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2013.11.14 11:18

인장공예의 명장 류철규 씨가 둥지를 틀고 있는 선화동 ‘성호사’를 찾다.

작은 공간에 우주를 새기는 명장

 

 명장(明匠)은 한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과 품격을 가진 사람에게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이다. 한 사람에게 명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서는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물론 한 분야에서 이룬 기능과 결과물을 중요하게 보고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시대의 명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간적으로 이룬 인성과 사회에 기여도 등, 기능과 그것을 이룬 환경 전체를 종합적으로 심사한다. 이렇게 소관 부처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정부가 결정한 다음, 최종적으로 대한민국의 명장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인장공예 분야에서 3호 명장인 류철규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을 제외한 8도에 유일한 명장이었다. 여기에 류 명장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명장이라는 지위에 오른 것이다. 인장(印章)공예 분야의 명장은 현재도 10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개 고령인 분들이 많다. 현재는 정부가 실시하는 명장 심사에 참가하고 있는 류 명장의 말에 따르면 명장의 자격을 딴 사람들, 또 도전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류 명장보다 나이가 많다고 한다. 올해 환갑인 류 명장이 이미 10년 전, 명장에 도전해 꿈을 이룬 것을 고려할 때 젊은 날부터 그가 얼마나 인장에 정진해왔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류 명장은 인장에 대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인장은 단순히 문서에 자신을 표시하는 붉은 표시만이 아니었다. 아름답게 새겨진 인장은 귀한 소장품일 뿐 아니라 주인의 운명과 연결된 혼을 가진 예술품이자 행운으로 이끄는 상징이라고 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인장을 권력이나 신분을 상징하는 신표로 여겼으며 지닌 사람의 품위를 나타냄과 동시에 예술품으로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류 명장은 그래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장을 새기는 작업은 작은 공간에 각(刻)과 서(書)를 조화롭게 운용해 우주를 새기는 작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옛말 하나 옮기지요. ‘크도다 마음이여 만령의 곶집이요. 묘하도다 인장(印章)이여, 교역의 문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인(印)의 조화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자문화권에서는 이름만큼이나 인장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기능에서 예술의 길을 찾다

 류 명장이 인장 분야에서 처음 투신한 때는 43년 전이다. 천안 병천에서 나고 자란 류 명장은 고등학교 1학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자 장남인 그에게 가정을 돌봐야할 책임이 돌아왔다. 그때 손재주가 좋고 또 좋은 필체를 가진 그를 지켜본 동네 어르신은 인장 일을 추천했다.
 “모두 도장이라고 하죠. 당시만 해도 도장업소가 호황을 누렸어요. 일도 많았고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었죠. 잘만하면 일반 공무원보다 수입이 나았으니까요.”

 그는 무작정 대전으로 터전을 옮겨 인장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스승인 이석성 선생의 문하였다. 도제식으로 일을 전수받던 당시의 기술 문화에서, 문하라고는 하지만 배우는 이들에게 월급 같은 것은 없었다. 먹는 일과 잠자는 곳만 해결하면서 잔심부름부터 시작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꼬박 10년을 배웠다고 한다.
 “옛날 분들은 누군가 이 일을 끈기 있게 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데 3년을 두고 지켜봤어요. 3년이 지나니까 하나씩 가르쳐주기 시작하더군요.”

 낮에는 잡일을 도맡아하고 밤이 되어서야 자리에 앉아 스승이 조각한 것을 그대로 흉내 내기 시작했다. 잠은 하루에 3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혹독한 수련의 과정을 거친 과정이 지금 류 명장의 초석이 된 것이다.
 “7~8년 지나니까 슬슬 기술자 소리를 듣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 스승이 말하더군요. 앞으로 술 같은 것은 되도록 자제하고 서예와 한학을 공부하라고 지긋이 일러주셨죠. 그래야 기술자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말씀이었죠.”

