. 인근의 중국집 <인화영>은 당시 뒤풀이 장소로 자주 애용되었다. 식사는 주로 자장면이나 볶음밥이다. 그 자리에서 선배들은 행사에 대해 격려를 하고 아쉬운 점을 말하기도 했다. 당시 문학지망생들은 등단작가를 곁에 놓고 귀동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문인을 꿈꾸었던 고등학생들에게 가톨릭문화회관은 지울 수 없는 추억의 공간이다.

 또한 가톨릭문화회관은 서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연극작품들의 순회무대로도 적격이었다. 지난 봄 연극배우 강태기의 부음소식을 알리는 기사의 타이틀은 에쿠우스로 빛난 연극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에쿠우스라는 작품이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은 1975년 9월 서울에 있는 극단 실험극장의 소극장 개막 공연에서다. 당시 개관작품이 피터쉐퍼의 작품인 <에쿠우스>였다, 당시 강태기는 예민한 감성을 지닌 알런역을 맡아 관객에게 지울 수 없는 이미지를 남겼다. 이후 같은 역에 송승환(1980년), 최재성(1985년), 최민식(1990), 조재현(1991) 등이 거쳐갔다. 우리나라 대표 남자배우들이 거쳐젼 배역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는데, 강태기가 알런역을 맡았던 시기에 가톨릭문회회관에서도 순회공연이 이뤄졌다.

 국내 최초 관객 1만 명 돌파, 최초 6개월 연속 공연, 최초 예매제도 도입 등의 기록을 세우며 소극장 운동의 시발점이 된 연극 '에쿠우스' 의 진면목을 대전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던 것도 가톡릭문화회관이라는 공연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2010년대 들어서도 재해석되면서 여전히 작품성과 실험성있는 고전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가톨릭문화회관에 올린 작품 가운데 여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빨간피터의 고백이다.
모노드라마 연기의 대가로 칭송받는 추송웅씨가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를 각색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을 기획해 제작·연출·연기·장치까지 1인5역을 맡았다. 이 작품 역시 대히트를 기록했다. 8년간 500회가 넘게 무대에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그 인기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1981년 초연된 이래 지금까지 공연이 지속되고 있는 <품바>도 대전관객
의마음을 사로잡았다. 각설이의 노래를 통해 서민들의 애환을 다룬 이 작품은 여러명의
배우를 바꿔가며 지금도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유명한 공연이나 문학의 밤 같은 행사가 열리는 날 저녁이면 가톨릭문화회관 주변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공연의 여운이 아쉬운 사람들은 건물 바로 옆 지하 가배다방이나
브라암스 같은 찻집에서 정취를 달랬다.


가톨릭문화회관의 새로운 변신

 한때 대전문화예술의 1번지로 각광을 받던 가톨릭문화회관도 세월의 흐름을 견뎌내기 쉽지 않았다. 둔산에 신도시가 생겨나면서 원도심은 서서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또한 다양한 소극장이 들어서면서 그 위세가 점점 기울었다.
 가톨릭문화회관은 잠시 공백기를 가진 뒤 지난 2008년 공연기획사 아신아트컴퍼니에 의해 연극전용소극장으로 재개관해 꾸준하게 작품이 올려지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운치가 있어 좋다는 관객도 있지만 영화관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좁은 객석과 낮은 시야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신아트컴퍼니 이인복 대표는 객석 기부제를 통해 모은 기금으로 역사가 서린 가톨릭문화회관을 '명품 극장'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했다.
 
올 1월부터 시작된 공사는 좁고 시야가 불편했던 좌석을 넓은 계단식 좌석으로 리모델링 하고, 낡은 벽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페인트칠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객석 기부는 대전MBC, 천주교대전교구, KT&G상상유니브 등 기업과 연극배우 이종국씨,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제작한 연우무대 유인수 대표, 연극 '옥탑방고양이'를 제작한 악어컴퍼니 조행덕 대표 등이 동참했다.

이 대표는 "개관한 뒤에도 객석 기부를 계속 받을 예정"이라며 "250석이 대전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분들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져 원도심 문화의 활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신, 가톨릭문화회관의 추억을 넘는다.

