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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숨쉬는 4.16

나무의 기억과 생명의 각인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숨쉬는 4.16> 2016년 3월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매달 16일마다 <숨쉬는 4.6>을 연재한다. 이 달에는 대전에서 가구공방을 운영하면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고충환 씨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망각은 죄악이다. 잊어야 할 것도 많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나무의 기억과 생명의 각인

                                                                              - 나무고리로 세월호를 기억하는 목수 고충환 -

 

 

소년은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며 놀았다. 가지에 매달리기도 하고 열매를 따서 먹기도 했다. 훌쩍 커버린 소년이 돈을 벌고 싶다고 하자 나무는 열매를 도회지에 내다 팔라고 말했다. 그리고 피곤에 지친 소년에게는 자신의 밑동에 앉아 쉬라고 했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처럼 나무는 아낌없이 준다. 살아서는 녹색의 기운과 수익을 주고 죽어서는 땔감이나 목재로 사람들에게 안식을 선사한다.

 

 

이런 나무로 다양한 작업을 하는 이가 있다. 공방에 들어서면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톱밥이 날리는 사이에 나무향이 짙게 퍼지는 곳. 대전 변동에 있는공방 그래의 주인장은 50대 중반의 목수 고충환 씨다. 그는 책상, 의자, 수납장을 비롯해 손님들이 주문하는 가구들을 만든다. 나무를 본격적으로 만진지 어느새 10년 세월이다. 그동안 사연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지금은 나무를 통해 죽음을 기억하는 소중한 작업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 그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때로는 나무에 생명의 이름을 각인하는 고통의 구도자 모습이 겹쳐지기도 한다.

지난해 말부터 그가 마음을 담아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나무에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불도장을 찍어 작은 고리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까지 작업해 나눠준 개수만 해도 8천 여개를 넘는다. 서울, 광주, 전주, 부산, 대구, 포항 등 경향각지로 나가고 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이후 집회에 수시로 참여를 했죠. 집회나 시위에 나가면서 이런 행동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했고 그러던 참에 나는 어차피 나무 다루는 사람이니까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런 나무고리가 나오게 된거죠

 

나무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불도장을 찍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불도장이라는 게 쉽게 말해 인두로 지지는 일이기 때문에 강약을 조절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힘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금 약하게 하면 문양과 글씨가 선명하게 찍히지 않고, 조금 더 길게 누르고 있으면 나무가 타서 글씨가 뭉개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지금은 비교적 문양이 잘 나오는 편이다. 그의 공방에서 고리 만드는 작업과 관련해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나무로 작업을 많이 하나요?

가장 작업하기 쉬운 나무는 쪽동백이고요. 참나무 조각에도 아까워서 찍어봤는데 나무 자체가 단단해서 파고들지 않아요. 일반적으로는 때죽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이팝나무 밤나무 등 크게 가리지는 않죠. 아마도 10종류는 넘는 것 같아요.

 

나무는 어디서 구하나요?

점차 제작하는 양이 늘어나고 재료가 떨어지니까 주변 지인들이 어디가면 나무가 많다고 알려주기도 하죠. 대전 인근의 계룡시나 멀리는 청양까지 가기도 했죠. 왜냐면 산에서 나무를 함부로 자를 수 없으니까 아는 사람 고향에 가서 허락을 받고 나무를 해오는 거죠.

 

아는 분들이 작업을 도와주던데요?

SNS를 통해서 내가 이걸 한다고 알려지다 보니까요. 세월호 사고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거나 뭐라도 봉사하고 싶은 분들이 찾아 오기도 하죠 나무를 연마하는 샌딩이나 드릴 작업들은 초보들도 할 수 있으니까 도와주고 있어요. 또 조금이나마 기계 다를 줄 아는 사람들은 인두를 직접 찍어보기도 하죠 그런 면에서는 좋았던 것 같아요. 특히 강제로 불러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요.

