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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기억이라는 무기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기억이라는 무기 / 2015년 1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세월호 대참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기획 연재하고 있는 <숨쉬는 4.16>, 2015년에도 추모하고 분노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이어간다. 우리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민낯으로 보여준 세월호 대참사는 서서히 잊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기억은 마르지 않은 슬픔의 눈물로 떨어지고 있다.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소속 작가들은 4월 16일을 기억하는 것으로 작은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그것이 파편처럼 흩어지더라도 많은 이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기억한다면 대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전의 이유

 

바람이다 대지의 상처를 처음 어루만지는 손길은

날선 상처의 가장자리를 허물어 어느 허공도 베이지 않아야 돌아서는

물이다 상처의 가장 깊은 곳을 수심으로 덮고

세월의 앙금으로 메워 어느 숨결도 갈라지지 않아야 흘러가는

먼 옛날의 파도를 불러 거칠어진 흉터를 쓰다듬고 물러서는,

어느 생명도 하는 일이기에

이렇게 지구의 상처는 아물진대

달은 상처를 지우지 않는다

바람도 파도도 내쳐

40억 년 전의 피 묻은 흉도 지금의 것이기에

온전히 상처로 이루어진 달과

지구가 함께하는 이유는

아물어야하되 잊지는 말아야할 것

생명이기 때문이다

 

 

1.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바로 우리 삶 자체이기도하다. 매번 다른 내용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삶이라는 역동적인 이야기들을 이어온 것도 기다림이다. 그래서 삶이 그렇듯 기다림에도 안타까움과 설렘이 뒤섞여있다. 우리가 겪었던 기다림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비 오는 오후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 나온 엄마에게는 쏟아져 나오는 모든 아이들이 기다림이다. 또 동네 어귀에서 달빛으로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돌리며 한밤 외로운 버스에서 내리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도 있었다. 짜장면을 시키고는 그사이를 못 참아 대문을 열고 조바심치는 꼬마에게는 지나는 모든 사람이 배달원이었다가 집 앞을 지나는 동네사람으로 변한다.

 

청춘의 문턱을 넘어선 이들에게는 이성을 기다리는 시간을 잊지 못한다. 황지우의 유명한 시 구절처럼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사랑하는 이여/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 한참 양보해 꼭 만나지 못할지언정 만남의 희망이 있다면 기다림 자체도 만남이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은 살아 돌아올 확신은 없을지언정 실낱같은 희망 하나만 있으면 그것으로 삶을 지탱했다. 모든 기다림은 그래서 애틋하고 아프고 설레기에 만남의 구성요소이다. 반대로 기다림이라는 말은 만남을 포함하고 있기에 스스로 완성태이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처절한 기다림을 보지 못했다. 듣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저 앞, 손에 잡힐 듯 지척이건만 차가운 암흑의 물속에 갇힌 사랑하는 사람을, 내 아이를 그저 바라봐야하는, 일초 일각의 시간이 생명을 갉아먹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어야하는, 발도 구르지 못하며 부르르 떨고 있는 그곳의 일은 이미 기다림도 아니었다.

 

이 우주 안에서 생명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 다른 생명과의 연결이다. 그 연결이 그렇게 처참한 방법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일은 숨 쉬는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붕괴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살아서만 돌아와 주기를, 며칠 후부터는 주검으로라도 돌아와 주기를 기다리다가 300일이 되어가는 지금, 누구도 생명이 아니다. 생명으로 견딜 수 없는 기다림이 있었고 또 그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날에 관해 말할 능력이 내겐 없다.

 

 

 

2.

 

이제 우리들의 몫은 기억하는 일이다. 그날 이후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남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편하자고, 조금 더 돈을 남기자고 한걸음씩 원칙에서 뒤로 물러섰던 우리들 모두가 가해자이고 다시, 그 바다를 보면서 함께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어야했던 우리는 모두 피해자이다.

 

유가족들은 이미 그들의 유전자에 깊게 상처가 각인되었다.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그 상처는 분명 몇 대에 걸쳐 대물림될 것이다. 문제는 그 상처가 온전히 그들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몇 대에 걸쳐 앓으면서 후회하고 반성해야할 상처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는 일은 우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첫발자국이다.

