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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밥 기획 특집

[대전 원도심 특별기획] 책은 낡았지만 사유의 정신은 푸르다 - 원동 헌책방거리

과거의 역사가 스며있는 책방

 

누군가의 손이 한번쯤 거친 책들이 모이는 곳, 바로 헌책방이다. 헌책방 개념으로 보면 책은 헌책과 새책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대전 원동에 모여있는 헌책방에는 손때 묻은 책들이 꽂혀 있거나 쌓여있다. 신중앙시장 주차타워 앞에는 명맥을 잇고 있는 헌책방들이 모여 있다. 오십년 가까이 서점을 하는 주인부터 2년 전 매물로 나온 책방을 인수한 사람까지, 책을 좋아하는 몇몇이 대전의 헌책방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970년대 중반, 대전에는 35개 가량의 헌책방이 있을 만큼 전성기였다. 중앙시장에 헌책방이 가장 많이 모여 있을 때는 12개까지 성업을 했다. 지금은 예닐곱 개에 불과하다. 정확한 수치를 말할 수 없는 것은 문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는 책방이 있기 때문이다.

원동 한복거리 옆에 자리한 헌책방을 찾은 때는 가을이 뒷모습을 보이고 있던 계절이었다. 스산한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거리에서 책을 정리하는 책방 주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원동 사거리 큰 길 옆에 자리한 욱일서점에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 책을 고르고 있었다. 그 옆에서 두런 두런 얘기를 건네는 주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서점 한켠에서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4 년 전, 욱일서점을 인수한 조방현씨는 사회과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주인이다. 책꽂이에 는 1980년대 대학생들이 즐겨보거나 숨어서 보던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었다. 강좌철학 · 해방전후사의 인식 · 세계철학사 ·인간의 역사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연구 ·한국사회의 재인식 · 통일전선과 민주혁명 · 한국노동운동론 등이 눈에 들어왔다.

1980년대 군부정권에 저항하던 수많은 청년들이 이런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다. 공식적으로 판매가 되는 책들도 있었지만, 판금조치가 이뤄져 일반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책들은 복사본을 통해 돌려 읽기도 했다. 쉽게 볼 수 없는 책을 본다는 점에서 긴장과 스릴의 책읽기를 즐겼던 시기가 1980년대다.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며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가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은 486세대라 불리며 이 시대의 중심축이 되었다.

욱일서점 주인이 사회과학과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을 열자 주인이 작은 가방에서 책 몇 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쉽게 보기 힘든 책들이었다. 문교부 주최의 군사혁명예술축전에서 불린 교성곡 자료가 눈에 띠었다.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김동진이 작곡한 교성곡 “승리의 길” 악보였다. 악보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1961.6.19.라는 볼펜 글씨가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날 교성곡이 불려졌던 모양이었다. 악보를 펼치니 “산 옆 외따른 골짝이에 혼자 누워 있는”으로 시작한 첫 구절이 음표와 함께 적혀 있었다.

욱일서점에서는 격변의 시기에 나온 자료들을 적잖게 확인할 수 있었다. 주인은 경복궁에서 열린 군사혁명 1주년 기념 산업박람회 출품목록이라는 팜플릿도 소장하고 있었다. 행사가 열린 기간은 1962년 4월 20일부터 6월5일까지였다. 그리고 4.19 혁명 즈음에 만든 소식지도  흥미로웠다. 자료집의 맨 뒤에 쓰여있는 배부처가 어느 다방이라고 표기된 점이 이색적이었다. 아마도 공개적인 출판사에서 작업하기가 곤란해 다방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업을 한 것으로 짐작됐다.

이 집에서 발견한 책 중에 하나인 “미제침략사”.  이 책을 보고 있으니 오랫동안 시선을 거두기가 어려웠다. 이 책은 대전 정동에 사무실을 둔 남녘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 중에 하나였다. 이 책을 펴낸 조성일씨는 국가보안법에 걸려 구속되기도 했다. 대전에서 출판된 책이 필화사건에 연루돼 당시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조방현씨는 지금은 철거된 홍명상가에서 홍명서적이라는 서점을 운영한 전력이 있다. 그러다보니 헌책방을 인수한 것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서점 안에는 과거의 역사와 갓 나온 요즘 책까지 혼재되어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착각이 들었다.

 


헌책방의 산증인, 고려당

1980년대를 추억하며 길 모퉁이를 돌자, 사람 키보다 훨씬 높게 책을 쌓아놓은 고려당 책방을 만날 수 있었다. 올해 78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장세철 주인은 목소리가 또렷했다. 어느새 50년 가까이 헌책방과 함께 세월을 보냈다.