 

작업하면서 어떤 마음이 드나요?

다른 작업과 달리 마음이 사뭇 다르죠. 보통은 일상적으로 들어오는 주문 작업을 끝내고 밤에 고리 만드는 작업 진행하는데요. 때로는 마음이 복잡하고 심난하기도 하지만 막상 불도장을 찍고 고리를 다듬고 있으면 새겨진 글처럼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이런 생각을 더욱 간절하게 갖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죠. 참으로 작은 일이지만 이런 작업이 유가족들에 위로나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더불어 내 자신의 마음을 다듬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성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경건한 자세가 든다는 점에서 말이죠.

 

다음 달이면 벌써 세월호 사고 2주를 맞는데 어떤가요?

세월호만 생각하면 이건 분노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청문회부터 특조위가 깨져나가는 것을 보면은요 대전 뿐 아니라 전국에서 싸우고 있지만 부정적인 생각도 종종 들죠. 과연 이렇게 싸운다고 해서 이런 정부 아래서 해결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싸우지 않았으면 정부의 무능도 알려지지 않았을겁니다. 그동안 곳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서 싸웠으니까 이만큼이라도 알려졌다고 봐요. 시간이 지나도 끝까지 버텨야죠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데 어떤 의미라고 보나요?

예전에 시위나 집회가 있으면 항상 단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에는 일반 시민들이 많아요. 그중에도 특히 어머니들이 많이 참여하는 걸 봤어요. 지금도 여전히 같이 싸우고 있죠. 그리고 각자의 재능으로 싸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무엇을 제일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을 잘하는 사람은 언변으로라도 누구한테 계속 얘기를 해야하고, 바느질로 소품을 만드는 분처럼 본인이 잘하는 걸로 기억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그만두자는 의견도 있지 않나요?

있어서는 안 되는 말들이라고 봅니다. 해결이 안됐는데 그만하자 잊자는 것은 말도 아니죠. 세월호가 우리나라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이 있었냐, 그것도 아니에요. 이제 그만해라. 이런 사고 방식은 이 사고의 원인을 다 덮고 가자는 뜻입니다. 그럴 때 일수록 더 나가서 싸워야 된다고 봅니다. 만약 내 아들이 이런 사고를 당했다면 나는 지금의 유가족들 보다 더 극렬한 싸움을 하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가족을 위로하고 격려한다고 했을 때 지금처럼 여전히 싸우는 게 그분들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 분들을 위하려면 진실을 밝혀줘야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과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다음 사고를 예방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치니까 그만합시다 하는 마음이라면 다음 사고는 항상 예비되어 있다는 거죠. 우리가 예비된 걸 알고 갈 수 없잖아요. 단호하게 우리 마음을 다잡아야죠.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있다면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싸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작업에 계속 변화를 줄 생각입니다. 나무는 재료가 거의 무한대잖아요. 원한다면 이런 불도장도 보내주고,  연필꽂이도 더 만들고 다음에는 휴대폰 고리를 만들어 본다던가 계속 변화시킬 예정입니다. 그래야 나도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요.

 

 

나무를 만지면서 그는 감촉을 느낀다. 나무의 껍질은 사람의 피부다. 거칠거칠한 것도 있고 부드러운 것도 있다. 나뭇결이 단단한 것도 있고 무른 것도 있다. 저마다의 특성으로 나무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간직한다.

때로는 뿌리가 뽑혀 야산에 쓰러져 있는 나무라 하더라도 깎고 다듬는 가운데 그것은 또 다른 생명을 얻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아마도 나무가 닿는 곳은 하늘 높은 안식의 공간, 그 어디쯤이 아닐까.

공방 그래의 이름처럼 그래, 하늘나라엔 고통이 없지, 잘 지내거라고충환 씨는 이렇게 독백을 뱉으며 오늘도 나무를 다듬는다. 아이들의 손목을 잡는 마음으로.