 

기억은 복수의 출발이다. 당연히 복수는 적을 향해야하지만 적이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4월 16일 현장에서부터 악귀처럼 떠돌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던 거짓들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 있지도 않았던 허황된 구조의 정황을 만들어내던 거짓은 이제 유가족들을 이익에 눈먼 사람으로 둔갑시키고 특별법의 발톱을 뽑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짙어지고 있는 이 거짓들로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있으며 거짓의 안개에 숨어 책임을 묻어버리는 이들과 함께 여기저기서 거짓을 만들어내는 이들도 있다. 다름 아닌 우리의 삶을 갉아먹으며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이들이다. 똘똘 뭉쳐있는 이들을 우리는 하나하나 지목할 수는 없지만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붉은 돈이 걸쭉하게 흘러드는 궁창 근처에 있다. 그곳에는 웅덩이를 지키기 위해 철책을 쳐주는 권력이 함께하고 있으며 잠시도 쉬지 않고 사람들을 향해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의 호위를 받고 있다.

 

복수는 단죄이다. 더 이상의 죄를 끊어야 한다.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우리를 더 이상 물어뜯지 못하도록 그들의 죄를 끊어 낱낱이 보여야 한다. 그렇기에 기억해야 한다. 기억은 반복의 가능성을 움켜쥐는 일이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난다.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붕괴되고 배가 가라앉고 돈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반복되다보면 우리 삶의 기반은 저 암흑으로 꺼진다. 눈을 부릅뜨고 나 자신과 그들을 노려보기 위해서는 선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은 내 일에서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굳이 예를 들일도 없지만, 선박의 연한에 관한 원칙, 평형수에 관한 원칙, 선박의 개보수에 관한 원칙,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승무원의 원칙, 승무원을 철저하게 교육시켜야할 원칙, 관제소와 가져야할 연락에 관한 원칙, 재난 발생 시 자동적으로 움직여야하는 컨트롤 타워의 원칙 등 수많은 원칙 가운데 하나만 제대로 지켜졌더라면 4월의 처참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기실 글로 풀칠할 방법이나 찾아보자고 시작한 작은 모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그날을 기억하기로 했다. 이렇게 글로 3년 상을 치루는 일이 미미한 방법일지언정 기억의 한 방법이다. 자신은 노래로밖에 말할 수 없다는 청년의 얘기를 듣고, 십자가를 지고 온 땅을 걷던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었고, 재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언론을 되짚어봤고 가슴을 뜯는 편지를 읽어보기도 했다. 작은 일이다. 누구에게 힘이 될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기억하기 위해 쓰는 안간힘이다.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작은 예이다.

 

3.

 

달은 상처를 지우지 않는다. 46억 년 전 달이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소행성과 운석 들이 달에 떨어지면서 상처를 냈다. 그러나 달은 길게는 수십억 년 된 상처에서부터 짧게는 몇 천 년 전에 생긴 충돌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달에게 얼룩은 그가 가진 역사이자 지우지 않은 상처이다.

 

지구는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다. 달보다 훨씬 커다란 지구에는 더 많은 운석이 떨어지고 또 수많은 대재앙이 있었다. 그러나 그 상처는 몇 십 년에서 몇 백 년이면 아물었다. 물론 흔적은 남기에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다.

지구에 상처가 나면 가장 먼저 바람이 찾아와 상처를 매만진다. 비가 내려 날 선 상처를 지혈하고 파도가 있는 곳이라면 그 또한 열심히 쓰다듬어 아팠던 흉터를 지우고 결국 새살이 드러난다. 이제 깊던 상처의 자리에 풀이 자라기 시작하고 나무가 뒤덮는다. 동물들이 모여들면서 또 하나의 생태를 이룬다. 다시 생명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생명의 작용이다.

 

상처라는 것이 죽음을 만드는 작은 벽돌이라면 그것이 쌓여 하나의 죽음이 완성된다. 상처는 아물어야하되 잊으면 안 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구가 달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명의 상처는 아물어야하되 잊지 말아야한다는 우주의 은유이다. 기억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 글은 《내일을 여는 작가》 2014년 하반기호에 실었던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소속 작가의 글을 고치고 더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