 “56년인가로 기억하는데 원동시장에 이 건물이 생겼어. 처음엔 헌책방은 없었는데 60~70년대가 지나면서 거리 좌판 형식으로 헌책방들이 들어섰지. 그러다가 단속이 심해져 좌판을 못하게 되니까 하나 둘씩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

“47년 정도 됐을걸요. 오래 다니던 단골들은 주로 대학 교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들 정년퇴직 했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많이 다녔지. 근데 요즘은 도서관에 책이 많으니까 거기서 연구하는 교수들이 많지”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책방을 찾는 오랜 단골들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옛날의 단골들 중에는 장씨의 신세를 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연구를 하는 교수들에게 이곳은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주인이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책방 운영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됐다.

“내가 고소설이나 가사에 관심이 많아. 그래서 미발표 소설들을 보게 되면 문헌을 고찰해서 교수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연락을 해서 가져가라 이랬지. 예전에 미발표 고소설인 <금송아지전>이라는 작품이 있었어. 그 이전에 학계에 발표된 적이 없어서 내가 충남대에 있는 사재동 교수한테 얘기해서 그 양반이 논문을 발표를 했지”

사재동 교수는 <불교계 국문소설의 연구>나 <불교계 국문소설의 형성과정 연구> 등의 책을 펴내면서 <금송아지전>을 언급한 바 있다. 우리의 구비문학 가운데 <금송아지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본처가 아들을 낳자 이를 시기한 첩이 몰래 아이를 암소에게 주어 먹게 하니, 이 암소가 금송아지를 낳았다. 이 금송아지가 서울로 가 정승의 사위가 된 뒤에 다시 사람이 돼 잘 살았다는 내용이다. 고려당 주인 장세철씨는 서지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고문헌이 들어올 때마다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가며 그 희소성의 가치를 찾아내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계에 있는 연구자들이 이 서점을 자주 드나들었던 것이다.

고려당 서적 옆에는 박문서림의 간판이 붙어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박문서림이 우리집 보다 조금 더 오래된 서점인데, 지난 여름에 다른 사람한테 넘어갔어. 이제는 서점을 안해”

옆에 있는 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말을 할 때는 옛 친구를 잃은 것 같은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40년 넘게 헌책방을 함께 하던 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홍희표 시인이 사랑한 청양서점

고려당에서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면 고려당만큼이나 오래된 청양서점이 자리하고 있다. 비교적 깔끔하게 책들이 꽂혀 있는 서점에는 사십년 세월을 책과 함께 한 여주인이 지키고 있다. 남편은 주로 책을 거둬들이고 지금은 아들이 운영을 맡아하고 있다고 한다. 안주인 김은자씨의 나이는 예순다섯. 남편인 김진문씨가 청양이 고향이라 서점 이름도 청양서점이다. 목원대에서 시를 쓰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지금은 고인이 된 홍희표 교수가 고향 친구라 옛날에는 매일 오다시피했다고 한다. 홍 교수는 친구를 추억하며 청양서점이라는 시도 썼다.


고추 중에 매운 고추는
증말로 청양고추이지유

뒹구는 책 책들을 찾고 찾아
남아있는 자들의 영혼을 가꾸듯

한밭 중앙시장 안 청양서점
칠갑산 같은 김진문 동무 있지유

- 홍희표의 시 <청양서점> 전문-

 

홍희표 시인은 1967년 '현대문학'에 등단한 이래 수많은 시집을 펴냈으며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대전시 문화상' '시와 시학상 작품상' '한국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홍시인이 고향친구가 하는 서점에 들러 책을 구입한 것은 물론이고 시장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고향시절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옛날에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예전 같지 않죠. 그리고 옛날에는 속에 낙서가 있어도 책을 주저 없이 샀는데 요즘 애들은  낙서 한 두 개 있어도 싫어해요. 또 새책을 사는 경향이 많지 않나 싶어요”

김은자씨는 수 십 년간 학생들을 접하면서 시대적 흐름에 따른 변화를 그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변화를 목격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옛날보다 애들이 순진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요. 그래도 서점 안에 들어오면 순해지더라구요”

이 말을 들으니 책이 있는 공간은 학생들의 마음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폭력과 왕따 등 학생들의 갈등을 책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책과 관련한 명언이 셀 수 없이 많은 것도 책이 인생의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잠시 독서와 관련한 명언을 살펴보자.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데카르트) “ 한 권의 좋은 책은 위대한 정신의 귀중한 활력소이고, 삶을 초월하여 보존하려고 방부 처리하여 둔 보물이다” (존 밀턴) “책은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세계다”(윌리엄 워즈워스) “약간의 돈이 생길 때마다 나는 책을 산다. 그렇게 하고 남는 돈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산다”(에라스무스).