 

 

 류 명장은 그 말을 새기고 한학과 역학, 서예, 돌이나 금옥 등에 글과 그림을 새기는 전각, 나무판에 글씨를 새기는 서각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예에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이렇게 오체가 있다. 이런 체들을 익히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인장에서는 오체를 쓰되 거꾸로 뒤집어 써야 한다. 여기에 붓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작은 공간에 바로 이 글씨들을 새겨 넣어야 하는 것이다. 인장의 과정은 이렇게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인고의 과정이기도 했다. 젊은 날 쏟아 부었던 이런 노력이 인장을 단순한 기능에서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스승의 노력은 그뿐 아닙니다. 이석성 선생은 10년이 지나자 그분의 스승에게 다시 저를 보내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일을 하신 겁니다. 그쯤 되면 제자를 데리고 있으면서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류 명장은 그때까지 배우고 익힌 기능과 정신을 다시 수련하기에 이른다. 스승 스스로 청출어람을 인정하고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기를 바랄만큼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에 힘입은바 크다는 것이다. 대전에 계셨지만 고 박인규 선생과 이석성 선생은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전국 어디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스승의 풍을 잘 받아들인 류 명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도록 노력했고 그 결과 스승들의 철학과 글꼴을 제대로 전수받는다. 

 

 

원도심을 텃밭으로

 류 명장이 원도심에서 ‘성호사’를 운영한 지도 43년이 되었다. 옛 충남도청 건너편에 위치한 선화동 지금의 자리에서만도 33년이 지났다. 원도심의 산증인이기도 한 류 명장은, 그에 맞게 현재 선화동 번영회의 회장 역할도 하고 있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류철규 씨는 대전시 새마을지도자로 12년을 생활했다. 살고 있는 지역에도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이 일이 명장으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일의 특성상 하루 종일 좁은 공간 안에 갇혀서 지냈다. 여러 공부를 했지만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이렇게 지역과, 사람과 교류를 가지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그리고 그때 이 업계에 들어온 이상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겠다는 목표를 새롭게 가졌다. 이후로 10여 년 다듬고 다듬어 명장에 도전했고 목표를 이루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원도심이 상당한 침체기를 맞고 있지만 80~90년대, 성황을 이루었던 시절에는 돈을 많이 번 집들도 많았죠. 성호사만해도 저에게 인장을 맡기면 한 달씩 기다리는 일은 예사였습니다.”
 선화동은 관공서가 밀집해 있던 지역이다. 시청, 충남도청, 법원, 경찰청 등, 지금은 이전했거나 이전할 기관들이 모두 위치해있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류 명장의 성호사도 주로 관의 일을 많이 맡았다.

 “관의 일이라는 게 아무한테 막 맡기는 일이 아니지요. 관인이라는 것은 그 단체의 얼굴이기 때문에 더욱 함부로 새길 수 없는 거니까요. 도지사, 시장, 법원장, 정치인, 국회의장, 등 많은 사람들의 인장이 내 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업소가 사라졌다. 대흥동에 비하면 선화동은 더욱 사람의 발길이 줄었다. 시청, 도청 등 거의 모든 관공서가 옮겨갔기 때문이다. 성호사의 일도 1/3 정도로 줄었지만 류 명장은 지금도 즐겁게 인장을 새기고 있다.

 