지난 10월, 취재차 찾아간 극장에서 연극 한편을 보았다. 객석이 꽉 들어차진 않았지만 데이트 중인 연인들과 젊은이들, 선생님과 함께 단체관람 온 학생들 속에 섞여 유쾌하게 웃었던 로맨틱 코미디 ‘작업의 정석 2탄<선수의 탄생>’ 순수하지만 소심한 청년이 작업의 고수가 되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이 연극은  대흥동 이안과 병원 옆에 새롭게 문을 연 소극장, 아신극장 1관의 개관기념작이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방금 전까지 웃음과 열기로 가득했던 소극장에서 극장의 주인장이자 아신아트컴퍼니 대표인 이인복씨와 마주 앉았다. 그가 건넨 명함엔 ‘대전의 대학로를 꿈꾸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예전엔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 보던 게 영화였죠. 지금처럼 영화가 일상의 취미로 자리잡게 된 건 멀티플렉스관이 생기면서 부터였어요. 연극에도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서울의 대학로처럼, 1년 365일, 공연이 끊이지 않아야 관객이 늘고 새로운 관객이 개발 된다는 게 이대표의 생각이다. 아신극장은 바로 일년 내내 공연하는 극장, 그리고 최소 3개월에서 6개월 이상의 장기공연을 올리기 위해 만들었다. 이미 5년 전부터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카톨릭 문화회관은 단기공연용, 아신극장은 장기공연용으로 분리해 운영하려는 계획인 것이다. 두 개의 소극장을 개관하면서 겪은 재미난(?) 시행착오 하나. 

“보통 소극장 의자는 딱딱하고 등받이도 없잖아요. 혹시 그것이 관객개발을 막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카톨릭 문화회관 소극장 개관당시 과감하게 비용을 투자해 영화관처럼 푹신한 등받이 의자로 교체해 봤어요.”
 
과연 그의 예측과 바람대로 관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을까?

“극장은 어두컴컴하고 의자는 푹신하니... 조금만 지루한 장면이 나오면 바로 주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아신극장 개관 때는 절충안을 내놨죠. 등받이가 있되 맘 놓고(?) 기대어 코를 골긴 어려운 디자인으로요. 불편하지 않으면서 집중력을 향상시켜주는 의자로 수험생 부모님들이 좋아하시는 의자래요.(웃음)”

마냥 편하고 쉬운 것보다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얻은 것이 귀하게 생각되는 이치라는 것. 그는 극장 밖으로 길게 줄을 늘어서는 것 또한, 효과적인 마케팅 홍보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의자 하나까지 관객개발(그는 이 표현을 자주 썼다) 과 연관시켜 방법을 모색하는
이 사람은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일을 하게 된 걸까?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연극을 했어요. 전공도 연극연출이었고요. 그런데 작품 연출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그 외에 신경 쓸 일이 너무나 많은 거에요. 나는 작품연출에만 집중하고 다른 일을 해줄 기획자가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결국 그 일을 제가 하게 된 거에요.”

이인복 대표는 기획자의 업무가 단순히 티켓판매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planner), 제작하고(producer) 홍보(promoter) 할 수 있는 3s 를 잘 갖춰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하는 일과 가치를 설명했다. 이미 대흥동에 두 개의 소극장을 열었음에도 내년쯤 이곳 언저리에 코미디 전용극장인 아신극장2 를 개관하는게 목표란다. 대흥동은 그가 말한 3s
를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곳인지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달랑 연극 한편 보려고 대흥동에 나오지는 않아요.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다른
놀이들이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어야 하죠. 그런 면에서 원도심 활성화 사업이 저희들에게도 분명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덜컥 겁도 나죠. 원도심 활성화가 이 일대 건물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거든요. 그러면 가난한 예술가들은 여기 있고 싶어도 떠날 수 밖에 없어요. “

我信, 아신의 뜻을 물었다. 그는 나를 믿는다는 말로 연극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연극이 사십줄을 넘으면서 어느새 이십여년 세월, 잠시 다른 일을 한 적이 있기도 했지만 연극에 대한 애정만큼은 식지 않았다. 무대를 비우지 않는 연극을 하고 싶은 남자, 그는 자신을 믿는다는 말로 대전연극의 미래를 밝히고 있었다.

대전에는 총 9곳의 소극장이 있고 그 중 5곳은 여기, 대흥동에 위치해 있다. 터전을 잃으면 또 다른 곳에 둥지를 틀며 떠도는 것이 광대의 운명이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문화와 예술과 그리고 예술가들이 단지 건물 임대료 때문에 쫒겨나듯 떠돌아야 한다면 많이 슬픈 일이다. 부디, 굳건히, 이 터를 떠나지 않고 떼밀리지 않고 신명나는 한 판 연극이 계속되길 바란다.

가톨릭문화회관의 극장과 근처 있는 아신극장의 개관으로 두 개의 극장을 운영하게 된 아신아트컴퍼니, 과거의 추억은 살리고 현재의 관객을 모으려는 노력이 어떤 결과로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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