 책방의 안주인은 오랜 세월 책을 접하면서 책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경제관련 책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책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일제 강점기 때 나온 책인데 일본말로 되었지만 우리생활상이 그림으로 나와있는 책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놔뒀으면 제 값 받을 수 있는데 싸게 팔았던 기억이 있어요.근데  우리가 천원 이천원에 팔았던 책들이 박물관에 있는 걸 보니까 기분이 좋더라구요”

“요즘은 고객들 연령이 높아지는 게 확연하게 알 수 있어요.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라 그런지아이들이 휴대폰만 열면 웬만한 건 다 나오잖아요.그런 반면에 옛날에 책을 많이 보신 분들은 헌책방 많이 와요. 책이 필요로 하는 분들이 주로 오죠”

스마트폰을 달고 사는 시대에 인터넷은 필수다.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전자책이나 웹북이 등장하는 시대에 헌책이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아날로그 세대들에게 헌책방은 지혜를 찾는 보고임에는 분명하다.


시대를 따라가는 온라인 헌책방시대


헌책방 운영의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이 중의 하나가 국민서적을 운영하는 이창수씨다. 그는 2년 전 이 가게를 인수했다. 책방 앞에는 책과 함께 골동품들이 놓여있었다. 오래된 시계를 비롯해 자잘한 옛소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영적인 이유로 골동품을 같이하죠. 책만 가지고는 안되니까. 근데 지금이 불경기라 그런지 골동품 거래도 끊겼어요. 경기가 안좋은데 누가 이런 걸 사겠어요. 관심있는 사람들도 당장 지갑을 닫죠”

국민서적의 이창수씨는 가게 앞 2층을 얻어 책을 쌓아놓는 창고로 활용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인터넷 책 판매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시작단계이기는 하지만 인터넷홈쇼핑으로 책을 사는 시대에 헌책도 그 대열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층 공간을 들어서니 눈에 들어오는 책 중에 하나가 브리태니커 사전이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지금까지 발행된 것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영어로 쓰인 백과사전이다. 위키백과 자료에 따르면 이 사전은 2012년 3월 15일 종이책 출판이 244년 만에 중단되었다. 브리태니커의 초판은 1768년 12월에 편집, 1771년 3권으로 완간했는데 총 2689쪽이었다. 브리태니커 사전은 우리나라의 많은 지식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 사전을 소장하고 싶은 이들도 많았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 집안에 들여놓기는 여의치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브리태니커가 종이책 출판을 중단한 것은 하루 평균 870만회가 조회된다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시대는 브리태니커보다는 위키피디아를 원한다”는 말로 작금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200개 이상의 언어로 그것도 무료로 제공되는 백과사전 시대에 브리태니커의 설 자리는 아마도 우리의 헌책방과 그 초상이 닮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직 책을 더 채워넣어야 하는데. 이제 인터넷 판매 시작이니까 더 확충해야죠. 그리고 대전시에서도 헌책방을 살리기 위해 지원도 해주면 좋은데...”

온라인 시대에 걸맞게 헌책방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이창수씨. 그는 시의 지원을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전통시장의 현대화 사업은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비 가림 시설을 하거나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대전의 전통시장도 상당부분 리모델링을 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 더불어 전통시장에 문화예술을 입히는 작업을 하는 곳도 있다. 그런 점에서 헌책방은 문화예술을 입히는 좋은 소재이자 그 자체가 소중한 자원임에는 틀림없다.

 

헌책을 찾는 이가 줄어들고 있다. 원동의 헌책방도 더 줄어들지 모른다. 나이 지긋한 주인의 뒤를 이을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도 모른다. 세월을 비껴갈 수 없는 현실에서 대전의 헌책방은 그저 실낱같은 명맥만 이어갈 뿐이다. 하지만 오래된 종이책이 전하는 가치와 정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오래된 사람들이 오래된 책을 찾는 곳, 헌책방의 낡아가는 책 냄새를 맡으면 내가 읽었던 과거가 시나브로 깨어난다.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했던 문장들도 앞 다투며 뛰쳐나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책방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이끄는 현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