류철규 명장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

 류 명장의 작업이 더욱 가치 있는 원인 중에 하나는 그만의 독특한 서체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오랜 공부의 결과물이었다. 그가 개발한 서체는 서예의 소전체와 인장에 사용하는 전서체를 결합해서 만든,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새로운 것이었다. 또한 이 서체는 모두 정통 서예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비판하지 못하는 정통성 또한 가지고 있다고 한다.
 류 명장의 인장에는 그 서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장의 옆면에는 반드시 류 명장의 시호가 새겨져 있으며 명장의 작업임을 증명하는 증서가 함께 포함되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류 명장의 작업 또한 남과 다른 면이 많다. 그는 일단 오전 작업밖에는 하지 않는다. 2003년에 명장이 된 이후로 작업은 오전으로 제한하고 있다. 육체와 정신의 모든 공력을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오전 동안 많게는 2개의 인장을 새기고 나면 전력을 소진한다고 한다.
 “내가 스스로 몸 관리를 하지 않으면 인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복인(福印)을 만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선명한 시력, 건강한 정신과 육체 없이는 좋은 인장이 탄생하지 않죠. 한 분 한 분 제게는 모두 소중하니까 절대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인장이 가진 아름다움을 차별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그는 가장 먼저 108배를 하고 다음으로 정성들여 목욕재계한다. 이렇게 가장 맑은 정신으로 자리에 앉아 새로 태어날 인장을 잡는다. 그를 찾는 사람은 인장의 소중함을 알고 오는 것이기에 그에 걸맞게 정성을 가지고 깊게 소통하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다. 재료도 사용하는 사람의 성격과 인장의 격을 맞추기 위해 비싸지만 국내산만을 고집하고 있다. 정성을 다한 인장인 만큼 그것을 소중하게 사용하면 그것이 복인이라는 것이다.
 “오후에는 주문을 받거나 후진을 양성하는 일을 합니다. 요즘은 바로 앞에 있는 대전시민대학에서 전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열 명 정도 수강하는데, 물론 몇 십 년을 해도 시원치 않은 공부이지만 배우고자하는 분들을 모른 척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이 자리는 빠지지 않아요.”

 우주의 조화를 새기다
 


 많은 사람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같은 이름이라도 류 명장의 손을 거치면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류 명장의 독특한 서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장을 만들러 사람이 오면 먼저 사주를 봐 그 사람의 성격 체질에 맞게 이름을 새긴다. 성격이 아주 강한 사람은 글꼴을 부드럽게 새기고, 여성스러운 사람은 강한 서체를 사용한다. 그러면 그 나름대로 강약을 상쇄해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또 아주 좋은 이름은 이름 석 자만 새기지만 좋지 않은 이름의 경우, 이름과 함께 印이나 信, 章을 함께 새겨 좋지 않은 기운을 누르는 효과로 액운을 막는다. 류 명장은 인장 하나의 격을 맞추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공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보람도 많다. 정성스럽게 새긴 류 명장의 인장을 사용하고는 좋은 일이 생겼다고 찾아오거나 연락을 해올 때이다.
 “40여 년을 팠으니까, 참 많이도 팠죠. 인장만으로도 경부고속도로를 몇 번 왕복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 한 개를 파더라도 아주 즐겁게 일합니다. 공부도 하면서요.”

 류 명장은 요즘 주로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그중 몇을 소개해본다. 먼저 수결이다. 수결은 나무뿌리로 만든 일종의 집안 공통 사인(sign)이다. 류 명장이 복원한 수결은 우암 송시열 일가의 수결이다. 일견 자유분방한 모양과 서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만의 예술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음이 눈에 띈다. 또 하나는 와당문자이다. 기와집의 처마 끝과 용마루에 새겨진 문양을 전각으로 복원한 것이다.

 또 천부경과 같은 문장을 예술적 조형물 위에 전각으로 살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작업은 이미 단순한 기능의 차원이 아니라 뛰어난 예술품으로 역사적인 가치까지 담으며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인장으로 출발해 서예와 전각, 서각, 달마도와 같은 그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단계 높은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류 명장이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멀지 않은 새로운 희망

 2013년 9월, 류 명장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물론 과거에 국무총리 표창도 있었으며 장관 표창도 3회에 이른다. 그러나 영광으로 따지면 많은 사람들이 류 명장의 인장으로 감동을 얻고 즐거운 일을 맞이했다는 것이 더욱 큰 것이었다. 물론 인간으로 겪어야하는 생의 부침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마음을 비우고 즐겁게 일을 하는 류 명장은 나지막한 꿈 하나를 얘기했다. 바로 인장박물관이다.

 “인장으로 일가를 이루었지만 소박하게 인장박물관을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장의 세계를 알리고 싶어요. 역사적으로 오래된 것부터 지금의 새로운 인장까지, 또 아주 전통적인 것부터 지금 우리 생활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 단출한 인장에서 깊은 예술성을 가진 것, 모두를 모아 많은 사람들에게 인장의 세계를 알리고 싶습니다.”
 그 희망은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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